1894년경 청나라 군사력이 총 병력 95만명이었으며, 구성은 팔기군(만주족) 25만명에 녹영군(한족) 58만명 수준이었다고 함.


이중에서 청일전쟁에 동원된 병력은 가장 현대화된 북양군 25만명에 동아시아 최강함대라 불리운 북양함대로..


스팩만 보면 당시 일본군 정도는 한반도에서 쉽게 바를정도였다고함..


그래서 당시 조선 조정의 실권자로 잠시 부상했던 흥선대원군이 청일전쟁 발발전에 평양 감사에게 편지를 보내 청일전쟁이 발발하면 청나라편에 서서 싸우라고 하고..


1894년 10월, 평양에 주둔한 청나라군에 몰래 밀서를 보내 일본군을 몰아내달라고 요청하기도함..


나중에 일본군에 의해 발각된 흥선대원군의 밀서 내용은 아래와 같음..



"일본인에게 아부하여 매국 행위를 감행한 간악한 무리들을 하루빨리 일소하여 이 위기를 구제해주시기를 피눈물로 기원하고 또 기원합니다."



그런데 외적인 스팩과 달리 청나라의 육군과 해군은 일본에게 쉽게 패해 북양함대는 전멸하고 일본 육군은 요동반도까지 진격함..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으로 진행된 1차 갑오개혁의 섭정자리에 올랐던 흥선대원군은 이 사건으로 4개월만에 그 자리에서 쫒겨나고


척양척왜의 기치를 내걸고 일어났던 2차 동학농민군도 완전히 붕괴하면서 한반도의 주도권은 일시적으로 일본에게 완전하게 넘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