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갤럼들하고 있던 2차 대전기의 아프리카 연재는 땡땡이 치고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정보글을 오늘 가져 왔음

원래 이 글은 지난번에 아래의 중아공 파병 기사가 떴을 때 써서 올리려고 했었지만

오랫동안 묵혀 뒀다가 이번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사로 올라온걸 보고 삘 받아서 써 오게 되었음

먼저 식민지 지배 시대 이전의 중앙아프리카와 식민지배기의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겠음.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1/21/0200000000AKR20161121167000014.HTML?input=1195m


 먼저 식민지 지배 이전에 대해서 말하자면본디 이 지역은 이곳을 관통하는 강의 이름을 따서 우방기 샤리라고 불렸음

이곳의 북부에는 인도양을 향해 가는 노예 무역로의 최초 시작지로써노예 상인들이 세운 국가인 술레이만라바주바베이르 같은 국가들이 존재하고 있었음

하지만 이들 나라들은 패권을 잡은 유럽 국가들의 노예 무역 통제로 인해서 얼마 안 가 힘을 잃게 되었고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로 흡수되었음

이곳은 계속해서 우방기 샤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의 자원 산출지로서 부의 원천 역할을 하게 되었음 

그리고 이를 착취하기 위해서 철도를 세웠는데이 과정에서 수많은 원주민들이 희생되었다고 하며이들은 집단 수용, 폭행학살 등의 온갖 참극을 당했었음

대표적인 사건으로 1903년 혁명 기념일에 프랑스인 관료들이 죄수의 항문에 다이너마이트를 집어넣어 폭파시켜 죽인 사건을 들 수 있겠음.


바르텔레미 보간다.

물론 이런 통치가 계속해서 유지된 것은 아니지만중아공 사람들은 계속해서 폭력 아래에서 신음할 수밖에 없었음

이 때 중아공 사람들을 이끈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바르텔레미 보간다였음. 1910년 태어난 바르텔레미 보간다는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까지 강제 노역에 반발했다는 이유로 맞아 죽었음이를 가엾게 여긴 가톨릭 신부가 그를 받아들였고이로 인해 그는 우방기 샤리 최초의 원주민 신부가 되었음

세계대전 이후 그는 24명으로 늘어난 아프리카인 의회 쿼터에 맞추어 우방기 샤리 최초의 국회 의원이 되었음

그러다가 그는 식민지인으로서의 한계를 깨닫고 우방기 샤리로 돌아가 아프리카 민족주의자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열띤 활동을 펼쳤음

그는 국명과 국기를 스스로 만들었고, ‘모두를 위한 평등이라는 중아공의 표어까지 만들었지만첫 선거 이전 1959 3 29일 비행기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고 말았음

그는 중아공 사람들 모두의 성자가 되었고그의 빈 자리는 그의 가까운 측근이자 친척이었던 다비드 다코가 메우게 되었음하지만 다비드 다코는 매우 부패한 사람이었음

그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사실상의 1당 독재 체제를 수립하고 일당들과 함께 국고를 갈취했는데

그 수준이 국가 예산의 58퍼센트가 공직자의 봉급으로 지출될 지경이었음그리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사이코가 하나 등장하는데,

갤럼들도 한번쯤은 들어본 그 이름 장 밥델 보카사였음

장 밥델 보카사

 장 밥델 보카사 역시 다코의 사촌으로 그 또한 어린 시절에 프랑스의 강제 노역 강요로 인해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자살하여 고아가 되고는 할아버지 손에 자랐음

그는 프랑스군에 입대하여 2대전과 인도차이나 전쟁에 참전했으며 뛰어난 무공을 인정받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비롯한 수많은 훈장들을 수훈 받았음

그는 1961년 병장에서 대위로 승급하여 중아공 군대 성립을 돕는 일을 하게 되었고, 3년 뒤 중아공 병력 500명을 통솔하는 육군 참모 총장이 되었음.

그리고 다음 해 그는 쿠데타를 일으켰음쿠데타를 일으키자마자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수많은 관료들을 처형했으며

 자신을 절대 군주로 선포하고 민주주의와 선거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시켰음그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결정했고 

다이아몬드와 상아를 팔아 번 돈으로 프랑스의 성 네 채를 사들이는 등 유럽의 부동산들을 싹슬이했음. 또한 17명의 부인과 수십명의 정부를 두었음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적을 두었던 프랑스 정부에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드골을 아버지 데스탱을 사촌이라고 불러가면서 큰 애착을 표시했고,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음.  

그러나 계속해서 보카사의 횡포가 더해가자 프랑스는 인내심을 잃어버리고 1979년 바라쿠다 작전을 통해서 그를 갈아치워 버렸음.


셀레카 반군

 그 이후 중아공은 여느 아프리카 국가들과 같은 나날들을 보내왔음가난하지만 큰 내전은 없었고 그럭저럭 평화롭게 살고 있었고, 1993년에는 민주화까지 되었음

그러던 중 2003년 프랑수아 보지제가 권력을 잡았음그는 무슬림들을 관료로 두겠다고 공언했는데

오랫동안 소외되었던 무슬림들은 이 말을 믿고 보지제를 열렬히 지지했음. 그러나 이러한 말은 얼마 안 가 거짓말로 드러났음

그리고 여기서 나온 집단이 셀레카 반군이었음이들은 2013년 보지제의 정권을 빼앗아 버렸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대책은 무에 가까웠음

이들은 폭정을 일삼으며 내전을 촉발시켰고 얼마 안 가 안티발라카라는 집단이 결성되어 셀레카에 맞서 싸웠고셀레카 반군은 무슬림 다수의 북부나 중부로 밀려갔음

현재 이들은 상대 종교인들을 죽이고 약탙하고 강간하면서도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 또한 보호비라는 명목으로 노동력과 돈을 갈취하고 있음

이로 인해 수천 명의 사망자가 났으며 중아공 국민의 5분의 1 100만명의 난민들이 생겨났음게다가 유엔 평화 유지군도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프랑스 평화유지군이 아동 성 학대를 저질렀지만 불기소 처분 되는 일이 있기도 했음

현재도 무능력한 정부와 사람들의 증오심을 부추키는 셀레카와 안티발라카의 틈바구니에서 주민들은 고통받고 있으며유엔 평화 유지군은 이를 방관하고 있음

그리고 분쟁은 그 끝을 보이지 않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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