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예 공수부대였던 팔쉬름예거가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설계, 강력한 7.92x57mm 마우저탄을 고속으로 연사할 수 있으면서 짧고 가벼운 것이 특징.

소총탄 사용에 양각대를 갖추고 전용 스코프도 장착할 수 있어 점사/연사/난사/저격 등 모든 방식의 화력투사가 가능.

공수보병의 주력 소화기로서 높은 휴대성을 기반으로해 반자동 소총과 경기관총의 능력을 겸비한다는 개념의 무장.

폐쇄볼트로 작동하는 반자동 소총으로서는 높은 명중률을, 개방볼트로 작동하는 기관총으로서는 높은 화력을 얻을 수 있음.

그러나 두개의 매커니즘이 하나의 총기 안에 들어간 결과 구조가 복잡하여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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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과 특성 - D.(Luft) T.6194 메뉴얼


- 공수부대 소총 42, FG 42는 완전 잠금식 약실에서 가스작동으로 자동 사격을 하는 무기다.
- 이 무기는 단발사격을 하고 긴급시에는 자동사격 모드를 이용한다. 단발사격시에는 폐쇠약실로 자동사격시에는 개방약실로 작동한다.
- 왼쪽에서 10발 및 20발 탄창으로 급탄한다. K98k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탄약이 허용된다.
- 급탄은 스프링식 점화 핀을 이용한다.
- 포복사격시를 위한 접이식 양각대를 갖추고 있다.
- 근접전을 위한 총검을 갖추고 있다.
- 저격수나 지정사수를 위한 망원조준경을 장착할 수 있다.
- 총류탄 발사는 머즐 브레이크 대신 총류탄 발사기를 총신에 조이고 수류탄 발사용 조준기를 장착하여 가능하다.


(F형의 머즐 브레이크 부분, 양각대 사이의 총검은 전개식이 아닌 탈착식이며 제거시 무게를 줄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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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No E6/17776/43 Secret Test Number 31/43, 내구력 테스트


- 분당발사속도는 5000발까지 유지되고 6000-7000발 즈음에는 100-200발 정도가 높아졌다.

- 약 12000발 발사후 포구초속이 평균적으로 25m/s 증가했다.

- 발사속도가 증가한 12000발 이후 때때로 잼에 걸렸다.

- 극랭(extreme cold)이나 열기(heat)로 인한 오작동은 발생하지 않았다.

- 약실이 폐쇠되고 탄창이 장전되어 있을시 모래나 먼지에 민감하지 않았다.

- 들러붙은 모래는 몇번의 사격이나 가스 분사로 날아간다.

- 약실이나 탄창구가 열려있을 경우 모래를 뿌리면 약실이 닫기지 않거나 탄창이 제대로 장착되지 않을 수 있다. 

  ㄴ즉각조치로 탄창을 장착할 수 있지만 발사는 되지 않는다.

  ㄴ즉각조치의 반복을 시도할 경우 볼트 헤드의 오염이나 걸린 탄약으로 인하여 볼트의 반환이 억제된다.

  ㄴ정상복구를 위해서는 약실의 철저한 청소가 필요했다.

- 탄창이 없을 경우 모래로 인한 작동불량을 막기 위해 탄창구 커버를 닫아 두어야 한다.

- 머즐 브레이크나 총류탄 발사기가 장착되어 있을 경우 어두운 곳에서 사격시 총구화염이 산만해지지 않는다.


(F형의 총몸부분, 조준기는 접을 수 있었고 후기형에 추가된 스프링 동작식 탄창구 커버는 스위치식를 누르면 상하 2피스로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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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APC Standard Automatic Rifle Test.


- 일반적인 설계는 뛰어나며 다음과 같은 많은 바람직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ㄴ오픈 볼트로 자동사격.

  ㄴ클로즈드 볼트로 반자동사격.

  ㄴ유리한 위치의 개머리판, 반동 부품들 뒤에 인라인으로 배치.

  ㄴ조절 가능한 가스 포트.

  ㄴ효율적이고 가벼운 일체형 양각대 및 고유의 반동흡수 시스템.

- 이 무기는 필요한 총기 관리를 위해 쉽고 신속한 분해가 가능하다.

- 완전 자동 사격의 명중률이 매우 뛰어나다. 비교조건 내에서 T20E2를 능가했다.

- 반자동 사격시의 명중률은 T20E2와 비슷하다.

- 이 무기는 모든 발포 자세에서 매우 안정적이었고 반동은 가볍다.

