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선에 실린 포는 처음에 선수루갑판에 설치되었다.
나중에 포가 더 무거워지면사 더 큰 포들은 상갑판에
실려서 현창을 넘어 혹은 현창을 통과햐 포탄을 발사
했고 더 가벼운 것들은 전갑판 안쪽이나 후갑판에 실
렸다.

캐러벨선은 특별한 경우 최대 30~40문까지 대포를 실
을 수 있었으나 보통 15문 이상 싣지 않았다. 더 큰 배들은
물론 더 많이 실었다. 헨리 7세의 소버린호는 141문의 포
를 실었는데 그 중 110문은 서펀타인이라 불리는 가벼운
후장식 총포로 대부분 선수루에 설치되었다.

16세기 초 중요한 혁신이 도입되었다. 선루와 별도로
실제 뱃전에 현창을 뜷어 포가 상갑판이나 전갑판뿐 아니
라 주갑판에도 실릴 수 있게 된것이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혁신이 도입된 시기는 1510년으로 알려져 있는데 프랑스
인이 고안해냈다고 추정한다.

현창의 발견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띈다. 이로 인해 대형
전함의 무장이 급갹히 증가했다. 주갑판에 포를 실으면
더 많은 포를 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박의 안정성을
해치치 않으면서 더 무겁고 큰 대포를 싣는 것도 가능했다.

1514년 새로운 설계 방식에 따라 건조된 영국 전함 해그레
이스아듀호는 무려 186문의 포를 실었고 그 가운데는 4,50
파운드가 나가는 청동 컬버린 포 두 문과 3,000파운드의
청동 쿠르탈포 한문도 포함되었는데 세문 모두 하갑판에
설치 되었다. 해리호는 당대 최고의 배였다. 배는 조정과
신성로마제국의 대사, 교황의 대사, 저명한 주교와 귀족
들이 참여한 가운데 진수되었다. 전시효과는 즉시 나타
났다.

1527년에는 프랑스 그랑프랑수아호 1534년에는 무려
366문의 각종 포를 실었다고 하는,포르투갈의 상호앙호,
1554~1559년에는 71문의 대포 가운데 24문이 청동
대포였다는 스웨덴의 엘레판텐호가 속속 진수 되었다.

그러나 당당하고 근사해 보이는 이 배들은 기동이 매우
불편하였다. 포문 발명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일제
사격의 효과를 극대화 하려다가 추세가 \"작고 빠른 포르
투갈의 캐러벨선과 반대방향\"으로 전환되고 말았다.
대형 전함은 조종 가능한 무기가 아니라 해상의 요새가
되어버렸다 . 그것은 \"조종이 힘들고 건현이 매우 높고
이물과 고물에 솟은 부실한 선루가 거치적거리는, 육중
하게 움직이는 괴물이었다.\"

추세가 다시 역전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조선공들은 대형
범선의 화력을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기동성읗 개선하고자
애썻고 1550년 직후 이들의 노력은 전설적인 갤리언선,
다시 말해 무장이 튼튼하면서도 민첩하게 기동 할 수 있는
배를 선보임으로써 결실을 보았다.

이전의 대형 배와 관련해, 갤리언선은 폭이 더 넓고 선체가
어느 정도 갤리선의 외형을 따라 건조되었다. 건현이 낮아
졌고 특히 이물 부문의 선루가 훨씬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