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에 병사는 불쌍한 미물이였다.
군복을 입는 사람은 자기 권리를 포기했다는 표시로 그 옷을 걸치고 다녔던 것이다.
최정예 군인일지라도 지원병은 거의 없었다.
중략
대조적으로 19세기 병사들은 자기 처지에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자발적인, 종종 열의에 찬 병사들의 대부분은 징집병이였지만~~
마을사제가 농노 징집병을 위해 진혼미사를 해주는 18세기의 환송과는 사뭇 다른 이웃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났던 젊은 병사는 군 복무를 마치면 기념품을 가지고 돌아와 고향 가족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이러한 태도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질수 있었을까
이 소절 읽자마자 개차반된 한국군대 이미지, 군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대우 같은게 퍼뜩 떠오르더라
군복을 입는 사람은 자기 권리를 포기했다는 표시로 그 옷을 걸치고 다녔던 것이다.
최정예 군인일지라도 지원병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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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적으로 19세기 병사들은 자기 처지에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자발적인, 종종 열의에 찬 병사들의 대부분은 징집병이였지만~~
마을사제가 농노 징집병을 위해 진혼미사를 해주는 18세기의 환송과는 사뭇 다른 이웃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났던 젊은 병사는 군 복무를 마치면 기념품을 가지고 돌아와 고향 가족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이러한 태도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질수 있었을까
이 소절 읽자마자 개차반된 한국군대 이미지, 군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대우 같은게 퍼뜩 떠오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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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쇼날리즘
민족국가로의 성립?
19세기 군사적 변화와 동원능력의 향상은 정치사적 관점에선 민족주의(국가주의) 때문임. 20세기초까지도 전쟁한번 하면 다들 애국주의랑 민족주의에 휩쓸려서 나갔음. 심지어 1914년의 러시아조차 1차대전 시작하니까 그렇게 들끓던 여론이 죄다 애국적인 전쟁으로 가버릴 정도. 물론 민족주의 약빨이 만능은 아니라 상황이 너무 나빠지면 1917년 꼴 나게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