- 콤비네이션 컴펜세이터 소염기는 컴펜세이터로는 효과적이었지만 발생한 오작동의 대부분은 쉽게 수정이 가능한 변형된 탄창 밀대 및 추출기 스프링의 피로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비효율적이었다.

- 이 무기는 진흙 상황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몇발의 사격 후 볼트가 굳었다.

- 먼지 속에서 적절한 성능을 보인다.

- 빗속에서 잘 작동한다. 비교조건 내에서 T20E2를 능가했다.

- 탄창의 내구도가 적절하지 못하다. 탄창밀대는 쉽게 변형된다.


*T20E2 = 개런드에 BAR 탄창과 자동사격기능 및 셀렉터를 추가한 총으로 M14의 직계 할아버지에 해당한다. 즉 미국이 노획한 FG 42의 반자동사격 명중률은 M14 및 개런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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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크레타섬의 비극에서 팔쉬름예거가 배운 것은 공수강하시의 생존성을 늘리기 위해선 즉각적인 화력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팔쉬름예거가 사용한 나치 독일의 낙하산은 공중에서의 방향전환을 위해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려야 했던 낙후된 타입으로서 강하시 제대로된 무장을 갖추기 힘들었다.



(문제의 낙하산과 팔쉬름예거, 저래서야 답이 없다.)

결국 강하시에는 권총탄을 사용하는 가벼운 무장만을 갖추게 되었고 그보다 무겁고 큰 무장은 낙하산으로 따로 투하해 보급해야했다.

그런데 팔다리도 없는 무기나 물자를 저런 낙하산으로 투하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높은 확률로 병력과는 엉뚱한 곳에 떨어지기 마련이고 강하한 병력들은 적의 화력에 노출된 상태로 무장을 찾아 헤메야했다.

결과적으로 실제 작전에서 크레타에서 강하한 팔쉬름예거는 권총탄으로 소총탄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 처했고 당연히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에 병력과 함께 강하가 가능한 휴대성과 즉각적인 화력지원이 가능한 기관총으로서의 능력 및 집단의 주력 무장으로서의 범용성을 겸비한 총이 요구되어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 프로토타입이 제작되었다.

1. 길이는 1미터를 넘지 않아야 한다.
2. 표준형 Kar98k 소총보다 가벼워야 한다.
3. 표준적 7.92x57mm 탄을 사용해야 한다.
4. 최소 10발에서 30발의 탄창을 사용해야 한다.
5. 최대한 단순한 구조에서 선택적 사격모드를 가지며 폐쇠볼트에서 반자동사격 및 개방볼트에서 자동사격을 해야한다.
6. 동작정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7. 반동에도 쓸 수 있는 망원조준경이 갖출 수 있어야 한다.
8. 총류탄 발사기를 갖출 수 있어야 한다.
9. 장착가능하고 접을 수 있는 총검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
10. 근접전시 몽둥이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11. 분리가능한 총열은 요구되지 않는다.
12. 총열은 연사시 최소 2000발을 버틸 수 있어야 한다.
13. 강하시 옷이나 장비에 얽히지 않도록 왼쪽 손에 접을 수 있는 손잡이가 있어야 한다.
14. 포복사격을 위한 접이식 양각대가 있어야 한다.
15. 개머리판은 반동흡수용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16. 발사시 안정적이어야 한다.
17. 내부구조에 침투한 모래에 대한 보호가 되어야 한다.
18. 사용시 충격등에 민감하지 않아야 한다.

라인메탈에서 완성된 첫 프로토타입은 C형으로 구분되었는데 라인메탈사의 엔지니어였던 한스 요아힘 카르트만에 증언에 의하면 42년 겨울에 히틀러에게 선물되었다고 한다.



(첫 프로토타입인 C형, 초기형 특유의 가느다란는 실루엣은 E형까지 유지된다.)

총을 처음 접한 히틀러는 깊은 만족을 표현하며 '이 총은 국방군의 제식 총기가 될 것이다!' 라며 열변했지만 첫 프로토타입은 이제 겨우 선을 보였을 뿐이었다.

제대로된 테스트를 마치고 병기로서의 가치를 확립한 것은 선행양산형에 해당하며 약 50정이 생산된 D형에 이르러서였는데 때는 43년 여름이었다.


(선행양산형에 해당하는 D형)

그리고 D형을 다듬은 본격양산형이 1943년 가을부터 생산에 들어간 E형으로 흔히 FG 42/I 라고 불리우는 총이다.

