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이후 러시아 보병의 상징
발싸개 포르트얀키·키르자 부츠
비효율적이라 양말로 교체 시도
러시아군 정신 훼손된다며 반대
2013년 국방장관이 직접 없애
‘발싸개’를 둘둘 감아 신고 있는 러시아 군인의 모습. 필자 제공 |
군대라는 조직이 얼마나 변화하기 힘든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가 러시아군의 ‘발싸개’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러시아 군인은 양말이 아닌 발싸개를 발에 감아 신고 다녔다. ‘포르트얀키(portyanki)’라고 부르는 이 발싸개는 16세기 이래 러시아 보병의 전통·상징처럼 여겨졌다.
신병들이 가장 먼저 받는 교육 중 하나가 포르트얀키를 발에 싸는 법이었다. 여기에 ‘키르자(kirza) 부츠’라고 부르는 크고 무거운 통부츠를 신었다. 제1, 2차 세계대전 때만 하더라도 포르트얀키와 키르자 부츠는 참호족(trench foot)이나 동상을 줄일 수 있는 훌륭한 발 보호 수단이었다. 이들의 조합은 적어도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포르트얀키에 키르자 부츠를 신은 보병은 기동력과 공격력이 떨어졌다. 포르트얀키 위에 키르자 부츠를 신으면 두껍고 둔하고 무거웠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1979∼1989)’에서 소련군 장병은 불편과 고통을 호소했다.
이동 도중에 포르트얀키가 풀려 키르자 부츠가 겉돌면 물집이 잡히고 피부가 까졌다. 아프가니스탄의 험한 지형과 무더운 날씨 속에서 소련군의 발은 엉망진창이 됐다. 편한 양말과 신형 군화를 두고 발싸개와 통부츠를 신고 다니는 것은 비효율적이었으며 비위생적이었다.
전쟁 중 발견된 문제는 어지간하면 개선된다. 그러나 포르트얀키는 2013년까지 살아남았다. 2007년 러시아군이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하면서 포르트얀키를 일반 군용 양말로 교체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소위 ‘양말 반대론자’들은 “긴 천으로 된 포르트얀키는 한쪽이 젖거나 더러워지면 벗어서 반대쪽을 발에 감아 신을 수 있기 때문에 양말보다 낫다”거나 “조금 큰 부츠가 보급되더라도 포르트얀키를 두껍게 감으면 신을 수 있다”는 등 억지를 부렸다. 일부 군의 원로들은 ‘포르트얀키를 없애는 것은 러시아군의 정신을 훼손하려는 시도’라고 비방했다.
이를 보다 못해 국방장관이 직접 나섰다. 러시아 국방개혁의 공로자 중 한 명인 세르게이 쇼이구(Sergei K. Shoigu) 국방장관은 취임 초기인 2013년 1월, 공개회의 석상에서 각 군 참모총장에게 “발싸개를 없애시오. 관련 예산을 따로 마련해서 지원할 테니, 제발 부탁이오(I’m asking you, please). 우리 군에서 이 발싸개를 완전히 없앱시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군사문제 전문가 루슬란 푸코프(Ruslan Pukhov)는 “중세 시대 농부에게나 어울릴 만한 포르트얀키를 21세기 군인이 신고 있었던 것은 어리석다. 이는 러시아군의 정신적 후진성, 현실에 안주하려는 의식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했다.
변화와 개혁에 대한 막연하고 피상적인 이해를 넘어서지 않으면 이를 힘있게 추진하지 못한다. 우리는 창의적인 아이디어, 우수한 기능을 가진 산물이 제시되면 변화가 추동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더가 실행 가능한 비전을 제시하면 구성원이 즉각 개혁에 동참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포르트얀키’의 사례는 그 당연해 보이는 가정과 전제가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우리는 ‘변화, 개혁은 좋은 것’이라고 선험적으로 가정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양말 반대론자’들은 포르트얀키를 없애려는 시도가 러시아군의 역사와 전통에 해를 입힐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분명 ‘변화와 개혁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케팅 전략 전문가 제프리 무어(Geoffrey Moore)는 ‘새로운 산물을 앞에 둔 수용자의 기본적 심리 반응은 두려움, 불확실성, 의심’이라면서, 보통의 인간은 변화에 본능적으로 저항하기 마련이라고 했다. 자국 국방개혁에 대한 미 육군의 평가 보고서에는 ‘변화와 혁신에 대한 구성원의 반발이 국방개혁의 가장 큰 도전이었다. 개혁에 성공하려면 리더가 솔선수범해 조직 목표에 대한 구성원의 신뢰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타성에 젖은 구성원의 심리와 행동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양말 하나 바꾸는 일도 저렇게 쉽지가 않다. 조지아, 우크라이나, 시리아에서 전투를 하고 있는 장병들이 발에 피를 흘리며 바꿔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와중에도 러시아군은 전통과 상징을 따졌다.
세르게이 쇼이구의 ‘발싸개를 없앱시다. 제발 부탁이오’ 발언이 러시아 공영방송 NTV를 통해 전국에 방영되지 않았더라면 러시아 신병들은 오늘도 포르트얀키로 발 싸는 연습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남보람 소령 정치학박사>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bbs_id=BBSMSTR_000000001264&ntt_writ_date=20181016&parent_no=1
드래도 우리가 발싸개를 러시아군의 영혼이라 하는 급은 아니지 않냐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