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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해군 군함의 등급은 3개로 구분된다. 대령이 지휘하는 1급함, 중령이 지휘하는 2급함 그리고 소령이 지휘하는 3급함이다. 내가 함장을 맡은 영가함(永嘉艦)은 2급함으로, 독일에서 직수입해온 따끈따끈한 최신식 소해함이었다. 배수량은 크지 않았으나 신형이라는 점에서 해군 전력의 핵심이라고 할 만했다.
나에겐 소해 임무에 관한 경험이 전무했다. 소해 경험이 전무한 장교에게 소해함을 맡겼다는 사실에 나도 놀랐고, 함대 장교들도 놀랐다. 함대 본부에서 해군참모총장이 내 뒤를 봐주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해군참모총장과 내 관계에는 다소간 불화가 있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내가 무기 도입 부서로 가기 전 나를 부관으로 삼으려다 말았던 함대사령관이 해군참모총장으로 승진한 상태였다.
성공급 호위함 1번함 부함장 직을 맡으면서 해외에서 훈련받으려고 준비하던 찰나에 해군참모차장이었던 그 사람이 특별히 나를 불러 격려했다. 그러고는 해외 교육 마치면 날 만나러 오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겨우 3개월 만에 복귀하리라곤 나도 그 사람도 예상 못했다. 돌아온 후 나는 찾아가지 않았다. 자신의 호의가 무시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든 그 사람은 이전까지 나한테 친근했던 태도를 180도 바꿨다.
해군참모총장이 봐주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내가 소해함 함장이 될 수 있었을까? 알고보니 내 뒤를 봐준 사람은 다름 아닌 당시 대만 국방군 합동참모의장이었던 이걸(李傑)이었다. 남은 해군 생활 5년 간, 내 군생활은 놀라우리만큼 별 탈 없었다. 참모총장께서 나를 케어해주고 계셨다. 그 시절에는 감히 참모총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못했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어떻게 그 분이 나를 알고 있었을까?
언젠가 열렸던 해군 회의 때 이걸은 함대 사령관 직에 있었고 나는 회의에서 중역을 맡은 20여명 중 한 사람이이자 회의 참석한 장교 수백명 중 1명이었다 이걸은 회의가 끝나기 직전에 연설을 했는데 간부들이 제출한 보고서 내용이 엉망이라며 쓰레기라고 까대는 게 주제였다.
그러나 그 분께선 '황정휘(이 글 쓴 인간)가 쓴 보고서만이 가치 있었으니 이 보고서에 따라 함대 사령부가 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라고도 말했다. 장교 수 백명 앞에서 연설을 마친 그 분은 내가 앉아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씨익 웃고는 다가와서 악수를 했다. 그리고는 회의장을 떠났다.
시간이 흘러 이걸이 국방부장관으로 승진했고, 소위 '천수이벤 총통의 예스맨'로 전락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그의 상관부터 부하까지 다 이걸을 욕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분이 무척 걱정되었다. 그분께서 나를 돌봐주셨으니 나도 그분을 옹호해야 겠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봐라. 장관 몇 명에게 총통 말 안 듣고 선택할 자유가 있을까. 내뱉는 말 한마디에 밑에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의 밥줄이 휘청거린다. 장관이라는 직책에 걸린 무게는 크다. 선택의 자유는 없다. 특히 군인에게 순종이란 의무다. 천수이벤은 대만 린민들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이자 3군의 지휘관인이상 네가 군인이라면 반드시 천수이벤에게 충성해야 한다.
저 입장에 처해보지 않고서 입만 나불대지 마라. 적어도 내가 이걸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나도 명령을 따랐을 것이다. 아마 너도 별 수 없을 것이다.
영가함의 함장으로 2년을 있었다. 남들이라면 1년 채우고 다른 배로 갔었겠지만 내 경우는 달랐다. 나는 국방대학교 교육 과정을 수료하지 못했다. 국방대학교에 가지 못했다면 승진 희망은 버리는 게 속 편하다.
국방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해군 장교에게는 별은 고사하고 1급함 함장이 될 자격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내가 현역이던 시절에는 이랬다는 얘기다. 지금은 좀 다르다고 들었다. 그리고 해군육전대의 승진 과정은 해군과는 완전히 다르니 논외다).
