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은 서울대 서양사학과 한정숙 교수님이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발표한 논문으로 『한중관계연구』제4권 1호에 기고되어 있습니다. 교수님의 허락 아래 전문 발췌했습니다.


2017년은 러시아혁명1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한때 한국 사회의 일부 구성원들은 러시아혁명을 마치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사건처럼 여겼고, 이 혁명의 경과가 곧 한국 사회의 변화 전망과 직결되기라도 한 듯, 혁명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을 촉각 곤두세워 추적하였으며 그들의 장단점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였다.2

소련이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해체된 후 이 혁명에 대한 지식인 사회의 관심은 크게 줄어들었다. 러시아 자체에서도 혁명 기념일에 대한 관심은 소련시절 같지 않다. 물론 연구자들은 혁명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여러 저서들을 내놓았고 학계에서 크고 작은 학술행사가 열려 혁명의 여러 측면을 조명하였다. 그러나 혁명 100주년의 해에 혁명을 기념하는 일은 러시아 사회의 가장 첨예한 관심사는 아니었다. 역사적 사건의 기념에 아낌없이 인적-물적 지적 자원을 동원해 왔던 소련에서와는 달리, 2017년의 러시아에서는 푸틴정부가 혁명적 분위기의 형성을 경계하여 러시아혁명 100주년에 대해서도 냉담한 태도를 취해 왔던 것3이 주된 이유의 하나이다. 반공주의가 주된 흐름을 이루었던 사회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냉전주의적 러시아혁명 해석이 다시 복귀하여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현상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4

그렇다면 소련이 붕괴한 후 러시아혁명에 대해 말하는 것은 죽은 말에게 채찍질하기일까? 러시아혁명의 부당성을 재확인하고 그 흔적을 역사에서 지우기 위해 확인사살을 감행하기 위함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글에서 필자는 세계사 속 러시아혁명의 위치를 짚어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사실관계에서 특별히 새롭게 이야기할 내용은 없다.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우리가 소련 해체라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 한꺼번에 잊어버린 사실들을 상기하고 개관해 보면서,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러시아혁명의 문명사적 의미도 한 번 짚어보자는 것이다.

역사는 당장 눈앞에서 전개되는 현실보다 깊고 멀리 작용한다. 그것은 우리가 목전의 잡답(雜沓)과 사건들의 단기파동 속에서 망각하고 무시했을 때에도 인간 삶의 심층 속에서 기다리면서 기회 닿을 때마다 자신을 주장한다. 프랑스혁명은 테르미도르 반동, 나폴레옹의 황제정부 수립과 몰락, 왕정복고, 7월 혁명, 1848년 혁명과 제2 공화정 수립, 루이 보나파르트의 황제정부 수립과 몰락, 제3 공화정 등등 쉼 없는 전복과 재전복의 연속과정 속에서 100년 동안 계속되었다. 제3 공화정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혁명 후 1세기를 지난 시점에 가서야 이를 기념하는 행사들이 제대로 열릴 수 있었다.5 러시아혁명은 이와는 운명이 다소 달랐다. 혁명으로 수립된 체제가 70년 이상 유지되면서 그동안 국가 차원에서 혁명을 기념하는 행사들은 무수히 많았으나 바로 그 체제가 무너지면서 1세기 후에 오히려 기념의 의미가 축소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눈앞에서 러시아혁명을 놓치고 있더라도 이 혁명은 나중에 가서 다시 선명하게 자기를 주장하게 될 수도 있다. 러시아혁명의 성과와 영향 또한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것보다 깊고 멀리 미쳤고 미치고 있다. 이는 일국적 차원을 넘어 국제관계의 변화에 미친 러시아혁명의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다. 또한 문화와 일상생활, 사회적 영역에서도 러시아혁명의 영향은 뚜렷이 드러난다.

