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위대장군(左翊衛大將軍) 내호아(來護兒)가 강회(江淮)의 수군을 거느리고 배의 뒷부분과 앞부분이 수백 리(里)에 이르게 바다에 떠올라 앞으로 나아가, 패수(浿水)로 들어와 평양에서 60리 떨어진 곳에서 아군과 서로 만났는데 나아가 공격하여 이를 대파하였다. 내호아가 승세를 타고 성으로 나아가려고 하였다.
부총관(副摠管) 주법상(周法尙)이 제지하며, 여러 군대가 오기를 기다려 함께 나아갈 것을 청하였다. 내호아가 듣지 않고 정예병력 수만 명을 골라 곧바로 성 아래로 나아갔다. 우리 장수는 나성 안의 빈 절에 병력을 숨겨두고, 다른 병력을 출동시켜 내호아와 싸우다가 거짓으로 패하였다. 내호아가 쫓아 성으로 들어와서, 병력을 풀어놓아 약탈을 하게 하면서 다시 대오를 갖추지 않았다.
숨은 병력이 나가니 내호아가 크게 패하여 겨우 붙잡히는 것을 면하였고, 사졸로서 돌아간 자는 수천에 불과하였다. 아군이 추격하여 배 있는 곳에 이르렀으나, 주법상(周法尙)이 진영을 정비하고 기다리고 있어 아군이 후퇴하였다. 내호아가 병력을 이끌고 돌아가 바닷가 포구에 주둔하였으며, 다시는 감히 머무르면서 여러 군대에 호응하지 못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양왕 23년조 6월 여름
출처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_page=1&setId=-1⪳vPage=0⪳vLimit=&itemId=sg&types=r&synonym=off&chinessChar=on&brokerPagingInfo=&levelId=sg_020r_0020_0260&position=-1
사실 고구려가 겪은 수/당과의 전역 중 최악의 상황을 겪을 뻔한 때가 바로 수양제가 113만 대군 이끌고 침략했을 때임
수나라 수군이 고구려 수군 격파하고 평양에서 60리 떨어진 곳에서 고구려군 대파. 이 때 수군을 이끌던 좌익위대장군 내호아가 이끈 병력만 수만.
성 안으로 끌여들이고 난 뒤 매복한 병력으로 격파해서 위기 일발.
이 직후에 수가 30만 대군으로 평양성을 직공하다가 후퇴했고 살수에서 거의 몰살당함. (살수대첩)
만약 내호아가 괜한 공명심으로 오버 안하고 존버만 했어도 고구려는 여기서 망하는 것..
청야전술이고 뭐고 아무런 의미가 없지 .. 이미 거기 주둔중인 보급대가 있는 셈인데..
혹은 여하튼 수만의 병력을 이끌고 왔는데 이거 못막았음 망하는건 매한가지고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 애송이
아찔한 상황이었던 거는 사실인데숭..
거 고려 현종도 진짜 아슬아슬하게 런 성공해서 살아남았자너~
레이드온 병력규모가 전근대 역대 최대인데 아찔한 상황이 안오는게 사실 신기한데스...
저 때 내호아의 수만 병력 맞은게 고작 수백의 결사대라는데.. 어쨌거나 수도인데도 그정도 병력에 사활을 건 거 보면 당시 평양성엔 병력이 부족했던게 아닌가싶음. 진짜 어떻게든 머가리 깨버려서 살은거지..
캐삭빵 상황이라고는 해도 고대에 저정도 병력을 뽑는것도 신기하다 - ÜBER!
당대 중국 인구가 4천만 정도로 잡던거같던데.. 그래서 100만은 우리라는 얘기가 나오긴 한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