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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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알아보겠는가? 만약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해 가장 유명한 사진을 꼽자면 유력한 1위 후보로 꼽힐 정도로 매우 잘 알려진 사진이다. 하지만 그러한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이 사진에 담긴 정보를 본격적으로 분석한 사례는 극히 찾아보기 힘들다. 이 사진에 담긴 포상은 어디인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가? 포탄이 낙하한 지점은 어디인가? 포반원들은 어떤 대응을 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제시된 글은 거의 없다.

지금은 뜸하지만 당시에는 포7중대의 대응사격에 대해 거샌 논란이 있었던만큼, 이러한 정보의 부재는 매우 안타까운 것이다. 비록 언론 보도와 해병대원 수기와 같은 자료를 통해 당시 상황에 대한 정보가 비교적 자세히 공개되긴 했지만, 사진만큼 시각적으로 확실하게 당시 상황에 대한 정보를 담은 매체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이와 같은 사진들에 담긴 정보를 다른 공개정보들과 함께 교차검증하고 분석한다면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에 대해 보다 정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것이다.

사진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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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포격 당시 해당 포상을 찍은 다른 사진들을 보면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우선 포상의 구조, 진출입로의 위치, 나무의 위치와 형태, 배경의 건물 등 포상의 위치를 특정하는데 충분한 정보가 있다. 이러한 정보를 구글어스 위성사진과 조합하면, 사진에 나온 포상이 포7중대 생활관에서 가장 가까운 1포 혹은 2포라는것을 알 수 있다. 불행히도 이 결론을 얻는 구체적인 과정을 설명하려면 포7중대 위성사진을 직접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자세한 설명을 할 수는 없다.

비록 위성사진에 대한 설명을 하지는 못하지만 대신 사진에 찍힌 포상이 1포라는 다른 근거가 있다. 바로 해병대원들의 수기로, 이에 의하면 당시 포격으로 인해 1포 포상에 화재가 발생해 진화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진 3과 4를 보면 포상과 그 주변 수목에 불이 붙어있고 연기가 자욱한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는 사진에 찍힌 포상이 곧 화재가 발생한 1포라는 근거가 된다.

사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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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격 이후 1포 포상을 찍은 사진으로, 앞서의 사진 1~4와는 다르게 반대편에서 찍은것이다. 포상 위에 검게 탄 잔디가 한때 상당히 큰 화재가 발생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해상도가 좋진 않지만 포에 적인 701이라는 숫자는 이 포가 포7중대 1포라는것을 알려준다. 위성사진과 비교해봐도 이 사진의 포상이 아까와 같은 1포 포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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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포격 이후 포상 벽에 남은 파편의 흔적으로, 사진 1에서 포상 벽에 보이는 파편흔과 비교해보면 이 사진 역시 앞서와 같은 1포 포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사진 7의 왼쪽 아래에 있는 불에 그슬린 장약통은 화재의 또다른 흔적을 보여준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 1포 포상에서는 사진 6, 7에 보이는 벽에 적 포탄이 낙하해 폭발했고, 그 때 생긴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가면서 포상 벽에 무수한 파편흔을 남겼다. 그리고 그 파편 중 일부가 바깥에 있던 장약에 불을 붙이면서 사진 1, 2에 보이는 화재가 발생하였다. 당시 1포는 사진 1, 2에서 보이듯 바깥에 나와있었는데, 포탄 낙하 위치와 파편흔의 분포를 보면 다행히도 포 자체에는 파편이 별로 비산되지 않았을 것이라 추정된다. 하지만 장약 화재가 번진 것인지 추가적인 적포탄 낙하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사진 3, 4와 같이 포상 주변 수목에 화재가 번졌고, 이로 인해 1포는 진화작업에 전념하느라 대응사격에 참가하지 못했다. 사진 5를 보면 당시 화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사진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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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포격 이후 사진을 보면 파편흔이 1포 포상과는 다른 포상이 보인다. 사진 8을 보면 포에 적힌 숫자 703이 보이며, 따라서 이 포상은 3포라고 추측할 수 있다. 당시 수기를 보면 3포는 피격으로 인해 자동사격을 할 수 없어 반자동사격으로 전환해 대응사격을 실시했다고 되어있으므로 역시 사진 8~11의 포상이 3포라는 가정에 들어맞는다.

사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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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8~11의 파편흔 분포를 보면 3포에 떨어진 포탄은 1포와는 다르게 포상 바닥에 낙하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11과 같은날 찍힌 사진 12에서도 포상 바닥에 떨어진 포탄 흔적이 보이는데, 사진 12의 포상이 사진 11의 포상과 같은곳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정황상 같은곳이라 봐도 될 것이다.

적포탄 낙하 당시 1포가 바깥으로 나와 있었듯이 3포 역시 바깥으로 나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당시의 실제 상황은 사진 8에서 보이는 것과는 다소 달랐을 것이다. 구체적인 낙탄 위치와 파편 비산 분포, 당시 3포의 위치 등을 알 수 없어 자세한 분석은 제한되지만 1포와 비교했을때 보다 더 많은 파편에 피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포7중대는 2포, 5포, 6포의 3문이 1차 대응사격을 실시했고 2차 대응사격때는 3포가 더해져 총 4문으로 대응사격을 하였다. 대응사격에 참가하지 못한 포 중 4포는 북한의 포격 전에 있던 우리의 사격훈련에서 발생한 불발탄 때문에 대응사격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1포와 3포는 적 포격으로 인한 피해 때문에 대응사격에 참가하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언론보도와 수기 등을 통해 공개된 사실이지만 과연 1포와 3포의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에 대한 정보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진 분석을 통해 어느 포에서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시각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비록 당시의 상황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보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시각 자료는 당시의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하고 체감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