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군 :핵 혁명을 이용하다.

공군은 전략폭격을 자신들의 핵심 임무로 끌어 안았다. 육군항공단 시절 처럼 공군을 장악하고 1946년에 미육군 항공대는 전략공군사령부 전술공군사령부 방공사령부 세 전투사령부를 구성함 1년 후 미 공군을 독립된 군종으로 재편 폭격기 장군들은 전략폭격은 전쟁을 이길 수 있고 전쟁을 억제 할 수 있다고 믿음(이로인해 미국은 공군 참모총장은 1982년까지 폭격기 조종사 출신이였고 그 후 부터는 전투기 조종사였음 2008년에이 되어서야 수송기 출신 조종사가 공군 참모 총장이됨)

1946년 11월에 전략공군사령부는 두 개의 항공단과 아홉개의 폭격비행단을 보유함 그러나 여섯개 비행단만이 B-29를 보유하고있었고 이들 중 27대만 원자탄을 운반 할 수 있었고 모두 509폭격대대에 배속됨 원자탄 보유고는 13기였고 핵무기 장비 후 해외로 배치되는데 5일이 걸릴 것임

1948년 10월 르메이대장을 전략공군사령부 사령관으로 임명
(여기서 부터 공군의 폭격기 사랑은 시작 되었습니다.)



-전략폭격기

냉전초기에 핵무기를 운반할 유일한 수단이였음 B-36는 최초의 전략폭격기였음 대륙간 폭격기였고 그런데 1941년 육군이 제시한 것(육군에 속해있던 시절의 산물이라는 이야기) 본토에서 독일까지 폭격이 가능한걸 원했는데 그게 B-36였음 그래서 원자탄 싣고 소련에 레닌그라나드 까지 폭격이 가능한 기체였기 떼문임

이때 부터 해군과 공군이 예산과 임무를 두고 겁나 싸우기 시작함 공군 지도부와 미국 하원은 폭격기의 활동 범위와 적 재량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한 가지 무기만 가지고 전쟁을 할 수 있다고 역설함 거기에 공군성 장관은 "미국의 운명은 공군의 발전에 좌우된다고 확신합니다" 라고 이야기했다고 함

해군은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건조 사업 취소를 먹고 큰 미래를 걱정하며 전략폭격교리와 B-36에 태클을 검 "시대에 뒤떨어진 대형 폭격기를 보호하려고 싸워야 되냐고"

(핵공격을 위해서 대형 폭격기로 먼 거리에서 날라가서 적을 핵 공격 할 것인가?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같이 엄청 거대한 항공모함을 건조해서 대규모 비행대로 적을 공격할 것인가? 에서 공군의 대형 폭격기 파가 승리하게 되면서 이 항모 착공 5일 만에 취소됨 크기는 요즘의 제너럴 포드급에 맞먹는 크기)

대형 폭격기 비판론은 공군 안에서도 나오는 말이였는데 전략 공군 사령부 사령관 조지 케니 대장은 너무 느리고 B-39작전 범위가 좁다고 뭐라고 함(핵 투발 후 제트엔진으로 탈출 하기 위 해서 날게에 제트엔진을 단 덕에 행동반경이 줄어듬)


(이건 제트기도 아니고 프로펠러기도 아님)


음속비행기 가능한 폭격기가 필요하다고 촉구함 그러고 해임됨 그러나 그 말은 올았음 1940년 대말 소련은 전략 방공에 핵무기보다 많은 돈을 쏫아 부었고 MIG15 개발 배치 후 그리고 그걸 1,3000대 넘게 생산하고 1957년 S-25(SA-1나토 코드명인 듯)이 임무를 시작함.

그래서 공군은 폭격기에 호위기를 붙기 위해 별의 별 수단을 다 생각해 내는데 고블린 전투기를 수납하고


나중에 F-84를 B-36에 달수있게 개량함 그리고 B-36을 공중모함으로 만들고 F-84 선더제트가 폭격하고 돌아오는 방안까지 내놓음 그러나 실패




YB-49 프롭기를 제트기로 개조하는 계약했의나 실험 실패 연료소비가 크고 조종이 어려워서 1950년 사업 취소 이건 훗날 B-2가 됨 더 크고 더 높이나는 폭격기도 생각했는데 이때 B-52가 나오고 이는 3대가 타는 포격기가 됨

1946년에는 재급유없이 오래동안 연속비행이 가능한 핵추진 항공기 사업을 추진함 원자로가 커서 실패(공군의 모든 직간 접적 전투를 하는 항공기는 공중에 떠있을때가 가장 큰 전투력을 발휘 함 그리고 지상에 있음 적의 폭격에 노출되지만 공중에 떠있음 핵폭격을 맞을 일이 없의까 )



-유인항공기에 순항미사일까지

햅 아널드 대장은 1945년 상원에서 이렇게 증언함 "장비의 질이아닌 양에 의존하면 국가안보수준은 내려가고 기존공군장비의 5분의 1을 대체하게 하는 과학의 발전을 믿어야합니다." (장비빨에 대한 이 분의 정확한 인식은 50년을 앞서간 발언이라고 생각함)

화이트 대장은 이렇게 이야기하기도함 "공군은 언제나 기술이 더욱 빠르게 발전하길 원함 그게 생명선임"

한편 무인 비행체를 생각하게 됨 조종사가 필요 없의니까

1940년대 후반에는 핵무기의 운반 수단이 미사일이 될지 폭격기가 될지 알 수 없었다.