이 초기형 FG 42들은 니켈등의 귀금속 추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독일로서는 생산이 힘들었던 탓에 총 생산량은 2101정에 불과했다.


(첫 대량생산형인 E형, 다른 초기형과의 주요 식별법은 개머리판이다.)

'스트레이트 인-라인' 디자인을 채택하고 내부적으로도 반동제어에 공을 들여 기본적으로 명중률이 우수한 FG 42였지만 초기형들은 자동사격시 소총탄의 발사속도가 초당 15발에 이르러 화력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반동이 가벼울 뿐 근본적으로 견착사격에 부적합했다.

"무기의 정확도는 Kar98k 카빈의 정확도와 동일하며 모든 사격 자세서 취급이 용이하다." 


                                    - Summary of the Type 'D' Endurance Trials


(반동의 방향이 변하지 않고 사수의 어깨로 똑바로 전해지며 축도 매우 근접해 있는데다 후기형은 컴펜세이터의 보조까지 받아 화력에 비해 반동 제어가 용이했다.)

따라서 자동사격시엔 짧은 점사를 하거나 양각대를 펼칠 필요가 있었는데 문제는 기동성을 위해 총의 중앙, 핸드가드 앞쪽에 애매하게 위치한 양각대였다.

중앙에 자리잡은 양각대는 D형의 내구 테스트에서 머즐 브레이크 근처에 위치시킬 경우보다 명중률이 약간 떨어지는 대신 최소한의 어깨 움직임으로 더 넓은 영역을 커버할 수 있었기 설계 목적에 부합하여 채택된 것이다.

"양각대를 이용해 발사 할 때, 중간 위치의 양각대는 더 큰 이점을 제공한다. 

시설의 의견에 따르면, 앞쪽에 위치한 양각대의 약간 더 나은 정확도와 비교할 때 취급의 용이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 Summary of the Type 'D' Endurance Trials

그러나 고정장치가 없었던 이 양각대는 사격시 접혀버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사수가 지속적으로 전방을 향해 총을 밀거나 양각대를 손으로 잡아 고정시켜주는 등의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했으므로 불편했다.

또 우수한 신뢰성과 내구성이 무색하게 탄창구가 비어있을 경우 모래같은 이물질이 침투하기 쉬워 작동불량을 일으킬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었다.

결국 FG 42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성능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재설계, 다음과 같은 변경점이 적용된 후기형 FG 42의 프로토타입인 F형이 완성된다.

- 자동사격시의 발사속도가 분당 750발로 낮아졌다.
- 탄창구에 스프링 작동식 커버가 설치되었다.
- 양각대가 재설계되고 전개위치가 바뀌었다.
- 핸드그립이 인체친화적으로 재설계되었다.
- 초기형의 안전 /사격 모드 셀렉터 스위치는 이제 사격 모드만을 담당하고 안전 장치는 핸드그립의 왼쪽에 위치한다.
- 개머리판의 재질이 목재로 변경되고 분해는 오른쪽 후면에 배치되었다.
- 초기형의 양각대가 있던 자리에 가스 조절 장치가 추가되었다.
- 초기형의 원통형 콕킹 핸들이 심플 후크로 변경되었다.


(F형, 후기형은 전체적으로 묵직해졌다.)

F형은 프로토타입 및 선행양산형으로 210정만 생산되고 개량된 컴펜세이터등을 갖춘 본격 양산형인 G형으로 넘어가게 된다.

G형은 FG 42/II로 불리우는 FG 42의 최종형이자 최대생산형으로서 44년에야 생산이 시작되어 주로 서부전선에 배치되었다.

적절해진 자중과 낮아진 발사속도, 재설계된 양각대 및 반동제어용 컴펜세이터 등으로 자동사격시의 전투력이 향상된 FG 42/II는 초기형에 비해 보다 우수한 무기로 완성되었다.

(FG 42의 완성형인 G형, 높아진 자동사격 명중률은 미군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생산성이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나는 날 까지 생산된 후기형 FG 42의 수는 약 6000정에 불과했다.

초기형에 비한다면야 3배나 되는 생산량이지만 그렇게 해서 뽑은 양이 초기형까지 합쳐도 1만정에도 미치지 못했으니 생산성은 처참했다.