혁명이란 구체제(낡은 것, 용도 폐기된 것)를 타파하고 불가역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포괄적인 과정이다.6 혁명을 통해 인간은 시간을 단절시켜 새로운 시간을 만든다. 혁명의 어떤 국면에서는 반동이 일어나 일시적으로나마 퇴행이 불가피해지기도 하지만, 혁명의 이상과 성과가 영영 잊히거나 묻히지는 않는다. 긍정적 유산과 가르침이 있는 혁명이라면 후대인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혁명을 이룬 사회가 아닌 다른 사회에서일지라도) 이를 되살려내기 때문이다. 혁명의 유산도 격세유전(隔世遺傳)적으로 전승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가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 대를 걸러 이 유전자를 전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 움직임이 파동과 같은 변화의 주기를 가지고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상황은 러시아혁명의 유산에 대한 반응이 저점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혁명을 낮게 평가하는 움직임이 극한에 이르면서 발생한 사회적 불평등과 불공정이 극에 이르면 다음 국면에서는 다시 이 혁명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상 무수한 혁명과 혁명시도가 있었다. 성공한 혁명도 있고 실패한 혁명도 있지만 그 중에서 세계사적 대혁명으로 불릴 만한 것은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혁명, 이 둘이라고 할 수 있다. 두 혁명은 새로운 이념으로 해당사회를 바꾸어놓았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 이념이 퍼져간 가장 영향력 큰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은 가장 전형적이고 가장 고전적인 시민혁명이었다. 이 혁명으로 절대군주가 쫓겨나고 시민계급의 권력이 수립되었다. 러시아혁명은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이 혁명으로 계급 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프롤레타리아 권력이 수립되었다. 존 리드의 표현대로 1917년 러시아혁명은 ‘세계를 뒤흔든’ 혁명이었다.7 그리고 열광과 증오라는 상반된 반응이 이 혁명을 둘러싸고 격돌하였다.8 프랑스혁명의 이념이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었고 이 이념에 따라 사회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물결을 이루었듯이, ‘계급의 철폐’와 ‘무산대중의 해방’이라는 러시아혁명의 이념 역시 다른 사회들에까지 파급되었고, 반대자들은 이를 막기 위해 부심하였다. 서유럽의 노동계급은 소비에트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자국정부의 시도에 항의하는 시위를 열곤 하였다.9

그런데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혁명은 계급적 기반이라는 면에서 혁명세력의 집권 준비 정도가 각기 달랐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은 시민계급의 사회경제적 지배력이 확립된 위에 정치적 지배의 도장을 찍었다. 반면 러시아혁명은 형성되고 있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가불(假拂)로 권력을 장악한 사건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의 한 정치학자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시민혁명은 대개 정치적 권력의 장악과 더불어 종결되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적 경제의 토대는 이미 그 이전의 역사적 발전과정 속에서 대부분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대개의 경우 이러한 혁명의 과제는 이 같은 토대에 상응하며, 시민계급에게는 이제 쓸모없어진 봉건적 제도들을 철폐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정치적 상부구조를 수립하는 것에 국한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사회주의 혁명은 정치적 권력의 장악과 더불어 비로소 시작되었다. 노동계급은 이제 막 시작된 과도기를 거쳐 가면서 경제를 변형시키고 산업과 농업경제 안에 일률적인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들을 창출해 낼 도구로서 이 정치권력을 이용해야 되었다.”10

그만큼 사회주의 권력 수립과정에서 더 큰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였고 더 큰 인간적 고통이 대가로 치러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이후에 수립된 체제는 상당한 지속성을 가졌고 이에 열광한 수많은 추종자들을 낳았다. 그리하여 러시아혁명은 한동안 새로운 문명의 형성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적어도 인간사회가 종전과는 전혀 다른 원칙 위에서 세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낳기까지 했다. 그 원칙들 중에는 지금까지 지속되면서 여전히 중요성을 인정받는 것도 있고 잊혀 버린 것도 있다. 러시아혁명의 의미를 사회 내부의 변화라는 면과, 국제관계의 근본적 변화라는 두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겠다.

