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5개년 계획 당시에는 아직 본격적인 숙청의 광풍이 불어닥치지 않았기에 관료적 엄정함은 커녕 개판 5분 전 상황을 보여주는데 다음은 몇 가지 사례입니다.



우랄 지역의 한 도시와 러시아 서부 지역의 한 도시가 공업단지의 건설을 놓고 다투고 있었는데 서로 선발되겠다고 다투다가 러시아 서부 지역에서 이렇게 된 거 쐐기를 박아버리자 하고 결정도 안 났는데 건설자재와 예산을 편성해서 공업단지를 박아버립니다. 이런 것을 칸츄롤해야했던 중앙당은 이 상황을 보고는 기쁘게 두 도시 모두에 공업단지를 박아버리는 결정을 내립니다.


노후화된 철도와 차량의 부족은 공장을 지어도 원자재가 부족하거나 공장을 짓는 것 자체를 힘들게 했는데, 이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중앙당은 '해결사' 라자르 카가노비치를 철도위원으로 앉힙니다. 그리고 '문제의 해결법'은 여객 운송을 줄이고, 시간표를 조절한 다음, 담당자의 수용소행 또는 총살이었읍니다.


어쨌든 그러하여 겨우겨우 자재들을 싣고 보내는가 하니 또 다른 문제가 있었는데, 이젠 각 지방에서 공장 건설을 위해 열차들을 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열차강도들의 향연이었죠. 철도위원회에서는 해당 지방당에 항의하거나 공문을 보냈으나 습격할 놈들은 다 습격했읍니다.


카프카스 지역에서는 석유 개발을 거의 10배 이상 상승시키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에 대해 노년의 석유 개발 담당자는 '나 정말 열심히 일하긴 하지만 이건 불가능하다. 재고해보라.'하는 공문을 보냈고 이에 대해 중앙당은 20대 여성을 통해 답변을 보냈습니다. '표와 수치에 연연하지 말구 인간의 의지를 믿으세요.'


간간히 소집되는 당대회의 모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우익 반대자들에게 죽음을! 우리에게 공장을 주시오! 우익 반대자들에게 죽음을! 우리에게 발전소를 주시오!'




이러니 대숙청 당시에 멀쩡한 작자들이 없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