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기병의 선두대열이 장창보병에 걸려 낙마하자, 기병대의 흐름이 정체되기 시작했고, 신라의 장창보병이 기동력이 사라진 당 기병을 포위하여 대파하였다. 이때 장창당이 당병 3000명을 포로로 잡았다 한다. 그러나 이후 신라군은 장창당을 너무나 과신하게 되었고 다른 여러 부대들의 포진에 있어 긴장감이 떨어졌다.
당 기병이 이 허점을 노리고 다시 진격해왔다. 역습을 받은 신라군은 장군 의복을 비롯하여 대아찬 효선, 사찬 의문·산세, 아찬 능선·두선, 일길찬 안나함·양신 등이 전사하는 등 전멸하다시피 했던 것이다. 화랑 원술(元述)이 참전하였다 대패하고 일생을 후회 속에 산 것도 이 전투였다.
이후 신라군은 당군에게 정면승부를 걸지 않고 지구전으로 전술을 선회하였다. 따라서 전투 그 자체가 소규모화 되고 동시에 그 횟수가 많아졌다.
나당전쟁 석문 전투에서 캐리하다 방심해 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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