홉즈봄은 프랑스혁명과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이라는 이중혁명의 과정을 거쳐 부르주아-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말하였다.11 이것이 서구적 근대화의 길이었다. 10월 혁명으로 수립된 소비에트 러시아/소련은 이와는 다른 방식의 이중혁명, 즉 이중혁명 대체과정을 통해 서구와는 다른 방식의 근대화의 길을 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에 이어서 소련 동쪽의 유라시아 지역 거대부분이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길을 우회하는 다른 길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성립하였다(한국은 그 예외 가운데 하나다). 그 결과 특히 유의미하고, 현재까지 그 파장이 미치고 있는 변화는 국제관계에서 일어났다. 특히 중국이 이 공간의 일원으로 합류함으로써 세계적 차원에서 서구중심적 역사발전론에 근본적으로 도전하였다. 이는 체제의 우열을 논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실 확립의 문제다. (유라시아 공간 대부분이 거쳐 온 길이 더 낫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은 다른 길이라는 의미다.)

필자는 러시아혁명 이후 비서구 공간에서 새로운 노선에 따라 포괄적 근대화가 진행된 과정을 ‘유라시아 혁명’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유라시아 혁명이란 러시아혁명을 기점으로 서구적 패권이 기울고 유라시아 대륙의 거대한 지역에서 대항권력이 수립되었음을 말하기 위해 필자가 만들어본 용어다. 유라시아 대륙세력의 혁명이라는 의미이고, 그 가장 중요한 세력은 압축해서 말한다면 러시아-중국이라고 하겠다. 유라시아라는 용어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이 말은 20세기 전까지는 주로 지질학의 용어로 사용되었고 유럽과 아시아를 합친 유라시아 대륙을 가리킨다. 이것이 문명사적 단위나 지정학적 공간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게 된 것은 20세기 초 러시아 유라시아주의자들부터다.12

1. 러시아혁명’이라는 말의 용법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겠다. 러시아-소련 바깥에서는 러시아혁명은 러시아력 10월 25-26일(오늘날의 양력으로는 11월 7-8일)에 일어난 10월 혁명을 중심으로 그 전후에 일어난 일련의 변화과정을 가리켜 왔다. ‘러시아혁명’은 흔히 ‘볼셰비키 혁명’이라는 용어와 동일시된다. 망명 이후 『러시아혁명사』(Leon Trotsky, The History of the Russian Revolution, 3 vols., translated from the Russian by Max Eastman,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37)를 쓴 트로츠키도 마찬가지이고, 한국연구자들도 모두 그러한 의미로 이 말을 써 왔다. 이 글도 이 용례를 따를 것이다. 다만 혁명사에서 논자를 막론하고 10월 혁명의 서막으로서 2월 혁명은 반드시 포함시키지만 혁명의 종료 시기를 언제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천차만별이다. 스티브 스미스처럼 신경제정책 시기까지 혁명기로 보는 논자도 있고 (S. A. Smith, Russia in Revolution: An Empire in Crisis, 1890 to 1928,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7) 러시아혁명의 수정주의적 해석의 대표자인 쉴라 피츠패트릭처럼 스탈린 체제까지를 혁명기로 보는 사람도 있다.(Sheila Fitzpatrick, The Russian Revolution, 4th edi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7) 소련에서는 ‘러시아혁명’이라는 말이 쓰이지 않고 보통 1905년 혁명, 2월 혁명, 10월 대혁명 등의 용어가 사용되었다. 볼셰비키 혁명을 가리키는 소련 학계의 공식용어는 ‘사회주의 10월 대혁명’이었고 ‘위대한 10월’(Великая Октябрь)이라는 말도 빈번하게 쓰였으며 일반적으로는 ‘10월’(Октябрь)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소련 해체 후에는 ‘10월 혁명’ 대신 ‘10월 정변’(октябрьский переворот)이라는 말도 종종 사용되어 왔다. переворот라는 말은 революция 대신 사용되면서 10월 혁명에 대한 부정적 함의를 담은 말처럼 해석되기도 했지만 중립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러시아 학계에서도 러시아 대혁명이라는 말로써 1905년 혁명부터 1917년 2월 혁명, 10월 볼셰비키 혁명까지 이르는 복합적 혁명과정을 칭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더 이상 10월 혁명만을 초점에 놓지는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역사학자 르이스코프나 슈빈이 사용하는 ‘러시아 대혁명’이라는 말은 이 복합적이고 포괄적인 과정이 프랑스 혁명에 못지않은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표현한다. Д. Ю. Лысков, Великая русская революция 1905-1922(Москва: Книжный дом ≪Либроком≫, 2012); Александр Шубин, Великая российская революция: от февраля к октябрю 1917 года (Москва: Родина Медиа, 2014). 주로 원로세대에 속하는 정통 레닌주의자들은 러시아혁명을 칭하는 데 여전히 ‘10월’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Вершина великой революции. К 100-летию Октября. Под общей редакцией Б. Ф. Славина, А. В. Бузгалина (Москва: Алгоритм, 2017).

