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의 역사에서 만주는 수렁의 입구가 될 것이었다. 일단 만주에 발이 빠지면서, 일본은 화북,내몽골,화남 그리고 인도차이나,동남아 등지로 끊임없는 확장을 계속하게 되었다. 이 침략이라는 수렁은 미국과의 충돌의 원인을 제공했다.
러일전쟁 이후 만주에서, 일본의 침략정책과 미국의 문호개방 정책이 정면 충돌했고, 이 충돌이 장래의 태평양전쟁의 씨앗이 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만주가 이후 역사에게 화근이 된다는 것을 고려할때, 러일전쟁 직후의 이토 히로부미의 만주 인식은 선견지명이라 평가할 수 있다.
남만주의 육군 당국이 지배를 강화하면서, 미국의 만주 문호개방정책과 충돌하면서, 미일 관계를 손상시키게 되자,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 문제에 개입, 다음을 주장했다.
5월 22일
일본 수상 관저에서, 만주 문제에 관한 협의회,
- 그럼에도 관동도독부와 육군 당국이 이러한 정황을 무시하고 남만주에 대한 육군의 지배를 강화하려 하자, 이토와 이노우에 등 겐로(元老)는 가토 다카아키 외상을 지원, 만주 문호의 성실한 개방을 주장하고 나섰다. 미 • 영의 금융 지원이 무엇보다도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군 당국과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자, 이토는 결국 겐로 • 정부 , 육해군의 최고 수뇌 회의의 소집을 요구했다; 1906년 5월 22일 수상 관저에서 열린 이른바 ‘ 만주 문제에 관한 협의회’가 바로 그것이다.
이 모임에는 이토를 비롯한 ‘겐로’ 전원과 사이온지 수상을 비롯하여 하야시 외상, 사카다니 장상 등 각료,그리고 고타마 육군 참모총장을 비롯한 군 수뇌 등이 참석했다. 먼저 발언은 이토가 시작했다.
(6) 미 • 영의 지원이 절실한 처지에서 만주 문호를 폐쇄하여 그들을 적(敵)으로 돌리는 것은 ‘자살적 정책’이라는 요지였다. 그 뿐만 아니라, 만주에서 보이고 있는 일본의 행동은 청국 정부와 인민의 불만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 이대로 계속한다면 북청뿐 만 아니라 결국 청국 21개성의 민심을 반일 反日로 치닫게 할 것 이라고 역설했다.
이와 관련해 야마가타 • 데라우치 • 고타마 둥의 생각은 달랐다. 러시아의 보복전에 대비해야 하는 처지에서 현지 군인들에 따른 시책이었던 만큼, 다소 지나쳤을 수는 있겠지만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대응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토는 이에 승복하지 않았다. 이미 강화조약이 체결되어 평화가 회복된 상황에서 여전히 전시적 군정을 계속하는 잘못을 통렬하게 지적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회의가 끝날 무렵 고타마가 ‘만주 경영’이라는 말을 하며 “만주에서 주권을 누군가 한 사람에게 맡겨…… 일체를 지휘하는 관아 官衙를 새로 조직하면 어떨까” 운운하자, 결국 이토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7) “고타마 참모총장 등은 만주에서 일본의 지위를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통렬한 첫 반박이었다. “만주 방면에서 일본의 권리는 강화조약에 따라 러시아로부터 양도받은 요동반도 조차지와 철도 외에는 무 것도 없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만주 경영’이라는 말은 전쟁 진행 때부터 우리가 널리 쓰고 있었지만,만주는 결코 우리의 속지 屬地가 아니다. 순전한 청국 영토의 일부일 뿐이다. 속지도 아닌 땅에 우리 주권을 행사할 도리는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즉, "만주는 청의 영토이며, 일본이 주권을 행사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참고-
최문형, 일본의 만주 침략과 태평양전쟁으로 가는 길 : 만주와 중국대륙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 지식산업사, 2013. 34-36.'
이처럼 외교적으로도 매우 유능한 인물이였고
이 사람 계속 살아있었으면 미국과 영국의 심기를 건드렸던 만주사변 같은 뻘짓은 안했겠지
우리 입장에서 죽여할 사람이라는건 반대로 적들 입장에서는 매우 유능한 사람이였음
이래도 독립운동가들이 한 게 없습니까?
