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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홍콩으로 진주하는 영국군의 사열 행사. 아래, 싱가포르로 진주하는 영국군과 이를 맞이하는 싱가포르 시민들. 1945년)


1940~60년대 영국령 싱가포르와 홍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940년대 말~1950년대 초, 인도제국이 자치령으로 전환된 뒤 독립해 나가고,

극동에서는 중공이 중원을 차지한 후 한국에서 이뤄지고 있던 전쟁에 참전한 시점에서,

영국은 제국의 미래와 자신들의 식민 통치에서 중간 관리자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던 제국 내 화교들의 두 거주지에 대한 고민에 빠진 상황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싱가포르와 홍콩은 특히 그 지리적 위치와 대영제국 내에서 가지는 위상으로 인해 더더욱 중요한 지위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경우 유럽/아프리카에서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대만 등 동아시아 지역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말라카 해협의 요충지였고,

대전 중 싱가포르의 상실로 말미암아 호주/뉴질랜드와의 통행에 큰 애를 먹었던 영국은 이 지역을 계속 자신의 영향권 아래 둘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게 됐습니다.

홍콩의 경우 극동아시아 지역의 해양에서 영국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중요한 거점이자,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과의 창구였고요.


사실 1945년 8월~10월 두 지역에서 이뤄진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영국 총독부의 복귀는 영국 입장에서

일본군의 학살과 폭정에 시달리던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들을 진정한 해방자로 선전할 수 있는 큰 성과였지만,

동시에 그 이전에 이뤄진 홍콩과 싱가폴의 일시적 상실은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는 더 이상 예전처럼 영국이 자신들을 지켜주거나 통제할 수 없을 거라는 걸 깨닫게 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1940년대 말, 영국은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각각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식민지 회복 전쟁의 처절한 실패를 겪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됐습니다.

영국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근거가 없고 본토가 전장이 됐던 앞의 두 나라와 달리,

영국은 본토를 지켜내는데 성공했고, 호주와 뉴질랜드, 인도라는 기반을 바탕으로 말레이와 싱가포르, 홍콩에서의 영향력을 되찾는 것에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인도의 독립과 위 전쟁들은 누가 봐도 영국이 자신들의 식민지를 계속 영향력 아래에 둘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하는 사건들이었습니다.

이 시기 영국 내에서는 싱가포르와 홍콩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면서도 앞선 두 제국과 같은 실패를 겪지 않을 방도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평화적인 방법은 인도의 모델에 따라 자치령으로 전환한 후 독립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영국 입장에서 이 모델은 피하고 싶은 모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델은 해당 지역의 주권에 대한 영구적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었거든요.

하지만 이 시기 영국령 싱가포르와 홍콩에서는 화교들이 중심이 된 대규모 민족주의 운동과 저항 운동이 진행되며 영국의 불안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