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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상 학살의 주체에 대한 취재도 있었으나 이에 대하여 정떡이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는 가능한 간략하게 쓰겠다.

1-언제인가?

1950년 7월에서 9월 사이.
한국전 이후 최소한의 전투행위조차 실패하고 후방으로 밀린 시점에서 시작.
7월 말에는 하루에도 수백명씩 학살을 당한다.

2-어디인가?

학살현장 가운데 한곳은 경산시 평산동의 구 코발트 광산으로 현재는 골프장이 들어서 있다.
유족측은 이에 학살현장을 보존해 달라 요청,주요 현장은 보존했으나 가장 많은 학살이 일어난 대원골의 현장은 일부 유골 수습 후 골프장 일부가 되었다.

3-누가 당했는가?

평소 요주의 인물이던 민간인,국민보도연맹원,대구교도소 수감자.
경산,청도지역의 연맹원과 민간인 천여명과 교도소 수감자 이천오백여명.

4-규모는 어느정도인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최대규모의 민간인 학살사건.
총 삼천 오백여명이 학살당했으며 이에는 민간인과 미결수 수감자가 포함.
경산 약 사백명,청도 약 사백명,기타 영천 대구지방 이백여명으로 1960년대 접수한 유족명단과 지역 유족숫자,시민단체와 유족회에 신고여부를 문의한 이들의 숫자를 감안한 수치
대구형무소에서는 부산 형무소로 이감된다고 인계되었으나 부산 형무소에 수감되지 않은 이들이 이천오백칠십사명인것을 감안한 수치.
보도연맹원과 민간인의 경우 신고되지 않은 숫자도 있다고 보인다.

5-희생자들

피살자들은 남성이 대다수로 여성의 경우 15인이다.
가장 많이 피살된것은 30대,두번째로는 20대이며 10대 9명을 포함한다.
연맹원과 민간인의 경우 농업인이 가장 많고 학생,공무원,교원 일부가 포함된다.

6-누가 했는가?

국가차원에서 이승만 정권의 주체아래 군,경,CIC 대원이 실행.

7-지금은?

총 4차까지 이루어진 유해발굴 작업이 이루어졌으나 유가족들의 청원에도 불구하고 경산시는 이를 무시하고 평산동 골프장 건설을 허가.이곳의 현장은 사라졌다.
60년대의 진상규명 활동은 60년 5월 이후 유족회 간부가 투옥,위령탑과 묘소는 파괴되었다.93년부터 밀레니엄 이전까지는 다시금 이 사건을 수면위로 떠오르게 만드는 활동이 있었으나 큰 진척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00년도 이후 노근리 학살사건이 서울발로 보도되며 각종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규명 요청이 이루어진 뒤부터 유골발굴 등의 활동이 개시된다. 이후 꾸준히 진상규명활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현재 다른 현장들은 남아있으나 예산부족등을 이유로 거의 방치되어있다.

8-유족 발굴현장의 참혹함

(전략)...육안으로도 10여구가 넘는 유골 무더기였다...(중략)...한 3미터 정도 전진했을 뿐인데도 준비해 들어가 3개의 소쿠리가 가득 찼다...(중략)...당시 유골을 수습한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 연구원들은 육안으로도 수백구가 넘는 유골이라고 밝혔다...(후략)




추신-일부 피해자들의 피살 경위와 현장과 유해 사진

※최경조(마곡동 남 34세)-1950년 7윌 11일 밤 12시 경,빨치산이 와서 경찰 가족이라며 이유불문 사살

※최동철(마곡동 남 57세)-위,최경조와 동일

※윤진태(백천동 남 37세)-경산 경찰서 형사가 모심기하던 사람을 데리고 감.이후 행불

※강도경(사정동 여 28세)-사상범으로 재판 회부,무죄 석방됬으나 CIC대원에게 연행되어 행불

※이규선(삼남동 여 31세)-경산군청에 근무하던 부친을 만나러 가던 도중 친구의 부탁으로 삐라를 군청에 두고 옴.이후 경찰에 인솔된 후 행불

※이남덕(이천동 남 41세)-서울 군인들이 야간에 침입하여 연행 뒤 시지동 뒷산에서 무조건 총살

※이춘도(부기동 남 28세)-본동 서석윤씨 등 2,3명과 수박을 따먹으로 가다 공산당이란 누명을 받고 가출 후 행불
이후 전 가족이 6개월간 지서에 구속되어 반병신이 되도록 고문당함

※박윤곤(평사동 남 22세)-논에서 벼를 베다 영천 대창지서원이 나타나 추격중인 과거 사상자 행방을 묻기에 모른다 하자 "너도 사상자지"라 하며 그 자리에서 총살

※박성조(봉회동 남 18세)-49년 9월 8일 저녁식사 후 순경이 체포하여 적색분자 원부에 날인.그 후 대구형무소에 미결수로 있다 50년도 6월경 행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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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2-
이 도서는 경산 신문사에서 저술한 것으로 저작권은 모두 경산 신문사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그 내용을 옮겨 적는것은 결코 다른 의도가 있는것이 아니며 경산을 포함한 제주와 노근리를 포함한 수많은 민간인들의 무고한 죽음에 대하여 최대한 많은 이들이 알아주고 앞으로의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에 대한 추모에 소극적으로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기 때문이다.
차마 입에 담기에도 너무도 끔찍하고 놀라운 일들이지만 이는 대한민국 역사사에 분명히 있었던 일이며 고인이 된 수많은 피살자들에 대한 사실은 확실히 자각하여야하며 이에 대하여 또다시 눈물짓는 이들은 없어야 될것이다.
(주)경산 신문사의 기자들에게 찬사를 보냄과 동시에 피살자들에 대한 추모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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