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루쇼프가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한 것을 안 케네디는 자신이 흐루쇼프에게 속은 사실을 인정했다. 금속 노동자 출신인 흐루쇼프는 다중적인 인물이었다. 어떤 때는 사근사근하고 어떤 때는 무례했다. 친근하게 대하다가 협박하기도 했다. 흐루쇼프는 케네디가 만난 다른 정치인들과 완전히 달랐다. 1961년 6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단 한 차례의 정상회담은 악몽이었다. 흐루쇼프는 미국의 잘못에 대해 설교를 했고, 서베를린을 점령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을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가 필연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과시하면서 케네디를 어린애 다루듯 했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핵전쟁의 위험성과 양측의 오판으로 핵전쟁이 촉발될 수 있다는 케네디의 우려에 대헤 흐루쇼프가 공감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 사실이었다. 흐루쇼프는 아무렇지 않게 핵무기를 초강대국간 경쟁에 있어서 한 가지 요소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전쟁을 원하면 "당장 해봅시다."라며 거칠게 몰아붙혔다. 회담이 끝난 뒤 케네디는 <뉴욕 타임스>의 제임스 레스턴에게 말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흐루쇼프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습니다." 자신의 상관이기도 한 케네디의 회담 성과를 경멸햇던 존슨 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흐루쇼프가 불쌍한 친구를 질겁하게 했지."



빈 정상회담 직후에 케네디를 만난 해롤드 맥밀런 영국 총리는 존슨보다 약간 더 동정적이었다. 맥밀런은 케네디가 "소련 서기장의 무자비함과 만행에 압도되었다."고 여겼다. 난생처음으로 케네디는 "자신의 매력에 둔감한"인물을 만난 것이다. 나중에 맥밀런은 이런 말도 했다. "한편으로 이 일은 핼리팩스 경이나 네빌 체임벌린이 히틀러와 회담할 때를 떠올리게 했다."



-, 마이클 돕스.




- 흐루쇼프 깡다구가 좋은건 꽤나 알려졌지만 케네디가 이렇게 쩔쩔매었다는 건 좀 의외인듯. 나중에 쿠바 미사일 사태가 심화되면서 매파 내부에서 나온 우려와 걱정은 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근거가 있었다고 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