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은 21세부터 60세까지 몸이 쇠약하지 않은 남자를 의미했다. 징병제의 원칙에 따라 정정 3명에 대하여 1명의 비율로 징집하였다. 병사는 각지의 군단에 배속되어 약 3년간 복무하였다. 군단은 일본 전역에 걸쳐 약 140여 개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병사 중 뛰어난 자는 하급 장교인 위사가 되었다. 위사란 1년간 수도에 배치되어 왕궁과 주요 기관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당시 일본의 국경은 규슈의 북쪽, 그리고 동북을 의미했다. 이곳에 배치된 병사를 사키모리라고 했다. 일반 병사는 징집의 댓가로 용과 잡요가 면제되었고, 위사와 사키모리는 요과 잡요, 조가 면제되었다.

이 때에 홋카이도와 류큐 제도를 제외한 현대 일본의 영토가 형성되었다. 720년 조정은 규슈의 남쪽, 가고시마에 원정군을 파견하여 하야토 종족을 격파하고 그곳에 오스미노쿠니를 설치하여 행정구역에 편입했다. 하야토 종족이 복속되자 야쿠시마, 다네가시마의 원주민이 조정에 알아서 복속할 뜻을 내비쳤다. 조정은 이들을 다스릴 관리를 파견하였다.

797년 11월 사카우에노 타무라마로가 정이대장군에 임명된다. 최초의 정이대장군이었던 그는 죽어서는 일본의 호국신으로 존경받았다. 타무라마로는 800년 동북을 완전히 재패하기 위해 원정을 감행했다. 이 때 이사와 성을 구축하고 동북의 영토를 완전히 손에 넣었다.

간무천황 대에 일련의 군사개혁이 있었다. 792년 동북과 규슈의 북부를 제외한 모든 군단을 폐지하고, 그 외 지역에 거주하는 백성의 군역을 해제하였다. 대신 관직에 있는 자, 부유한 자를 중심으로 요역을 면제하고 그들에게 병사의 임무를 부여했다. 이를 곤데이 제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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