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해군이 직면한 핵무기 시대의 도전

핵무기 때문에 해군의 존재의 의문을 품었고 핵폭 격기를 항모에서 운용 하려고했의나 탄도미사일을 군함에서 운용 할 수 있게 되고 핵추진 잠수함이 등장하자 해군은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에 목숨을 걸음

해군을 전략공군으로 변모시켜 공군을 이기고 싶었지만 해군 군함들이 핵공격에 과도하게 취약하지 않으며 항모가 공군의 폭격기 만큼은 행공격에 유용하다는걸 보여주려함 대잠정찰폭격기를(대잠초계기를 말하는 것 같음) 핵무기를 운반하게 만들었고 항모에서 운용가능하게 만듬 부두에서 크레인에 싣고 제트추진의 도움을 받아서 이륙하게 만듬 그래서 배치에도 성공했의나 해군이 보유한 핵 공격 능력은 제한돼 있었음 A3스카이 워리어가 배치되기전까지 해군은 핵폭격기를 보유하지 못함

(아마도 이런 방식이겠지?)


수상기를 여기저기 분산시켜 원거리기지에서 출격하여 군함과 잠수함의 지원을 받아 본토 폭격을 실시하려고했의나 조직내에서 지지를 얻지 못함 수상기 조종사들은 소수파여서(결국 중국때문에 다시 이런 식의 분산을 통한 생존을 다시 미국이 꿈꾸게 되었습니다.)



-해군과 순항미사일

V-1 순항미사일을 개조한 잠수함에서 발사시험함 이는 잠수함 발사 순항미사일 개발로 이루어졌고 레굴루스를 만들어 잠수함에서 발사함 목표타격을 위해서는 다른 두척의 잠수함에 의존해야했음 토로스 시스탬을 이용하여 다른 잠수함 도움 없이도 가능해짐 순양함에서도 운용했음 평가가 좋았의나 다른 투발 수단들에 비해 가성비가 꽝이라 취소됨



-해군과 탄도미사일

해군이 탄도미사일을 가장 늦게 받아들임 미사일의 필요성의 의문과 해군사업예산이 제한되어서 미사일 개발을 새롭게 시작하기 어려울것을 우려함

고체 추진체가 케안습이라 그냥 공군에 전권을 넘겼는데알레이버크 제독이 해군 참모 총장으로 임명되면서 바뀜(이레서 이분이 유명하신 건가?) SSBN도만듬 폴라리스도 만듬 공군 탄도미사일에 묻어가면서 빠르게 만들 수 있었다. 미사일의 항법을 위해 해저지도를 이용하며 발사하는 잠수함이 자신의 위치를 알아내거나 관성항법체게나 함선 항법체계 로란 C를 이용하고 거기에 우주에 배치된 위성 항법망까지 쓰고 거기에 지구 중력장에 대한 더 정확한 모형까지 개발 해서 재대로된 유도를 하려고 노력함 결국 폴라리스 A-3까지 만들어졌고 4600킬로미터의 다탄두 미사일이 됨


-핵추진 잠수함

핵무기 뿐만 아니라 동력원에도 혁신을 가져오게 됨 거의 무한에 가까운 잠항이 가능해져서 해군의 핵전력은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폭격기를 향한 소련의 공격에 대한 대비책으로 사용가 능(2차 타격능력을 말하는 것 같음이건)

노틸러스가 만들어지고 핵추진 잠수함은 기존 잠수함 운용자들이 항상 원하였지만 갖지 못한 모든 능력을 가지게 됨 거기에 빠른 속도는 디젤잠수함을 기준으로 만든 기존의 어뢰들을 능가함 요약하자면 공기의 재충전이라는 탯줄이 필요 없고 완벽하게 잠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진정한 잠수함 이러한 장점 때문에 해군은 핵주진 잠수함에 투자해 1961년에는 디젤 잠수함 115척과 핵잠 13척이였지만 1975년말에는 핵잠 106척 디젤 잠수함 12척을 보유 하게 됨



(인터넷에서 찾은 노틸러스 잠수함)





4.육군 폭풍우를 뚫고

우선 핵무기의 개발 때문에 육군의 사단을 몇 개씩 줄이는 안습한 상황을 격기 시작함
어떤 느낌이냐면 한 장교는 "육군의 위치가 부차적인 군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하기도 함 어떤 장군은 "새로운 무기와 새로운 기계가 전쟁의 혁명을 예고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 군인들은 육군이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1954년 존 K, 메이헌은 "지난날의 전쟁경험이 다가오는 전쟁을 대비하는 데 비빌 언덕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라고 이야기함 하지만 매슈 리지웨이 장군은(6.25에서 제8군단장으로 활약함)핵 무기와 장거리 공군력이 전쟁들을 억제 한다고 생각하지는 못함 전략 무기가 미국의 안전보장은 못해도 전술핵무기는 미래전을 결정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고함 핵무기가 너무 파괴적이여서 오로지 억제 측면에서만 쓸모 있을 거라고 생각함

육군은 전통적으로 화력에 의존해서 전술 핵무기가 강한 화력을 제공하리라 믿음
(앞에서 썻듯이 보병에게 까지 핵무기를 배치한다면 전략무기가 아니라 전술 무기로 쓸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있는 것 같음)
예산을 따기 위해 핵무기를 주목하기도 함