1946년 육군항공대는 미사일 28가지를 개발하고 있었다 몇몇 장교들은 공군(육군항공대의 항공기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의 생존을 위해 미사일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고 봄 육군 항공대 겸 공군 이사회 의장인 소장이 "공중 미사일은 어떠한 수단으로 운반되든 항공대의 무기입니다 우리가 이를 인지하지 않고 이 분야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조직이 되지 못하면 미사일은 육군이나 해군의 소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 후 예산규제로 공군은 1947년 미사일 사업을 대규모 감축하고 두 가지만 남김 그게 스나크와 나바호임

무인 폭격기 마타도어는 전술지대지로 개발되었고 성공했의나 지령 유도라 문제가 많았음 전파 방해에 취약해서 굿이어에어크래프트에서 자동지형인지 및 운항이라는 레이더 지도 매칭체계를 만듬(아마도초기의 지형유도 항법인 것 같음 TERCOM) 비가시 밖에서도 기동 가능했고 방해 전파에도 교란되지 않음 데신 지도가 더 많이 필요했음 위 운항체게와 마타도어 기체를 결함하여 메이스 미사일을 만듬 그러 신뢰도와 정확도 케 안습이 였고 결국 탄도 미사일이 도입되면서 도태됨

공군이 더 긴 사정거리의 미사일을 원했는데 노스롭(노스룹 그루먼의 그 노스룹 맞음)이 스나크 개발제안서를 제출 관성항법 장비는 오차가 커서 천문항법을 탑제하기로 했는데 미사일에 발사되어 목표에 명중하기까지 안정적 작동이 불가능했고 무게가 1톤이였음 더군다나 방공방이 정교해지자 마지막에는 초음속으로 가속하는 기능을 추가기로 했는데 비용 초과 일정 지연으로 문제가 많았지만 결국 배치함 목표의 32km내에 운반할 확율이 55%였는데 결국 케네디 대통령이 미사일 배치를 취소 시켜버림 대륙간 탄도 미사일보다 나은점이 없었으니까

그 보 더 대담한 것은 나바호 미사일 이였는데 5600km를 마하 3으로 날라가는게 목표인데 속도가 속도다 보니 램제트 했는데 램제트 엔진 신뢰성이 꽝이라 별명이 Naver-go였음 결국 취소 결국 아틀라스가 배치될때까지 스나크에 의존 하기로 함

1951년 공군 회의에서는 유도 미사일에 항공기 식별 부호를 부여할 것을 권고 스나크와 나바호는 전투기로 보각 지대공미사일은 폭격기로 명명되고 미사일단은 공군 비행단 숫자에 포함되었음 그러나 나중에 전술미사일과 전략미사일로 재명명됨(여기서 공군의 항공기 사랑을 였볼 수 있다고 생각함 나쁜 쪽 좋은 쪽 양 쪽으로다)

공군의 일원들은 미사일로 인해 자신들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했고 공군과학장교들을 조직 부적응자라고 폄훼했다고 함(이 이야기는 무인 항공기가 나오면서 지금 다시 나오고 있는 말임)

서부지역개발국의 추진체 개발부장인 대령은 "극복해야 할 것은 음속이나 열에 대한 장벽이 아니라 마음의 장벽이였다"라고 하기도 했고 어떤 대장은 "조종사들 사이에 항공기에 대한 뿌리 깊은 편애가 없다고 한다면 이는 바보 같은 소리다. 당연히 그런 감정이있다."고 했고 이 말은 한 대장은 기마병이 말에 대한 애착에 비견했다


(이 사진은 미육군 기병대의 사진인데 말이 회복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면 고통을 더 이상 격지 않을 수 있게 사살했다고하는데

우리가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듯이 항공기 파일럿들이 자신의 비행기를 사랑한다는 뜻인 것 같음 )





심지어 이걸 거함심리라고 붙인 용어를 동원해 책망함(기술의 발달로 크기가 작으면서도 효율적인 함선이 개발됐음에도 대형전함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던 것을 빗댄 표현)(이 점은 우리도 마찬 가지내 다들 전함이 도태될 만한 무기라고 생각하고 도태 됫지만 지금도 좋아하지)

여전히 르메이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유인 폭격기를 보완하는 존재로만 생각했음 미래에도 전부 대체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고함(폭격기를 좋아한 양반이니까 그럴만 하다고 생각함 전략 폭격으로 일본을 재로 만들어버리려고 한 사람 이니까)



-순항미사일에서 탄도미사일까지
위에서 처럼 결국 탄도미사일이 전략임무를 하게 됬지만 거기까지는 많은 일이 있었음

몇몇과학자들은 회의적이었고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믿었음 유도장치와 강력한 로켓 엔진 거기에 대기권 재돌입시 탄도의 생존성 때문에 그래서 1500km이상을 날라가서 미사일을 투 발 할 수 있는 것은 항공기 뿐이라고 생각했음(그런데 스푸트니크)