독특한 개념과 뛰어난 성능의 FG 42 였으나 당연히 저런 생산량으로는 전세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결국 나치 독일은 패배하고 승자인 미국의 손에 넘어가 그 설계 혈통을 이어가게되니 적국을 위한 기술적 가교가 되어버린 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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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

FG 42가 사용된 초기 작전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무솔리니 구출작전이다.

여기서 FG 42는 설계 목적에 따라 침투 직후의 신속한 제압사격을 담당했지만 이탈리아의 완만한 대처로 무솔리니가 구출되기까지 결국 단 한발도 발사되지 않았다.

(작전을 위해 모인 병사들, 무솔리니 구출작전은 독일의 정예중의 정예들이 동원된 작전이었다. 사진에는 적어도 두명의 FG 42 사수가 보인다.)

강습시 FG 42는 신속하고 강력한 화력자원으로서 대처력이나 기민함이 부족한 MG 42등의 본격적인 기관총을 보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독일군의 총기 교범들에는 탄창의 교환 및 콕킹, 점사 컨트롤등을 포함한 현실적인 발사속도(Practical rate of fire)가 포함되어 있는데 FG 42의 경우 분당 200-250발로서 이는 MG 42 LMG의 분당 150-180발보다 우월하며 분당 400-450발의 MG 42 HMG와 비교하면 약 2정의 FG 42가 1정의 MG 42 HMG에 맞먹는 화력을 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짧고 다루기 쉬운 디자인으로 인해 전개가 신속하고 철수도 간단하며 무게 또한 가벼워 기동성이나 운용성 면에서 독일이 보유한 다른 기관총보다 압도적인 이점을 보유한 FG 42는 강습시 쓰일 경기관총으로서는 당시 팔쉬름예거가 가진 무기중 가장 뛰어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잘 훈련된 팔쉬름예거들은 충분한 탄약보급이 주어지거나 강력한 제압사격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FG 42를 반자동 소총으로 사용했다.


(교범에 나온 초기형의 파지법 모범.)

FG 42 사수에게는 기본적으로 160발의 예비탄이 주어졌는데 8개의 탄창을 끼운 밴덜리어를 목에 걸고 다니는 식으로서 기관총으로 쓰기에는 부족한 양이었다.


게다가 총열 교환 또한 불가능하여 교전이 장기전으로 이어질 경우 기관총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무기는 아니었다.

(어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목에 걸도록 디자인되었다. 이걸 걸고 있다는 것은 높은 확률로 FG 42 사수임을 의미한다.)

또 FG 42는 저격소총이나 지정사수소총으로서 운용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설계단계부터 전용 망원조준경이 요구되고 모국과 적국 양측에 의한 테스트에서 자타공인으로 뛰어난 명중률을 증명한 FG 42는 지정사수소총으로서도 우수한 총이었다.


양각대를 펼치기만 하면 되는 경기관총 역할과는 달리 저격소총이나 지정사수소총의 역할은 별도의 휴대가능한 망원조준경을 설치함으로서 가능하다.

FG 42용 망원조준경은 초기형 FG 42/I 전용인 ZFG42와 FG 42/II에 쓰인 G43용으로 개발된 GwZF4가 있었는데 양쪽 모두 배율은 x4였다.

(FG 42용 망원 조준경들, 아래가 ZFG42, 위가 GwZF4 이다.)

망원조준경은 평시에는 주머니에 넣어서 다니다 필요한 시기에 설치하게 되는데 이 경우 기존의 아이언사이트를 접을 필요성이 있었다.


(첫번째 사진에 접힌 기계식 조준기가 보인다.)

FG 42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몬테카시노 전투를 필두로 한 44년 부터이다.


팔쉬름예거의 막강한 전투력과 그들중 일부가 사용하는 이 독특한 총기는 미군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독일군은 7.92mm를 사용하는 가볍고 다재다능하며 공수부대에 적합한 새로운 자동 소총인 FG 42를 장비했다.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MP 38/40이 원래 공수부대용 무기로 도입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이는 마찬가지로 이 새로운 7.92mm 소총 또한 장래에 보다 일반적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경량 설계에서 비롯된 이 새로운 총은 7.92mm 소총탄을 발사하는 근접전 무기이며 단발 및 자동사격 모두 비교적 가벼운 무게와 합리적인 정확성을 제공한다.
독일군은 카빈의 무게와 라이플 또는 경기관총의 능력 사이에서 균형을 확보했다." 


                                                                                            - Intelligence Bulletin by The US War Department June 1944


(몬테카시노에서 전투중인 팔쉬름예거, FG 42/I를 수류탄 박스위에 올려두고 있다.)


