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미완의 혁명 

소련이 해체된 후 러시아혁명의 의미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강화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러시아혁명은 소련이라는 체제의 수립을 가져왔지만 소련은 혁명의 약속을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련은 경직적 행정명령 체제로 나아갔고 자기혁신에 실패하여 해체되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의 정통 레닌주의자들도 “낮은 생활수준, 민주주의 결여, 관료주의와 근로대중의 괴리가 소련의 붕괴를 불러왔다”는 것을 인정한다.58 이제는 러시아혁명도 반드시 따라야 할 모델이라거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내야 하는 재앙으로 여길 눈앞의 사건이 아니다.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긍정적인 유산을 따르고 부정적인 폐해는 버릴 수 있는 시간적 간격을 얻었다. 방금 언급한 러시아 레닌주의자들이 말하듯, “10월 혁명의 주역들을 신격화할 필요도 없지만 악마화할 필요도 없다.”59 

러시아혁명으로 수립된 체제가 실현했던 성과들은 개별적으로 다른 체제에 흡수되었고, 그 체제 자체는 소멸되었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수립된 소련이 인류에 기여한 한 가지는 자본주의의 인간화를 촉진했다는 것이라는 주장도 분명 근거가 있다고 본다. 

어떤 체제에도 공과 과가 있다. 영국과 프랑스의 제국주의, 미국 노예제도로 인하여 희생자들이 겪은 고통은 사회주의 소련 체제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고통에 못지않았다. 미국에서 극심한 인종차별이 행해지고 있을 때 러시아혁명으로 수립된 체제는 모든 인종, 민족들의 동등한 권리를 주장했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고 있을 때 러시아혁명으로 수립된 체제는 식민지해방투쟁을 지원했다. 대부분의 서방국가에서 여성들이 아무런 정치적 권리도 가지지 못하고 있었을 때 소비에트 러시아는 여성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했고 여성 장관, 여성대사를 배출했다. 완전고용,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물론 이러한 정책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경직된 관료체제를 낳았다. 인간적 고통도 실로 엄청났다. 그러나 러시아혁명으로 수립된 체제의 진보적이고 선진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과오만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혁명은 혁명으로밖에 기존질서를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다. 당시 사람들이 혁명을 불러낸 것은 그것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는 결코 일으킬 수도 없고 성공시킬 수도 없는 것이 혁명이다. 러시아혁명은 거대한 변화의 흐름들이 집적되어 일어난 것이다. 국가들의 상호연관성이 증대해 가던 20세기 초에 일어난 혁명인 만큼 세계사 전체의 요구가 러시아혁명의 어깨 위에 얹혔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서구 사회는 그들 자신의 길로, 소련과 그 동쪽 사회는 또 그들 자신의 길로 각기 나아갔다.

혁명은 그것을 만들어낸 체제가 소멸한 후에도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 영감의 원천, 발상의 원천이 된다. 21세기에 러시아혁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한다는 것은 그것과 동일한 방식의 혁명, 동일한 결과를 가져올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 1917년 혁명은 어디까지나 20세기의 혁명이었다. 20세기의 한계를 고스란히 가진 혁명이라는 의미다. 그런 한편, 러시아혁명은 20세기의 테두리 내에서 사회경제적, 국제적 변혁의 출발점이 되었다. 현실적 모범으로서가 아니라 역사적 이해의 대상으로서 러시아혁명을 논할 때는 이 점을 분명히 상기해야 할 것이다.   



58. Вершина великой революции. К 100-летию Октября, p.1176. 

59. Ibid., p. 1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