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배상청구권 문제는 이미 샌프란시스코 조약부터 지적되어왔을만큼 강한 논쟁거리였고 일본측이 바락바락 우리 지불능력 없는데 어칼 건데요 해서 배상 대신 차관과 경제협력으로 받아낸 곳도 수두룩합니다.
둘째, 장개석도 배상 청구권 포기했습니다.
셋째, 배상청구권 포기를 주도한 사람은 주은래와 대일본조였습니다. 모택동이 아니라요.
첫째, 배상청구권 문제는 이미 샌프란시스코 조약부터 지적되어왔을만큼 강한 논쟁거리였고 일본측이 바락바락 우리 지불능력 없는데 어칼 건데요 해서 배상 대신 차관과 경제협력으로 받아낸 곳도 수두룩합니다.
둘째, 장개석도 배상 청구권 포기했습니다.
셋째, 배상청구권 포기를 주도한 사람은 주은래와 대일본조였습니다. 모택동이 아니라요.
우린 이미 받아냈잖...
우리도 그래서 말 많잖아요.\
근데 해외에서 전쟁 피해국이 아니라 식민지가 식민통치 명목으로 배상청구 받은적 얼마나 되유?
사실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이 입 싹 씻은게 아니라 아시아여성기금 같이 배상시도는 있었음. 다만 위안부에 한정되고 징용 피해자나 원폭 피해 재일교포 문제는 잘 모르겠고 - dc App
이탈리아-리비아, 네덜란드-인도네시아가 대표적인 경우고, 식민통치 때 탄압받았다, 해서 개인이나 단체가 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그에 대해 배상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번 영국-케냐 독립조직 탄압 문제가 그렇고요.
그럼 1960년대 즈음해서는 없었나유?
네. 그 때쯤이면 아직 구 식민제국들이 식민지 놓지 않으려고 발악했던 시기입니다.
한일기본조약이 참 빠르긴 빨렀네유. 뭐 식민지 다 털리고 수도 아작나고 피해자 싹 무시된 조약이기는 하지만서도
한일기본조약이 쉽게 풀린 것 역시 배상금이 양측에서 원만하게 합의 볼 수 있었기 때문이죠. 필리핀은 합의 실패로 넘어갔었고 인도네시아는 국내반발로 조약이 발효되지 않았습니다. 버마 같은 경우는 배상을 위한 조약만 세 차례였고요.
머한은 당장 현금이 급했고 일본은 빨리 처리하는걸 원했을테니까요. 그 와중에 구보타가 입 턴거 생각하면 안 맺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은 하는데 자민 막부랑 머한 군사정권이 어떻게든 야합 했겠죠 뭐
근데 일본놈들 필리핀에다 몇억불 경제지원인가 하는 명목으로 쥐어주지 않었으요? 내가 잘못봤나
피해자가 뭐 마냥 무시받았다고 하긴 뭣한게;; 박정희가 그거 받아서 위안부에 보상 안한건 아님 - dc App
구보다면 내가 아는 그 구보다인가? 건설업자인가 그럴텐데. 한국 기자한테 "한국에서는 내 욕 안하죠?" 물어보고ㅋㅋㅋㅋㅋ - dc App
5억 5천만 달러 배상, 2억 5000만 달러 차관요.
읭 그럼 합의 실패해서 넘어갔단건 뭠까?
배상협정이 정식으로 맺어진 건 1956년의 일이었습니다. 그 전에 1953년에도 침몰선박 관련해서 배상협정을 맺으려고 했는데 액수 합의 실패로 중단된 겁니다.
아항. 마지막 질문인데 혹시 전쟁 피해국이랑 식민지는 배상할때 대우에 관해서 차이가 있나요?
글쎄요. 그거 관련해서는 본 적이 없는데요. 보통 피해 보상은 피해국과 가해국이 우리 자료는 이렇다, 그러니 이 정도를 주겠다 또는 받겠다 해서 거기에서 협상하며 가감을 하는 거거든요.
일본이 못해도 중국에 500억 달러는 줘야할텐데 한 것도 전후 국민정부가 직접 손해액 313억 달러, 간접 손해액 204억 달러, 민간인 사상자수 1,040만 명으로 공식 계상했기 때문입니다.
뭐... 독립축하금 그런거 아님? - dc App
이름이 뭐라 붙었던 배상은 배상이죠...
대우 얘기 나와서 - dc App
대우 그룹은 망해서 이제 없어요.
ㄴ 아재개그 계속 하면 아고개 됩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