2. 2017년 12월 1-2일 한국러시아사학회와 외국어대학 주최로 열린 러시아혁명 100주년 기념 서양사연합학술대회의 일환으로 마련된 “러시아혁명과 나”라는 제목의 좌담회(라운드 테이블)에서, 학자, 언론인, 노동운동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좌담 참가자들은 주로 1980년대 자신의 활동을 돌이켜보면서 러시아 혁명가들이 당시 그들에게 가졌던 막중한 의미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 좌담회의 몇몇 참가자들은 당국의 눈을 피해 『무엇을 할 것인가』, 『일보 전진, 이보 후퇴』, 『국가와 혁명』등 레닌의 저작을 읽거나 배포하였던 경험, 소련 체제와 세계질서의 대안을 트로츠키에게서 구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과정 등을 회고하였다.

3. 코린 아마셰, <푸틴 정부가 ‘혁명 100주년’ 기념행사를 꺼리는 이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7년 3월호, 8쪽Catherine Merridale, “Putin’s Russia can’t celebrate its revolutionary past. It has to smother it.”, The Guardian, 3 November 2017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7/nov/03/putin-russia-revolution-ignore-centenary(검색일: 2017.11.20.)Oliver Carroll, “Russian Revolution at 100: Why the centenary means little to modern day Russia’s leaders – and its people”, The Independent, 5 November 2017http://www.independent.co.uk/ news/world/europe/russia-october-revolution-100-years-bolsheviks-soviet-putin-communist-party-federation-tsars-a8038911.html(검색일: 2017.11.20.)Masha Lipman, “Why Putin Won’t Be Marking the Hundredth Anniversary of the Bolshevik Revolution”, The New Yorker, November 3, 2017 https://www.newyorker.com/news/news-desk/why-putin-wont- be-marking-the-hundredth-anniversary-of-the-bolshevik-revolution (검색일: 2017. 11. 20.)

4. 예를 들어 냉전 시기부터 가장 강경한 반공주의적 입장에서 러시아혁명을 부정적으로 해석해왔던 미국의 러시아사 연구자 리차드 파이프스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발표한 러시아혁명 관련 저술에서 10월 혁명을 권력욕에 사로잡힌 볼셰비키의 음모로 인해 일어난 일로 여겼고 혁명 이후의 모든 어려움과 비극을 모두 이들의 잘못된 결정 탓으로 돌렸다. Richard Pipes, The Russian Revolution 1899-1919 (London; New York: Collins Harvill, 1990); Richard Pipes, “1917 and Revisionists (Sovietologists),” The National Interests 31 (1993). 러시아혁명과 소련체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우호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해 왔던 연구자들 가운데 일부도 파이프스 못지않게 부정적인 소련사 해석으로 선회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5. 1889년에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는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성대한 행사였고 에펠탑 역시 이를 기념하여 세워진 가장 유명한 조형물이었다.

