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북방정책과 소련의 개혁개방이 맛물리고 양국 정상이 역대 최초로 정상회담도 하며 반공을 국시로 하던 나라와 세계 공산주의의 종주국간의 상호인정과 외교관계 수립이 무르익던 1991년, 고르바초프는 한국과의 수교를 원했지만 내외부적 반발을 고려해야 했습니다.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남한과의 수교는 그래도 수십년 동안의 "사회주의 형제국"인 북한과의 관계를 어그러트릴 거라며 반대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끝내 한소수교의 결단을 내렸고 이 결정을 김일성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기 위해 9월 1일에 셰바르드나제를 평양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평양에 간 셰바르드나제는 매우 열받는 사태를 맞이하게 됩니다. 김일성과의 면담요청은 바로 거절당해 만나지도 못한 데다가, 현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이고 당시에는 외상이었던 김영남이 나왔습니다. 김영남은 셰바르드나제 면전에서 소련의 결정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읽어 버리는, 엄청난 무례를 저질러 버렸습니다.

격노한 셰바르드나제는 평양 주재 소련대사인 알렉산드르 카프토에게 "외교관으로 살면서 이런 모독은 처음이다!"고 말한 뒤 바로 모스크바로 복귀, 한국과의 수교일정을 하루 빨리 앞당기자고 성화를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리하여 북한은 소련 내에서 자기에게 우호적인 인사를 하루 아침에 적으로 바꿔 버렸고,  1991년 9월 30일에 역사적인 한소수교가 성사된 것입니다.

근데 김일성의 이러한 반응이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닌 것이, 고르바초프는 1985년에 김일성과 회담하며 남한과의 수교는 절대 없을 거니 안심하라고 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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