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정확히 유득공이 기록한 일화인지, 아니면 실록에 실린 내용인지(사건의 내용을 보면 충분히 실렸을 개연성은 있다만)
몰라서 정확히 그 기록은 못찾았고, 그냥 간접적인 이야기만 좀 찾았음
일단 그 이야기 들은 사람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1) '함경도' 사람이 자기 죽은 동향사람 뼈를 발라내서 가지고 다녔음
2) 그게 그 동네 풍습이었음
일단 내가 아는 바로 조선시대에 뼈를 발라내서 장사지내는 거 비슷한 풍습은 세골장이 있음
세골장이 무어냐? 가매장하고 썩힌 후 뼈를 추려내서 재매장하는 거임
관련 링크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9772
기록상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나타난 곳은 옥저. 아마 함경도 일대에 있었을 걸로 추정되는 국가.
근데 해당 이야기는 아예 뼈를 발라내서 뼈를 매장하는 거라니까 좀 다르네.
함경도 풍습이라고 하니까 우선 재가승 생각이 났음. 재가승이란 함경도에 살던 여진족 집단이라고 이해하면 됨
근데 재가승은 또 기본적으로 불교 쪽 집단이던가 해서 화장이 일반적이라네?
그럼 걍 원래 여진족 놈들 장례 풍습은 어떠한가?를 찾아봤는데
사실 제일 좋은 건 논문 찾아보는거지만 집이고 그럴 기운이 없어서 그냥 인터넷 디벼봤는데.
링크:
http://luckcrow.egloos.com/2555201
음.. 여진족은 본디 '매장하되 관을 쓰지 않음', 거란족은 본디 '유체를 미이라식으로 처리함' + '타향에서 객사시 거기서 미이라를 만듦'
본디 거란과 여진은 다른 집단이고 함경도 일대에 살던건 여진족(과 그 전신 민족들)이지 거란족이 아닌데
이 쪽에서 거란식으로 미이라 처리해서 매장한 사례가 나옴
뭐 이거는 말 그대로 시신을 처리해서 미이라 만든거지 뼈 추린것과는 또 다르긴 하다만..
여하튼 적어도 동시대 조선인들이 보기엔 기이한 매장풍습을 갖고 있던 건 맞는거같네..
소설 좀 써보자면..
해당 이야기에서 뼈만 추려 가져가려고 했던 게 세골장이랑 살짝 비슷함
본디 땅에 묻었다가 뼈 남으면 추리는 거지만 외지라서 그럴 여유가 안되니 뼈만 추린 게 아닐까 하는 추론을 해봅니다
당시 함경도에도 옥저시대때 있던 세골장 풍습이 남아있는진 모르겠고..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