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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쓰려다가 그냥 지금 삘 받은 김에 씁니다.



홍콩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홍콩의 뒤에 중국이 존재했다는 점입니다.


홍콩섬과 까우룽 반도는 영국의 영구 조차지였기 때문에 영국은 법적으로 해당 지역을 임의대로 처분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2차 대전과 국공내전을 거치며 광둥과 푸젠에서 엄청난 난민이 홍콩으로 밀려들어 홍콩의 인구가 폭증했다는 점이고,
새로 출범한 중국 공산당 정부는 중국은 단 하나라는 원칙 아래 홍콩의 회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선 대륙 출신 난민들이 영국이 단순한 중국 대륙과의 완충지로 생각했던 뉴테러토리얼(신계) 지역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다는 점을 보겠습니다.
사실 19세기 말까지 홍콩의 모든 자원과 주거지 수요는 사실상 홍콩섬과 까우룽 반도에서 진행되는 공급만으로도 충족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며 상하수원, 주거지, 전력 생산 등 뉴테러토리는 2차 대전 이후 홍콩을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인 지역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뉴테러토리얼 지역은 100년 간 임대차가 맺어진 지역이었기 때문에, 1990년대가 되면 이 지역을 중국에 반환해야 했습니다.
만약 이대로 홍콩이 확장을 진행한 상태에서 뉴테러토리가 빠지게 된다면 홍콩의 도시 기능은 큰 차질을 빚는 것은 물론,

홍콩이란 도시의 생명과도 연결이 될 것이 뻔했습니다.

영국도 이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급적 뉴테러토리로의 확장과 개척을 억제하고 인구 억제 정책을 펼쳤습니다만,

날이 갈수록 중국 지역 출신 난민 유입 문제로 제한에 어려움을 겪게 됐습니다.



새로운 중원의 패자가 된 중화인민공화국의 대홍콩 정책도 영국의 홍콩 정책에 큰 어려움을 줬습니다.

중국의 압박으로 말미암아 홍콩 내에서 진행하려던 싱가포르 모델의 대규모 정치 개혁이 무산된 경험도 있고,

문화대혁명기에는 홍콩 홍위병 문제가 등장하며 홍콩이 혼란에 빠지게 된 적도 있었죠.


사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증언이 있는데,

1950년대 이후 중공 측에서 지속적으로 영국 정부에게 밝히기를,

만일 영국이 홍콩을 독립시키거나 대규모의 자치권을 부여하려고 할 경우 중국과의 전쟁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뭐,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요....


결국 1980~90년대 중국으로의 반환이 확정되기 전까지 영국은 이런 문제 속에서 홍콩에 대한 정책을 결정해야했고,

반환 결정 이후로도 상당한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