잘죽였다..윤봉길의사도 그렇고, 온건파나 제지가능한넘들 잘죽인듯 - dc App
죽은게 백번 잘된거지
이토에 시라카와에 나름 좆본에서 브레이크 걸만한 새끼들은 모조리 머한이 죽여버렸네 - dc App
브레이크 걸어도 그게 그거니까 문제지 - dc App
잘죽였네
그래서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시작이 이토 히로부미 암살 실패잖어
똘똘한 새끼들만 독립군이 죽여서 다행 - dc App
저거 보니까 진짜 죽였어야되는 인물이네
옛날엔 독립운동가들이 온건파만 죽인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고장난 차에 브레이크 빼는 거였네
비유 좋다ㅋㅋ
비유 ㅋㅋㅋㅋㅋ
태평양전쟁 발발하고 미국 내 중국인과 한인들이 기뻐했담서 ㅋㅋㅋㅋㅋ - dc App
사실 우리입장에서 장기적으로 보면 일본 온건파가 더 무섭지
진짜 죽였어야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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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존나불타네
일하다 추뽕아 - dc App
추뽕들 일하게 불타는거 보니 안의사의 의거가 쓰라리긴 한모양ㅋㅋㅋ - dc App
일뽕 부들부들잼ㅋㅋㅋ
ㅂㄷㅂㄷㅂㄷㅂㄷㅂㄷㅂㄷㅂㄷㅂㄷㅂㄷㄷㅂㄷㄷㅂㄷㄷㄷㅂㄷㄷㅂㄷㅂㄷㅂㄷㅂㄷㅂㄷㅂㄷㅈㄷㅂㄷㅂㄷㅂㄷㅂㄷㅂㄷㅂㄷㅂㄷㅂㄷ - dc App
잘 죽였네 더더욱
힌트: 이토가 있던 없던 후임 카츠라가 노선 승계했기 때문에 군부 통제만 잘 유지했으면 광복은 더더욱 답이 없었다
황국의 수호자 shahrbarun니뮤ㅠ
오늘도 깡갤서 배운 역사적 fact를 가지고 우매한 반일샌징들을 교육하시려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ㅎㅎ
팩폭도 아니고 쌍욕도 아니며 반고닉이나 고닉도 아니다 HOXY...?
우리 일뽕성님 잘불타시네 엌ㅋㅋㅋ
근데 못했자너 - dc App
잘 유지했으면-못했죠?
안중근 의사의 판단은 정확 그 자체
여윽시 명사수 가장 치명적인 부분을..
이 글보고나니 더 잘죽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토가 그때 살았다면 한국의 독립은 오히려 더 멀어졌을듯...감사합니다. 안중근 장군님..
이봉창 의사도 잊으면 안되지. 무려 덴노인 히로히토를 잡기 직전까지 갔음. 폭탄 2개 던졌는데 하나는 조금 빗맞았고 나머지 1개가 직격이었는데 폭탄 불발만 아니었으면 성공. 만일 그것까지 성공했으면 일본은 진짜 멸망의 도가니탕까지 갔다.
히로히토가 전후에 생존을 위한 공작질 때문에 유유부단한 왕으로 묘사되는데 실제는 전혀 아님. 조선의 숙종처럼 오래간만에 일본 왕비에게서 태어난 적장자라서 정통성이 최강이었음. 거기에 일본 제국의 우상화까지 더해져서 자기가 맘만 먹으면 미친 지랄을 다 할수 있었지. 다만 머리가 좋아서 뭔가 낌새가 안좋은 큰 일하면 그거 주동한 신하에게 앞장서게 만들고 일이 안좋게 돌아가면 책임 다 뒤집어씌울 생각을 했지. 대표적으로 그거에 말려들어간게 도죠.
그래서 자기 위급한거 알면 행동이 무지하게 빠르고 정확함. 2.26때도 바로 반란군을 역적화해서 개작살내게 만들어놓고, 패전 직전에 포츠담 선언 수락한다는 것도 자기가 앞장서다시피 해서 대본영 입을 틀어막은 후에 옥음방송 다 녹음해놓고 또라이들이 개반란 일으킬까봐 대비까지 해서 실제로 반란 일어났지만 1일만에 개박살남. 덕분에 그나마 빠른항복해서 본토는 건졌지. 만일 이때 히로히토 말고 다른 놈이 왕했으면 정통성 모자라서 어버버 하다가 전쟁 더 진행되는 바람에 일본 피해가 더 커졌을 것임.
솔직히 판단은 무슨 그냥 쪽바리 대빵이니 죽인거겠지
이토 있었으면 한일합병 안 갔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