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폴레옹시대 프랑스 기병의 종류

프랑스 혁명 직전 프랑스군에서 기병의 역할은 미미하였고, 모든 기병대는 장갑이 없는 용기병(Dragoon)만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혁명전쟁이 시작되면서 프랑스 혁명군은 기병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기병대 증강을 꾀하였고,

나폴레옹은 마렝고전투(Battle of Marengo, 1800)에서 승리할 때 기병여단의 활약을 보고 프랑스군 기병의 양적,질적 성장을 도모하였다.



당시 프랑스 기병의 종류에는 크게 重기병, 中기병, 輕기병, 랜스기병 이렇게 4가지로 구분된다.

重기병, 中기병, 輕기병 구분하는 기준과 종류는 시대와 국가에 따라 매우 상이하다.

통상 기병이 착용하는 장갑과 무기, 말의 크기에 따라 기병의 유형이 구분된다고 하나 필자의 판단은 임무유형에 따라 구분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輕기병은 정찰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重기병은 돌파, 돌격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였는데.

이를 위해 말의 크기와 착용하는 장비가 달라졌을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 기병의 종류를 설명하면서 랜스기병을 輕기병의 한 종류로 보지 않고 따로 구분한 이유는 랜스기병이 기존 輕기병과는 다른 역할을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1)重기병

重기병의 역사는 로마 멸망 이후 중세유럽을 지배했던 철갑기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기병은 무거운 갑옷을 자신의 몸과 말에 두르고 돌격하여 충격력으로 보병방진을 무력화시키고 전투에서 승리를 얻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크레시전투(Battle of Crecy, 1348)에서 영국장궁병대에 프랑스 기사단의 돌격이 무력화되고, 화약무기 발달과 함께 전통적 기병의 역할이 감소하면서 18세기 이후부터는 重기병을 전장에서 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프랑스에서 重기병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프랑스 네(Michel Ney, 1769~1815)1와 켈레르만은 나폴레옹에게 장갑으로 무장된 重기병 창설을 건의하였고 혁명전쟁을 경험한 나폴레옹의 의지에 따라 프랑스 육군에 흉갑기병부대를 창설하였다.

1799년 프랑스 육군이 보유한 25개의 기병
연대 중 흉갑을 착용한 것은 1개 연대에 불과하였지만 1802년에는 12개의 연대가 흉갑기병으로 증강되었다.

이후 흉갑기병대는 나폴레옹 전쟁기간 동안 전장을 지배하고 프랑스군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필수적인
요소로 변화하였다.

흉갑기병은 전투시 갑옷이 주는 불편함보다는 기병
의 몸을 보호하는 방어적 이점을 살리기 위해 철로 된 흉갑과 헬멧을 앞가슴과 등, 머리에 착용하여 적과 교전시 보호를 받았지만 팔은 행동의 자유를 위해 흉갑을 착용하지 않았다.


「흉갑은 당시 표준 화약무기의 탄, 적군 기병의 칼로부터 기병의 몸을 적절히 보호할 수 있었다」

(Bruce et. al., op. cit., p.99).

그들은 사브레(Sabre)를 주로 소지하였으며 권총과 카빈(carbine)는 사브레에 비해 부차적인 무기로 간주되었다.

그 이유는 돌격전술에 주로 운용되는 흉갑기병이 적
에게 돌격을 할 때 권총이나 카빈은 소지할 경우 1차 사격 이후 재장전 시간이 많이 소요될 뿐 아니라 말 위에서 재장전이 어려웠고,

적과의 근접전에서 사브레로 무장하는 것이 살상력을 더 극대화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프랑스군 重기병에는 흉갑기병 이외에도 황제호위를 전담으로 하는 척탄기병(Grenadier a Cheval)이 있었다.

1676년 루이 14세(Louis ⅩⅣ,1638~1715)가 보병연대 인원 중 척탄병(grenadier) 250명을 선발하여
근위기병연대를 창설한 것이 시작이었으며,

그들의 주요 임무는 황제에 대한 호위 및 아군 보병, 기병 돌격시에 최선두에서 돌격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혁명전쟁이 끝날 무렵 행정부 통령이 된 나폴레옹은 근위 보병 ․ 기병부대(Foot and Mounted Grenadiers of the Consular Guard)라는 2개의 호위부대를 창설하였으며, 1804년 황제가 되었을 때 척탄기병의 이름을 근위기병(Grenadier a Cheval de la Garde Imperiale)으로 변경하였다.

당시 편성은 4개의 기병대대로 구성된 1개 연대로
1,018명이었으며 황제 근위기병인 만큼 기병의 키는 최소 176cm 이상이었고, 상위계급 장교의 추천이 있어야 부대에서 복무할 수 있는 엘리트부대였다.

근위척탄기병은 나폴레옹 전쟁기간 동안 주요 전역에 참가하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2) 中기병

中기병의 대표적인 형태는 용기병25)이다. 용기병은 17세기 화약무기의 발달과 함께 개인이 소지 가능한 화기가 등장하면서부터 편성되었으며, 적과 전투할 때는 말에서 내려 개인용 화기를 이용하여 전투에 임하 고 이동할 때는 말을 타는 보병과 기병의 혼합된 형태였다.

따라서 그들은 重기병과 輕기병의 중간 형태로 전장에서 重기병과 輕기병의 임무를 모두 수행하도록 훈련받았다.

하지만 그들이 소지하고 있는 무기의 특성으로 인해 重기병처럼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임무는 부여받지 않았 다.