6. 혁명(革命)이라는 말은 주역 가운데 혁괘(革卦)에 대한 설명에 나오는 “天地革而四時成 湯武 革命 順乎天而應乎人 革之時大矣哉”(하늘과 땅이 바뀌어 사계절이 이루어지듯 탕임금과 무임금이 혁명을 일으킨 것은 하늘에 순응하고 사람들의 뜻에 따른 것이니, 변혁의 때는 위대하도다)라는 구절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이미 수천 년 전부터 국가의 기본 질서의 변화를 가리키는 데 이 말이 사용되었다. 그에 반해 서양어 revolution은 원래 천체의 회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후기 라틴어에서 돌다, 회전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revolvere에서 파생된 revolutionem이나 고(古)프랑스어에서 회전, 선회를 의미하는 명사 revolucion이 어원이다. 그런데 15세기 중엽 이후 이 말에는 대전환 사태라는 뜻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1600년 무렵부터는 “기존 정치체제의 전복”이라는 의미로 이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특히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 시기에 스튜어트 왕조가 축출되어 통치자가 바뀌게 된 것을 가리키는 데 “(Glorious) Revolution”이라는 말이 쓰이게 된 것이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revolution 용법의 확대를 가져오게 되었다. (온라인어원사전에 의거함) https://www.etymonline.com/word/revolution(검색일 2017년 8월 15일)정치적 격변에 의해 통치자나 지배체제가 바뀌는 것을 가리키는 러시아어는 원래 переворот(페레바로트)이다. 그런데 러시아에서도 서유럽과의 접촉이 늘어남에 따라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에서 공통으로 사용되는 revolution/revolucion이라는 말이 수입되어 революция(레볼류치야)라는 러시아어형으로 변형되어 사용되면서 일반화되었다. 앞의 주 1)에서 말했다시피 최근에는 러시아에서도 러시아혁명을 가리키는 데 переворот라는 말을 쓰는 빈도가 늘어났다. переворот가 revolution에 비해 해당사건을 폄하하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이 말은 중립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7. John Reed, Ten Days That Shook the World(New York: Boni & Liveright, 1919)

8. 러시아혁명에 대한 1세기에 걸친 해석의 역사에 대해서는 한정숙, 「‘세계를 뒤흔든 혁명’에 대한 열광, 비판, 성찰: 러시아혁명 100년, 해석의 역사」, 정재원, 최진석 편, 『다시 돌아보는 러시아혁명 100년』 (문학과 지성, 2017), 35-132쪽을 참조하시오.

9. E. Sylvia Pankhurst, “The British Workers and Soviet Russia”, The Revolutionary Age, August 9, 1919https://www.marxists.org/archive/pankhurst-sylvia/1919/british-workers.htm(검색일: 2017.11.2)

10. Gert Meyer, “Die Industriegesellschaft der Gegenwart: Die UdSSR als Beispiel einer sozialistischen Planwirtschaft”: Helmuth Schneider(Hrsg.), Geschichte der Arbeit vom Alten Ägypten bis zur Gegenwart(Köln: Kiepenheuer & Witsch, 1980), p. 363.

11. E. Hobsbawm, The Age of Revolution 1789-1848 (New York: Vintage Books, 1996), p. 2.

12. 유라시아주의에 대해서는 다음 문헌을 참고하시오. 신범식, 「고전적 유라시아주의의 두 측면에 대한 일고찰」, 『러시아연구』 8권 2호(1998); 한정숙, 「슬라브적인 것과 유라시아적인 것 - 범슬라브주의와 유라시아주의를 통해서 본 러시아의 민족주의 이념」, 한국 서양사학회 편, 『서양에서의 민족과 민족주의』(까치,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