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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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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BH에서 이 보고서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시체가 움직인다는 것은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대통령 입장에서 경찰이 해법으로 제시한 감염자에 대한 무제한 화기 사용 허가라는 조항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시위대 한명이 사망해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것이 수년전이고 그보다 좀 더 이전으로 가면 군대가 민간인에 대한 화기 사용으로 한국 현대사에 비극을 만들어낸 것이 40년 전이다. 대통령은 그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이었다. 군경에 의한 민간인의 살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주변에 있던 출신 성분이 비슷한 주요 참모들도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2시간의 격론 끝에 타협을 본 것이 살수차, 곤봉 등을 이용한 경찰 기동대의 강경 진압이었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나름 고심한 끝에 내린 결정이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이것이 또 다른 실책이었다. 물론 그 시점에서는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감염자들이 살아 움직이는 시체라는 생각은 못했으니까. 그저 보고서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보고서에 쓰여진 전염병의 원인, 그리고 그 감염자들이 무슨 상태인지 ‘정확하게’ 알아오라는 대통령의 전언과 함께 보고서는 반려되었다.
경찰 기동대가 서울 시내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사람이 아니었고 치사율 100%의 전염병과 관련된 바이러스를 가진 보균자였다. 이들을 살해를 전제로 하지 않고 구금 또는 체포하려다 보니 기동대원들이 더 많이 다쳤다. 군은 당연히 주둔지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명령이 안내려왔으니까. 일부 경찰 인원이 권총을 이용해 실탄 사격을 한 사례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우연히’ 이들을 상대할 방법을 알아낸 인원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 우리나라에서 대놓고 머리를 노리는 사격이나 타격이 가능하겠는가? 지금이야 그들을 상대로 머리 부분을 노려 공격하는 것이 상식중의 상식이지만 그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진압병력은 빠른 속도로 소모되었다. 그 시점에 모두 다 좀비가 돼서 거리를 배회하는건 아니었다. 경상이든 중상이든 상처를 입은 병력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중상을 입은 병력이 좀비가 되는 일이 계속 보고되었다. 서울에서만 감염자가 9만명 가량으로 파악되고 있었고 전국적으로는 20만명에 이르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경찰은 감염자들의 제압 요령을 확인했으며 화기 사용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인구밀집 지대인 서울 서남부의 일부 구역에서는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생겨났다. 관공서가 완전히 넘어간 곳도 속출하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어떻게든 경비 병력들이 보호하고 있었지만 점점 늘어나는 감염자들로 상황이 매우 안 좋았다. 그것이 사태 발생 10시간 이후 상황이었다.
이 때 우리는 주한 미 대사를 통해 이 사태가 전 세계적인 상황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물론 언론 보도는 그 전부터 나오고 있었다.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터키, 인도, 러시아.. 다양한 국가에서 우리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였고 모두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 사태가 북한에도 발생했다면 문제였다. 북한의 통제력, 행정력 수준에서 이러한 대규모 전염병을 관리하면서 군사적 작전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을 것 인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만약 북한이 상황 통제에 실패한다면 그들이 가진 핵무기는 어찌 될 것인가? 북쪽의 감염자들이 휴전선으로 남하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들은 남한에 대한 적화 야욕을 버렸는가가 문제였다. 만약 북한에는 전염병이 퍼지지 않았고 이들이 우리의 상황을 알고 있다면 남한이 혼란에 빠진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였다. 남북관계가 이전에 비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전쟁 이후 한국의 통치자들에게 만성화된 근본적인 두려움은 남아있었다. 다양한 두려움이 청와대를 감싸고 돌기 시작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 전염병 사태에 대한 간략한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렸다. 질병관리본부 보고서의 결론은 현재 거리의 감염자들은 의학적으로 사망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호흡기, 순환기 등등 신체의 유지에 필요한 모든 주요 기관은 작동을 멈춘 상태이며 어떤 불가사의한 이유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부연되어 있었다. 동일한 내용의 결론이 담긴 보고서가 또 다시 올라오자 대통령도 군의 무장 출동 및 군경의 화기 사용을 허가하였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청와대 경비 병력들은 이미 화기를 무차별로 사용하고 있었고 그 덕택에 청와대를 지켜낼 수 있었다. 다른 곳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이제 거리의 감염자들에게 무차별로 사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점이 사태 발생 12시간 후였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자회견을 열고 계엄령을 선포하였으며 군의 출동을 공식화 하였다. 국민들에게 집안에 있을 것을 당부하고 거리를 배회하는 경우 감염자로 간주하여 사살될 수 있다는 매우 강력한 경고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이 시점에서 서울의 감염자는 15만명, 전국적으로는 40만명의 감염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었다. 국민들 대부분은 이 시점에서 집안에 있다고 가정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민간인들은 대부분 감염자라고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휴전선을 경계하는 최전방 보병사단들을 제외하고 예비사단 및 향토사단들의 출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감염자들이 군 부대의 기동로에 깔려있어서 대부분 병력들은 주둔지를 나서자마자 전투를 시작해야 했다. 군병력 대부분은 화학전 상황에 준하는 방호복을 입고 출동하여 감염될 위험은 적었지만 문제는 탄약, 연료를 비롯한 보급이었다. 탄약을 보급받기 위한 기동로가 감염자들로 들끓고 있었고 탄약창이나 ASP로 차를 보내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특히 기계화부대의 경우 문제가 심각했다.
게다가 이미 투입된 경찰들에게도 총기가 제때 지급되지 못했다. 거리에 있는 경찰 기동대들은 감염자들을 막으면서 총기를 지급받기 위해서 재정비를 할 수가 없었다. 인원이 그만큼 모자랐기 때문이다. 결국 급한대로 경찰특공대가 총기를 가지고 거리에 투입되었고 발전소, 방송국, 통신기지국 등 국가 기간 시설에 공수여단이 헬기로 급히 투입되었다. 사실 전시라면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운용되지 않겠지만 그만큼 상황이 안 좋았다. 작전계획대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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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만이라면 나름 빠르게 쏜편아녀 근데 순식간에 40만찍네 - dc App
최악의 최악을 가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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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거 재밌네 - dc App
참피아님 ㅅㅂㅋㅋㅋ - dc App
참피아님 때문에 들어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편 동력 부문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