그러나 미군의 염려와 달리 FG 42가 널리 쓰이는 일은 없었다.


처음에는 뛰어난 성능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FG 42 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극히 적은 수량만이 생산되어 잊을만 하면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는 수준의 개인무장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전쟁이 끝나는 그날까지 계속되어 오직 이 무기와의 불운한 조우를 경험한 자들만이 그 직접적인 성능을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강둑을 헤치고 은행에 접한 나무의 조형물로 천천히 나아가던 중 (당시 우리가 그렇게 생각했던)MG 34의 갑작스런 공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엄폐를 명했지만 적의 사격위치를 특정하기 까지 3명을 잃었습니다.

새로운 사격이 다른 위치에서 발사되었고 중위를 5 ~ 6번 강타해 그를 즉사시켰습니다.
그때 나는 처음 독일군을 목격했고 그는 일어나서 은행에서 약 200 야드 거리를 이동했습니다.
사실 그는 MG 34를 들고 있지 않았으며 대신 그 손에는 공포스런 FG 42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나는 제3의 FG 42가 우리 위치에서 남쪽으로 약 250 야드 떨어진 숲지에서 사격하여 5명을 쓰러뜨릴 때 우리가 무엇을 상대로 하고 있는지 이해했으며 부하들을 모아 엄폐물을 찾으려 했습니다.

독일군은 우리가 재배치, 기동 및 반격을 하기 전에 성공적으로 후퇴했으며 그것은 무겁고 큰 기관총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분대는 8명의 사상자가 생겼지만 단 한명의 독일군을 목격했을 뿐이었습니다." 


                                     - after action report of operations to cross the Rhine in 1945 by US Army Airborne sergeant


"형용사 '공포스런'이 사용되고 있다.

보통 저런 형용사가 MG 42와 같은 무기에 붙는 경우는 흔하지만 자동 소총에 대해서는 드물다.

보고서의 저자가 여러가지 이유로 FG 42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선 무기의 정확성이다. 미군은 약 200m 거리에서 교전을 시작했으나 순식간에 다량의 사상자를 내고 있다.

두 번째는 MG 34로 오인시킨 화력 투사량이다.

셋째, 가장 중요한 점은 소총 수준의 편의성과 기동성으로 기관총 수준의 화력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 GERMAN AUTOMATIC RIFLES 1941–45 by Osprey Publishing


(교범에 나온 후기형의 파지법 모범.)


그러므로 전장에서의 FG 42를 평가한다면 이 한줄이 적당할 것이다.


'너무 늦었고 너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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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FG 42는 그 이름 그대로 공수부대용 소총으로서는 설계목적을 확실히 달성한 성공작이었다. 


상정된 대부분의 상황에 대응가능한 다재다능함에 더해 뛰어난 성능을 지니고 신뢰성이 우수하며 다루기도 쉬운, 등장 당시로선 거의 완벽에 가까운 총이었다.


그러나 히틀러가 대대적인 공수작전을 불허한 시점에서 FG 42는 이미 설계목적부터 의미를 상실했다.


게다가 소수의 정예 인적자원을 위한 무리한 만능형 고성능 설계 덕분에 생산성은 최악이었다.


사실 2년에 걸쳐 8천정에 불과한 생산량과 특유의 개념 및 성능을 가정하면 FG 42는 정규무장보다는 특수목적용 무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성능과 운용개념은 제한된 시간에 최대한의 화력을 쏟아붓고 빠른 기동력을 지닐 필요성이 있는 침투공작등에 적합하며 극히 적은 생산량은 마찬가지로 소수인 특수부대정도나 무장시켜주는 수준이다.


실제로 전쟁초기 수십명의 기습적인 공중 강습으로 에방 에말 요새등을 무력화시켰던 팔쉬름예거를 생각하면 썩 드러맞는다고 할 수 있지만 공수작전이 사실상 봉인되고 팔쉬름예거가보병화되어 그 수가 점점 불어나던 시기에 등장한 FG 42, 특히 본격 생산형인 FG 42/II 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결과적으로 FG 42는 팔쉬름예거를 전혀 잘 무장시켜주지 못했다. 


당연히 유의미한 전투력 향상은 없었고 FG 42는 들인 노력과 비용에 비해 정말이지 전쟁에 대한 기여가 전무했다.