1791년 18개였던 용기병연대는 프랑스 혁명 이후 30개로 확장되었 지만 1811년 이 중 6개 연대가 창기병으로 전환되면서 용기병의 수는 점차 감소하였다.

용기병의 복장은 표범가죽 터번을 두른 황동투구를 쓰 고 초록색 제복을 입었으며 기병대 내에 말의 수가 매우 부족하여 모든 부대원이 말을 타는 것은 제한되었다.

따라서 도보로 전쟁에 참가하여 말이 생기면 타고 전투에 참가하였다.

나폴레옹은 전쟁기간 동안 용기병을 자신의 주전장인 중부유럽보다는 주로 에스파냐전역에서 활용하였다.

그 이유는 이베리아반도가 건조하며 토양이 매우 거칠어 프랑스 重 기병이 활약하기에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812년 러시아 원정 실패 이후 흉갑기병을 무장하기 위한 군마가 부족해짐에 따라 용기병이 重기병의 역할을 일부 대신하기도 하였다.


3) 輕기병

정찰, 전초전, 추격, 적 병참선에 대한 습격, 교량 등 중요 지역을 확보하는 등에 임무를 수행하는 輕기병은 무장형태에 따라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였다.

그 중 프랑스 輕기병을 대표하는 것은 후사르(hussar), 輕 기병(chevau-leger)이 있다.

후사르는 헝가리 輕기병(Hungarian light horse)이 오스트리아 황제군에 복무하면서 생겨났다. 이후 유럽 내 각국이 이를 모방하면서 퍼져나갔고 프랑스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프랑스 내에서 후사르 기병대가 처음 등장한 것은 1791년부터 1795년까지 혁명정부가 혁명전쟁에 대비하고자 13개의 후사르 기병대를 창설하면서 부터였다.

그들의 복장은 매우 화려했으며. 무장은 카빈과 가벼운 사브 레였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정찰임무를 수행하면서 필요한 경우 소규모 교전도 실시하였다.

대표적인 활약상은 예나전투(Battle of Jena, 1806)에서 프로이센군이 패배하고 후퇴하자 나폴레옹은 추격을 지시하였는데 후사르 제5,제7연대가 여단으로 편성되어 프로이센군을 추격하였다.

이때 22일 동안 하루 평균 50km를 질주하여 프로이센이군 6,000명을 생포하고 야포 160문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輕기병(chevau-leger)은 프랑스가 러시아 공격을 준비하던 시기 6개의 용기병연대를 창기병으로 개편하면서 탄생하였다.

이는 러시아군에 소속된 코사크(Cossack)기병34)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넓은 러시아 지 역을 사전에 정찰하여 重기병을 보호하고자 한 나폴레옹의 전략적 판단이었다.

러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창설되었기 때문에 러시아 전역당시에 병사 대부분은 신병이었고, 초급장교들 또한 새롭게 임관한 기병이었다.

하지만 상급지휘관 대부분이 전투 및 지휘경험이 풍부하여 러시 아 전역에서 많은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용기병부대를 기반으로 창설 되었기 때문에 輕기병은 복장과 무장에서도 용기병과 매우 유사하였으나 다른 점은 무장에 있어 검을 장비하고 있었으며 일부 병사의 경우 랜스를 착용하였다.





4) 랜스병기

기병의 전통적 무기였던 랜스는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자취를 감추었으며 사브레가 기병의 근접전에서 주요한 무기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후술하게 될 폴란드 랜스기병 등 일부만이 명맥을 유지하였고, 나폴레옹이 랜스기병의 전술적 가치를 재발견하여 이를 적극 운용하게 되면서 유럽 내 전장에서 랜스기병이 다시 등장하였다.

나폴레옹이 랜스기병을 중용 한 이유는 첫째,고대로부터 기병을 방어하기 위한 보병부대의 노력은 방진 형태의 변화와 무기의 발달로 이어져 왔다.

반대로 기병은 보병과 방진에 대한 돌파를 위해 노력했는데 랜스가 보병과 방진에 대한 기병의 공격력을 극대화시켜 주었다. 사브레보다 파괴력이 강한 랜스가 기병돌격 시 보병을 공격하는데 유용하였다.37) 둘째, 랜스기병은 輕기병의 장점인 속력과 重기병의 장점인 충격력을 모두 갖고 있는 기병대였다.



이러한 사실이 나폴레옹 전쟁기간 동안 재발견되면서 1813년 이후 프랑스 적국인 오스트리아, 러시아에서도 랜스기병을 증강하여 적극적으로 운용하게 되었고 랜스 기병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영국조차도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 랜스기병대를 창설하여 전장에서 운용하였다.

셋째, 나폴레옹이 1807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입성하면서 폴란드 랜스기병에 대해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에 따라 자신의 근위대(Imperial Guard)에 폴란드 랜스기병을 포함시켰으며 야전군 기병대에 폴란드 복장을 한 랜스기병을 포함시키게 되었다.

폴란드 기병들은 1808년 에스파냐전역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는데, 당시 에스파냐 전역에 참가한 영국기병은 폴란드 랜스기병의 활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 하였다.


“ 그들은 매우 컸고 말을 잘탔다. 깃발을 붙인 긴 창으로 무장한 그들에 대해 우리의 말들은 매우 놀랐고 우리 기병들은 말을 진정시키거나 도 망가기 바빴다. 그들은 완벽한 야만인(barbaians)이었고 어떤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