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개전 직전, 유럽에 전운이 깃드는 가운데 영국 국방성은 1인이 휴대 가능한 전투식량(Field Operational Ration)의 확보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개발하기 위해 Takio 에 신형 전투식량 개발을 주문합니다.


Takio 는 당시 통조림을 비롯한 보존식품업계에서 많은 경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투식량은 민수용 통조림, 혹은 간단한 냉동식품의 개발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격한 전투를 치르게 될 병사들에게 충분한 칼로리를 보급해야 되고, 모든 것이 부족한 격오지에서도 취사가 가능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거친 전장에서도 내용물을 충실히 보호해야 했죠.

예산은 한정되어 있는데, 이 바라는 것 많고 깐깐한 여자친구인 국방부의 눈에 맞추기 위해 전투식량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를테면, “맛” 이라던가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개발이 한창 진행중인 가운데 영국 국방부는 여기에 한가지 조건을 더 붙이는데, 그 내용은 “전선의 장병이 후방에서 먹는 레스토랑의 코스요리를 접할 수 있게 할 것” 이였습니다.


세상에. 전장에서 전채요리-메인디쉬-디저트 까지 이어지는 코스요리를 먹겠다고요? 이거 미친거 아닙니까? 라는 소리가 나올게 분명했지만, 영국 국방부도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연이은 승전으로 나치 놈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상황에서 그들을 상대해야 할 영국군인들의 심적 부담감을 먹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전장에서의 맛있는 식사 한끼는 사기진작에 더 없는 명약이니까요. 실제로 이 신형 전투식량은 전선 장병들에게 일종의 특식으로 제공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문을 받은 업체입장에서는 상당히 골 때리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여러 가지 생각 끝에 한가지 간단한 해결책을 냅니다.

 

“코스요리를 서빙할 수 없다면, 아예 하나로 압축해버리자.”

 

그들은 발효된 빵과 치즈, 쇠고기, 리코타 라비올라, 후추를 뿌린 표고버섯, 넙치 요리, 리조토, 구운 돼지고기, 달콤한 파이, 프랑스 카늘레 등 애피타이저에서 시작해 디저트까지 모든 요리를 젤리형태로 만들어 층층이 쌓아 캔 하나에 들어가도록 압착했습니다.


그 결과가 이것 입니다.




개발된 전투식량의 외형


(당시의 방식대로 복원한 통조림)


…비록 생긴건 조금 많이 이상했지만, 신형 전투식량은 열량이나 영양학적으로 기존의 것들을 뛰어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캔 하나에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자그마치 12가지 요리를 맛볼수 있었습니다. 민간의 레스토랑에서도 이 정도의 잘 구성된 코스요리는 찾기 힘들 겁니다.


그들은 취식의 편리성을 위해 식기도 새로 개발했는데, 깡통 위에 붙어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캔과 붙은 면에 보이는 작은 톱니바퀴로 깡통을 딸 수 있도록 했고, 위의 입체적으로 생긴 포크는 서로 착 달라붙은 음식층(layer)을 분리하기 쉽도록 고안되었습니다. 3개의 포크 날은 평상시에는 안으로 수납되어있다가 흔들어 빼낸 다음 시계방향으로 돌려 고정시켜 사용했습니다.


급했던 국방부는 기대이상의 결과에 만족하며 신속하게 초도 물량의 발주를 승인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약 5천개의 신형전투식량이 실험적으로 일부 부대에 배급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모두 예상했다시피 장병들의 평가는 좋지 못했습니다. 레스토랑의 음식을 캔 하나에 우겨 넣으면서 음식의 비주얼이 형편없이 뭉개졌기 때문입니다. 병사들은 새로 보급받은 전투식량을 ‘도기캔(doggy can)’, ‘음식에 대한 대죄’, ‘음식이라고 칭해지는 무언가’ 등의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생김새는 정말 별로였지만 데워먹으면 의외로 먹을만했다.” 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래는 한 병사의 수기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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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보급받은 식량은 지름 4인치, 높이 6인치 정도의 원통형 캔 하나였는데 위에는 깡통따개가 붙은 막대가 손잡이처럼 붙어있었다. 막대를 분리하고 거꾸로 들자 그 안에서 더 작은 막대 3개가 튀어나왔는데, 삼각형으로 퍼지는 게 마당을 쓸던 빗자루나 머리빗 같았다.


캔 안의 내용물은 죽어 문드러진 돼지 배때지에서 썩다만 기름만 떼어내 한 가득 쑤셔넣은 모습이었다. 우리들이 굶주리지 않았다면 먹었던 것을 전부 게워냈을 것이다. 표면에 떠오른 약간의 지방냄새 말고는 별다른 냄새는 없었다. 제정신으로는 먹기 어려워 사람을 모아 불에 던져 30분 정도 구워먹기로 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것은 옳은 방법이었고, 그 후로는 캔을 따기 전에 항상 익혀 먹었다.


머리빗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 내용물을 한층 씩 뜯어내기 위한 일종의 포크였다. 내용물은 자글거리며 익는 동안 이따금 쪼개지는 소리를 냈는데, 이는 음식 사이가 벌어지며 나는 소리로 잘 익은 캔은 각 음식층이 서로 분리되어 포크로 먹기 쉬워졌다. 따듯하게 데워진 캔은 보기와는 다르게 적당히 끈적이고 기름져 먹기 쉬웠다. 캔 하나에는 서로 다른 12개의 층이 있었는데 누군가가 캔 메뉴판을 찾아내기 전까지 각 층이 어떤 맛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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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합니다.


이 전투식량에 엮인 또다른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보다시피 전투식량의 외형이 수류탄과 흡사해 얼핏보면 착각하기 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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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색도중 한 독일병사를 포로로 잡았는데, 우리가 생포한 것이 아니라 그가 먼저 우리를 찾고는 스스로 손을 들고 투항해 왔다. 포로는 영어를 할 줄 몰랐고, 우리들 중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우리의 대화는 온갖 바보 같은 몸짓발짓과 간신히 알고있는 짧은 단어들로 이루어졌다. 심문해보니 그 젊은 병사는 본대에서 낙오되어 수일간을 헤매다 우리에게 발견된 것이었다. 간단한 심문이 끝나고, 심하게 굶은 모양새라 리엄(Liam)이 독일 병사에게 도기캔을 건네주었다. 병사는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다급히 무어라 소리쳤는데,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살려달라는 게 분명했다. 시간을 들여 이것이 음식이라는 것을 간신히 이해시키자 이번에는 병사가 분노에 찬 얼굴로 항변하기 시작했다. 간신히 알아들은 것은 이것(아마도 부비트랩)은 매우 비신사적이고 비겁한 행위라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통조림처럼 생긴 폭탄과 폭탄처럼 생긴 통조림의 차이를 설명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포로는 끝까지 통조림을 따는 것을 거부하였다. 오해는 복귀도중 식사시간에 대원들이 수류탄을 뜯어 그 내용물을 먹는걸 보고서야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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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이러한 여러 일화를 남긴 신형전투식량은 선술 했듯이 일선 장병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결국 후속 물량은 생산되지 못했습니다. 발주를 받지못한 Takio 도 전란중에 망해버리면서 전쟁이 만들어낸 이 기발한 아이디어는 역사속으로 사라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