그 해가 내가 연례 입학 시험을 치를 수 있었던 마지막 년도였다. 이 시기를 놓친다면 난 1급함 함장이 될 수 없었다. 게다가 입학 시험에 응시한다한들 좋은 성적을 거둬야 입학 가능했다. 공부해야 할 건 많은데 남은 시간도 어정쩡해서 응시해봐야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나는 깔끔히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해군참모차장이 내가 국방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힘을 써줬다. 더욱 운 좋게도 인사처에서 나를 병기처 부장으로 지명함과 동시에 대령으로 승진시켜줬다. 대학에 입학한 1월 1일에 나는 대령으로 정식 승진했다. 대령 계급장을 옷길에 달고 책상에 앉자 주변 사람들이 놀라움의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다른 사람들은 소령 아니면 중령인데 나 혼자만 대령이었다. 내가 아는 한 대령달고 국방대학교에 입학한 해군 장교는 오직 둘 뿐이다. 하나는 국가 안전 보장 회의의 부총장을 맡았던 해군 중장이고 다른 하나가 나였다.
대만 해군에는 신조함의 장교들은 미래에 탈 군함에서 할 일을 익히기 위해 최소 6개월 전에 배가 배치돨 곳에 가있어야한다는 규칙이 있다. 내가 국방대학교에서 졸업했을 무렵, 성공급 호위함 7번함이 배치 직전 단계였다. 당장 군항으로 뛰어가봤자 2개월 뒤에 실전 배치될 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계속 흘렀음에도 7번함의 함장 자리가 비어있었다. 나는 잘 하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만약 7번함의 함장이 된다면, 실로 영광스러울 것이다.
슝펑 미사일에 관해서 겪은 재밌는 일화가 하나 있다.
수병들이 슝펑을 재장전하는 과정에서 미사일을 떨어트려 탄두가 찌그러지는 사고가 있었다. 장전 절차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때문에 난 군생활 2번째로 징계를 받았다. 작은 징계였다.
내가 7번함의 함장으로 발령났다는 소식이 들려온 건 7번함이 실전 배치된 지 겨우 한 달밖에 안 지난 시점이었다. 페리급 7번함 함장으로 지냈던 기간은 내 해군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왜 즐거웠냐고?
내가 부하들을 다루는 방식은 좀 특이한데 타인의 눈에는 내가 무책임함장으로 보일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배에 승선할 때마다 나는 부함장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이제부터 네가 함장이다. 그리고 나를 함대 사령관이라고 상상하고 배를 몰아라. 부함장은 말만 안 했을 뿐 내심 성가셨을 거다. 어쨌거나 부함장은 배를 24시간 책임지고 관리했다.
식사 시간이 되면 간부들하고 함께 밥을 먹었다. 밥을 먹은 뒤에 뭘 했냐고? 열의 아홉은 함장실에 들어가서 낮잠을 잤다. 출항하지 않을때는 관사에 있는 테니스 장에서 테니스를 매일마다 서너시간씩 쳤다. 출항했을 때는 함장실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다. 가끔씩 함교에 나와 배를 살펴보긴 했다. 나는 고함치는 식으로 부하들을 관리하지 않았다. 지적할 일이 있을 때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따로 불러 1대1로 지적했다.
높게 떠있는 태양을 등지고 서서 폼 잡으며 일장연설을 해봤자 그 누가 집중해서 듣겠는가. 매우 진지한 걸 얘기할 때는 사람들을 모아 회의를 했다. 아니면 방송으로 '전 승무원은 주목, 지금부터 함장이 전한다' 식으로 전파 사항을 얘기하거나.
대만 해군의 모든 함장들이 나처럼 행동한다고 여기지 말아줬으면 한다. 극소수의 함장만이 방송을 쓴다. 7번함의 장교와 수병들은 아마 내 얼굴보다 목소리가 더 친근했을 것이다. 내가 함장으로 있는 동안 그 어떠한 부상자도 없었고, 싸움질도 없었고, 명령에 불복종하는 인간도 없었다. 배의 분위기는 '온화함 그 자체'로 함대의 모든 배 중 가장 안정적이었다. 7번함 함장으로 있는 동안 5번째 소설을 집필했고, 퇴역에 관해 심긱하게 고민을 했다. 결심이 서자 난 이걸 참모의장께 편지를 썼다.