미군 전제에서도 탄도미사일은 관심 밖이었고 공군도 지대지 미사일은 공대지 미사일과 방공미사일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뒤쳐졌다. 여전히 순항미사일을 선호했고 지대지 미사일과 공대지 미사일이 적의 방공망을 뚫을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선호했다.( 공군이 폭격을 위해서 저 공침투나 야간에 조용이 침투하는걸 생각하다 보니 탄도 미사일이 갖는 속도의 이점을 많이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듬)

그러나 탄도미사일이 개발 됨

결국 소련이 120톤의 추력을 낼 수있는 엔진을 개발했고 이보다 추력이 두배나 강한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함

관료제 정치가 육군에서는 베르너 폰 브라운과 그의 독일 과학자 팀이 공군에 그 분야를 내주기 싫어함(뒤에서도 나오지만 육군과 전략무기의 주도권을 가지고 계속 싸움)

기술발전으로 핵탄두가 소형화됨(이전에 4톤이 넘어가 던게 작아지니까 탄도미사일에 실어서 투발 가능하게 됨)

공군성 장관의 개입과 행정부의 압력은 공군이 무인미사일을 지지하는 쪽에서 돌아서는데 도움을 줌 아니였음 공군은 차세대 무인 폭격기를 개발했을 것임

1965년 까지는 유인 항공기가 전략 공군의 중추가 되고 그 후는 순항미사일이 무기고에 들어오고 공군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배치할 시점은 1960년대 중후반 이라고 생각했는데 소련의 미사일 개발에 대한 우려와 전략 순항미사일의 무용함 때문에 1950년에 아틀라스 프로젝는 최우선 순위가됨 (아까 나왔던 스나크, 마타도어, 나바호)빠른 개발을 위해서 동기 병행 개발 방식(F-35도 이런 방식이 였는데 왜? 그렇게 됬지?)을 통해 여러가지를 동시에 획득하기로 했고 개별 부품의 제조를 각기 다른 업자에게 맞 김 아틀라스 사업은 규모가 커서 프로젝트의 체계 통합 업체를 지정함 여러 업체들의 개발을 관리하기 위해 시스탬 공학에 필요한 규율을 만들었음(17개의 주 사업장 200개의 하청 업체 7만명의 인력이 연관되어있었기 때문)

가장 어려운 부분은 노즈콘 재 돌입체였고 개발에 아틀라스 사업의 11%의 예산을 소모함 아틀라스의 위험 부담을 줄이기위해 타이탄 미사일도 개발함 적의 1차공격을 막기 위해 지하 사일로에 들어간 최초의 미사일이며 1957년에는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의 경쟁에서 순항미사일이 유리했의나 1963년 경에는 탄도미사일이 전략전의 중심이됨

그리고 공군에서도 1951년에서 1962년사이에 제트 엔진을단 3000대의 폭격기가 구식이 되어도 교체하지 않았다. (핵 투발을 하는게 공군 폭격기가 아니라 탄도미사일 이기 때문에 전략폭격기가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 이라고 알고있음)

전술탄도탄도 소련보다 빨리 개발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육군은 주피터를만들고 공군은 토르를 만들었다. 1년만에 만들고 영국에 배치함

폭격기에서 미사일로 초점이 옴겨가자 제너럴 모터스는 2차 대전 이후 가장 큰 계약 업체였의나 1960년대에는 21위가 되었음 2위는 13위로 3위 포드는 37위로 7위 베들레헴철강은 42위로 1960년대의 거대 업체들은 보잉 제너럴 다이나믹스, 록히드, 제너럴일렉트릭, 북아메리카항공등 5개의 상위업체로 대체됨(결국 우리가 아는 방산시장의 주력업체들이 등장함)







-대륙방공

1950년대 소련 핵공격능력이 증가하자 기습공격을 막기위해 공군은 요격기, 대항공미사일, 조기경 보레이더를 통합 관리하는 방공사령부를 창설 그리고 트루먼 대통령은 북아메리카 북부에 원거리 조기경보 라인(DEW)을 설치할 것을 공군에 명령함 (아마도 OTH같은 거인 것 같은데 확실히는 모르겠음)


전략공군사령부는 방어를 위해 반자동방공관제쳬계를 개발 하여 장거리폭격기를 막으려고 했음 AN/FSQ-7,8 을 만들었는데 275톤 3,700제곱미터의 공간을 차지 8개구역으로나눠 AN/FSQ-8을 장착한 전투본부들을 하나씩할당했고 북미방공사령부(NORAD)의 전투작전본부와 바로연결 개별전투본부는 32개의 하부구역에 배치된 레이더 정보를 수신하고 평가함관제소는 감시정보를 처리하고 적의 위협에 대응한 항공기와 미사일들을 할당함


AN/FSQ-7이라는데 겁나 크내

그러나 이 계획은 실패작 1959년 작전 가능 상태가 되었을때 적의 가장 큰 위협은 폭격기에서 탄도미사일로 넘어감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