게다가 개발 당시 독일에 이미 Mkb 42(H)같은 선진적 개념과 우수한 생산 잠재력을 겸비한 총이 존재했다는걸 감안하면 FG 42같은 럭셔리한 총기의 생산과 개발이 계속된 것 자체가 독일군에게 독이었다.


일찌감치 돌격소총에 역량을 집중하여 대량생산 능력을 확보했다면 팔쉬름예거 대다수에게 쥐어주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었을 것이고 당연히 팔쉬름예거의 전투력도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팔쉬름예거의 입장에서만 서술해도 이러할진데 독일군 전체로 보자면? FG 42는 자원과 인력의 낭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당대에 손꼽히는 만능에 고성능의 총이었지만 엄밀히 말해 만들 이유가 없었던 총이다


한정의 무기체계로서의 성능만은 뛰어나나 상황상 존재 자체가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는 FG 42와 같은 총기가 도태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당시 나치 독일 자체의 비효율성을 보여준다.


사실 등장 후 전쟁이 끝날 때 까지 내부에서 나치 독일을 방해하고 전후에는 자유진영으로 넘어가 총기 개발에 공헌한 진정한 자유의 투사다


(10발 탄창을 장착한 팔쉬름예거 지정사수, 사실 반자동 소총으로 운용하기에는 10발 탄창도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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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소총으로서의 FG 42 ?


소총탄을 이용하며 자동사격이 가능한 무기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FG 42도 전투소총으로 분류될 수 있다.



전투소총과 비교하면 FG 42는 후기형 기준으로 좀 무거운 편에 들어가나 미군의 테스트에서도 드러났듯이 특유의 반동제어 구조와 무게 덕분에 전투소총이라는 카테고리 내에서도 우수한 자동사격 명중률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전투소총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돌격소총에 비해 자동사격시 명중률이 떨어지는 과도기적 산물이라 동시기 StG 44와 AK-47의 선진적인 개념 앞에선 보조적 위치에 머무르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FG 42는 생산성이 극히 떨어졌던 것에 반해 애초부터 제식 소총으로 설계 및 채용된 다른 전투소총들은 전군을 무장시키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전투 소총으로서도 성능만은 수준급, 하지만 채용 메리트는 없는 총이라고 할 수 있다.


(사수 입장에서야 생산성 같은건 의미 없으니 휴대성 좋고 관리도 쉬우며 다용도로 사용가능한 좋은 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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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


나치 독일이 멸망으로 FG 42의 병기로서의 커리어도 끝났지만 그 기술적 혈통은 미국에서 이어지게 된다.

독일 교범상 FG 42는 기본적으로 반자동소총으로 사용하며 자동사격은 옵션이었던 것에 비해 미군내 테스트에서는 뛰어난 성능과 함께 지속적인 자동사격에도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했다.

그 우수한 성능과 설계를 높이 평가한 미군은 MG 42에서 급탄매커니즘만 뽑아와서 FG 42에 적용하니 이것이 바로 7.92mm T44 LMG 이다.


(T44 LMG, 탄띠식이라는 것만 빼면 FG 42/II 그 자체다. FG 42에거 그다지 바뀌지 않은 탓에 개폐구도 탄창이 있던 왼쪽이다.)


이 T44는 카트릿지를 7.62x51mm NATO로 변경하고 본격적인 기관총으로서 총열을 강화, 일반적인 상부 덮개 디자인을 채택하는등의 개량을 거쳐 T52로 발전한다.


(개발중인 T52의 모습, 이제 FG 42의 원형은 권총손잡이와 개머리판 끝부분 밖에 남지 않았다.)


(T52의 최종형인 T52E3, 약간 비슷한 실루엣을 제외하면 FG 42의 원형은 남지 않았다.)


본격적인 기관총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T52는 E3까지 개량을 거듭하여 T161로 완성되고 결국 T161E3가 채용됨으로서 우리가 아는 M60 기관총이 탄생하게 된다.


T44에서 최종 결과물인 M60이 완성되기까지는 다양한 총기의 아이디어들이 사용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FG 42는 직접적인 토대가 된 총으로서 M60은 FG 42의 직계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T161, M60이 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FG 42와의 공통점은 내부 매커니즘과 약간 비슷한 실루엣 밖에 없다.)


그러니 모두 M60을 볼 때면 구식 낙하산으로 허우적거려야 했던 팔쉬름예거 장병들과 어렵게 만들고 나니 의미가 사라진 FG 42를 기억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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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teeldivision&no=3337&page=1


여그서 불펌햇당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