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봄, 나에게도 대한민국 남자라면 거쳐가는 병역판정검사를 받아야 하는 시기가 왔다.

원래 날씬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수능을 치고 대학입학을 기다리는 동안 친구가 별로 없던 나는

집에서 먹고자고를 반복한 덕분에 100키로가 넘는 몸매가 되어서 대학을 입학했고 여학우들의 개무시와
밀덕인 티를 냈다가 학생운동을 하는 선배들의 눈총과 군대 갔다온 선배들의 불쾌함을 온몸으로 받으며

불가촉천민 신세를 면치 못하며 조용히 학교를 다니던 중 이었다.


당시, 판정기준을 보니까 이대로 그냥 가면 체중으로 인한 4급으로 공익을 갈 팔자였다.

하지만 장교출신의 아버지의 불호령, 공익밀덕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학교에서 또 얼마나 놀림감이 될 것인가.
얼마 없는 친구란 놈들의 비웃음은 어떻고. 넷상에서 그런낙인이 찍히면 로그인을 안하면 그만이지만 학교란건
안나갈수가 읍자나.

내가 순진하게 북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선배들의 말에 북한에 대한 비판을 하고 강릉무장공비,1차서해교전

등에 대해 내 생각을 고대로 말했다가. 학내 운동권들 하고 의견충돌을 일으켰던 내가.


군대에 안가면 얼마나 비웃겠냔 말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 반미에 대한 분위기가 고조되고 2학년이 되고

미선,효순 사건이 일어나면서 나같은 사람에 대한 분위기는 정말 험악해 졌다. 정떡으로 어그로 끌려는건 아니고
당시 우리대학내 분위기가 진짜 그랬다. 당시, 생각없이 놀러다니는 부류는 아니라는 생각에 날 학생회에 끌어들이고
회유하려는 분위기가 있어서 어쩔수 없이 얼굴 맞대고 충돌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정말 학교 다니기 싫었다.


그래서 난 그날부터 살을 빼기 시작했다. 목표는 3급현역으로.

그래서 당시 부산지방병무청이 부전시장에 있던 시절 아슬아슬하게 4키로정도 차이로 '비만'으로 인한 3급 현역판정을
받고 월드컵은 보고 가자는 생각에 학교를 억지로 계속 다니다가 2002년 6월. 1학기가 끝나고 난 휴학에 들어갔고.


당시 '최첨단' 병무시스템이라는 인터넷 군입대 지원으로 주특기 교육이 있는 논산입대일을 배정 받으려 언제로 갈까 보다보다.
2002년 12월12일에 입대날짜를 정해서 집에서 클릭을 했다.

그리고 월드컵 다 보고, 연평해전으로 ㅂㄷㅂㄷ 하다가. 샌프란시스코가 어이없이 월드시리즈서 준우승 하는거 보고 난 군대에 입대했다.


아 ㅆㅂ.. 내가 왜 그랬을까. 걍 공익갈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