육군의 조직 문화에 맞게 280밀리포에 원자탄을 장착하는데 초첨을 맞추었고 성공함. 그러나 육군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었다.(야지에서 기동 불가능 사정거리가 너무 짧음 그러나 결국 소형화 되면서 전술무기가 배치됨)


-탄도미사일과 육군

공군과 미사일과 우주탐사 장거리타격 방공을 위한 미사일의 주도권을 두고 많이 다툼

육군의 지도부는 작전의 모든 단계에 핵공격이 포함되기를 바랬음

중거리급 핵작전을 두고 공군과 경쟁이 심했음 그건 항공기를 개량한 것도 아니고 재래식 대포나 로켓이 진화한 것도 아니여서 어느 군에 속하게 딱 나누기 애매모호했음 그래서 주도권 경쟁이 심했는데 중거리 탄도탄 미사일을 개발하던 공군과 육군이 대립하고 종 심이 긴 목표물을 공격할때는 공군에게 의존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 육군 미사일 사업 추진을 정당화함 그래서 개발을 개속하되 공군인력이 미사일을 통제하게 했고 윌슨 국방부장관은 육군의 지대지 미사일의 사정거리를 320km로 제한함

육군은 기존의 체계를 희생시키면서라도 무기의 주도권을 가져오고 싶어했음( 연구 개발비의 42퍼센트를 핵무기와 미사일에 투입해버림 그래서 T113장갑차 만들때 자급난을 격음 이게 완성되면 M113이됩니다. 걸프전에도 투입 됬죠)


-전략방공

폭격기가 본토에 접근 하는 것을 막으려고 20억 달러 쯤을 들여 미사일을 생산 배침함 20개포 대로 뉴욕보호 하려고했는데 사고가 많았다. 그리고 더군다나 나이키 에이젝스는 한번에 하나의 목표물에만 사용 할 수 있어서 안습이였음 결국 통제소를 만들었의나 미흡하여 포대간 데이터 링크를 만듬 그것도 시원치 않아서(사정거리가 안습이라) 나이키 허큘리스를 만듬(우리나라에도 배치됬던 것으로 알고있음) 이전 모델보다 사정거리가 3배 늘어남 핵탄두를 장착함(40킬로톤) 145개 포대를 배치함



공군은 이게 공군의 보막 미사일을 배꼈다고 비난 함 그러나 결국 둘다 배치됨

좀더 효율적이게 방어하기 위해 통합 방공체게를 만들 필요가 있었고 이로 인해 미사일 마스터가가 만들어짐 데이터 통신 처리 및 전시를 구현한 최초의 통합지휘통제체계가됨 육군방공사령부에 설치되었고 이게 정보 수집 후 식별한 후 포대에 정보를 줌 한 지역에 최대 24개의 목표물과 교 전하도록 지시가가능 했음

육군레이더 기지들은 공군의 SAGE요격기 통제 체계에서 받은 정보를 처리하여 방공보대로 전달함


-판도믹 군

핵무기를 맞지 않을 정도로 넓게 퍼저있의면서 적소에 집결시켜 적을 날려 버린 다음 산개 능력을 개발해야 됫음 그래서 기동력과 타격력을 겸비한 전투조직이 필요하게됨

3개의 사령부에서 5개의 사령부를 부를 둔 조직으로 옮김 육군 대대를 최소 작전이 가능한 부대로 재편함 대부분 공수가 가능한 장비로 무장한 판토믹 공수대대도 창설 그러나 기갑사단의 구조는 거의 안 바뀜

핵전쟁에서 생존을 위해서 어떤 이는 땅속에 잘 숨는 기능 어떤 이들은 기동력을 강화하는 쪽에 초점에 맞췄는데 수직이착륙기(벨XV3, 버톨VZ2 둘다 트릴로더기의 시초로 알고있음 이 좋은점 때문에 계속 시도하다 V-22가 만들어짐) 사업을 추진하게 됨

1600km를 운용 후 버릴 수 있는 트럭 화물 로켓 등을 연구하기도 함

고농도 방사선으로부터 보호 가능한 장갑차도 개발하려고 함

그 당시 장교들 중 어떤 이는 "다제 다능하고 찬양하고 산개가 쉬워서 생존성이 높을 것이라고 했고" 어떤 이는 "기술 발전이 너무나 빨라서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심지어 천천히 받아 들이기 어려울 지경이다"라고 이야기한 사람도 있음

마셜 같은 사람은 전투의 중심은 사람이라고 기술을 강조하는 육군을 비판하기도 함

결국 펜도믹 사단은 망했는데 돈도 없고 핵 전장에서 부대들과 통신 할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 결국 1960년에 부대를 재편했는데 재래식 분쟁이나 반군 세력을 막는 것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여서





4. 마지막

핵무기의 탄생으로 인해 많은 민간 억제 이론가들이 새로운 전쟁 이론을 개발했고 많은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해서 1970년에는 시스템 공학자가 1만1000명으로 추정됨

기술 애호가들의 욕망을 만족 시키기는 못함 전쟁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지 못했고 신무기 들은 기존의 무기들을 대처하지 못함 결국 새로운 특정 장교들이나 해군의 잠수함 특기 장교들 같은 새로운 엘리트 또한 각군의 전통 엘리트들에게 종속된 상태로 남음



근데 몇 가지 빼고는 나무위키 뒤져보면 다 나오는 내용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