그러나 국방대학교 졸업자는 일정 기간 동안 퇴역을 할 수 없다는 조항(졸업 후 5년)이 있었기에 나는 편지에 함장 대신 국방대학교에서 교수로 있고 싶다고 적었다. 내게 있어 학업에 대한 욕망은 천부적인 것이었다. 합동참모의장이 함대를 방문했을 때 나를 소환했고, 총장님 앞에서 몇 마디 말로 호소했다. 내 어조에 진심이 깃들어있다는 걸 안 의장님은 아무말이 없으셨다. 그래서 나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 날 밤 우리 둘 사이를 오갔던 대화의 무게감은 평생 동안 나눌 대화의 90%를 차지할 거라고 생각한다.
국방대학교로 발령받긴 했는데 그곳에서 첫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국방부에서 기한때문에 자의로 퇴역하지 못하는 대령이라도 20년 이상 복무했으면 바로 전역할 수 있다는 명령문을 발표했다. 그 때 내 복무 년도는 딱 20년이었다. 이 명령은 나를 위해 내려진 것 같았다.
국방부 명령이 내려오자 마자 나는 국방부 인사처로 달려가 전역 신청서를 제출했다. 제출한 날 저녁에 인사처 부국장이 내게 접수되었다고 전화했다. 국방대학교 학장은 며칠에 걸쳐 전역하지 말라고 조언했지만 내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해군 생활을 너무 오래했다.
대만군에는 육해공 안 가리고 대령이 퇴역하는 날에 군 친구들이 모여 한바탕 마시는 풍습이 있다. 나는 아무한테도 내 전역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전역 당일에도 평소같은 기분으로 지냈다. 오후에는 테니스도 쳤다. 우울감같은 건 안 느껴졌다. 퇴근하기 전에 학장님께서 교수 1명, 후배 1명과 나를 데리고 밖에서 저녁 식사를 햇다. 일종의 송별식이었다. 정상적으로 내가 전역하려면 앞으로 7년을 더 복무해야 했지만 그 저녁 식사로 남은 7년이 차감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매우 친하게 지냈던 교수 1명(현재 매우 유명한 군사 전문가로 이름 높은)이 나를 나이트 클럽에 초대했다. 나이트 클럽에 간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몇몇 친인들과 함께 몇 잔의 맥주를 마셨다. 술자리가 끝나고 일행들이 나가 떨어졌을 무렵, 나와 해군사관학교 동창은 국방대학교 운동장을 거닐었다. 나는 정적이 깔린 운동장을 거닐다 목이 메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가지만, 너만큼은 앞으로 해군에서 잘 해야 해'
내 말을 들은 친구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걸 본 내 마음도 슬퍼졌다.
번역 내용은 반의 반만 믿어라.
이게 마지막 편임. 후일담 격으로 해군 생활을 겪으며 배우고 느낀 점을 쓴 게 있지만 그거는 번역하기 힘들다.
위/영관 때 피말리게 노력하다가 대령 달고 긴장 풀어도 될 환경에 놓이니까 현자 타임이 급격히 찾아와서 그걸 못 버티고 전역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 참모총장이 머만식으로는 사령관이고ㅜ합참의장은 총참모장이라 부르니 좀 햇갈리네
키타키타키타키타앗
대령되고 진짜 현자타임온듯 - dc App
현탐안오는게 이상할 정도의 군생활
너무 격렬하게 살아와서 대령 다니까 현자타임 왔네. 만약 좀 더 포기하지 않았으면 분명히 별 달고도 남았겠는걸. 여태까지 투견마냥 씹FM으로 살다가 대령되니까 테니스 치는것 무엇
백도 있겠다 버텼으면 별도 달았겠네...
결국 줄 탔네 뭐 ㅋㅋㅋ
번아웃 되버렸구먼
이거시 장포대의 위엄인가
걍 현타올만했네
넘재밌넹
합동참모의장이 뒤 봐주고 있으니 미친개처럼 물고다녀도 문제없었네...
합동참모의장이 뒤 봐준 건 대령단 이후고. 미친 개 시절에도 안 짤리게 커버쳐 준 사람이 있을텐데 저 양반이 언급을 안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