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노의 옥음방송과 대본영의 항복 결정이 관동군 사령부에 들어오긴 했지만, 야마다 대장은 항복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며칠 간 버티려 들다가 결국 8월 19일에야 항복협상을 시작했습니다. 원래 대본영 지시도 잘 안들어먹는 관동군 사령부니까요;;


이 시점이면 교전에 휘말린 관동군 부대는 사단, 여단별로 소련군에게 고립되고 포위되어 섬멸당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소련군은 협상이 진행되자 포위한 관동군 부대들에게 항복을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포위되어 고립되고 사령부와의 연락수단이 다 끊겼으며 무선통신도 소련군의 전파방해로 끊긴 개별 부대들은 일본이 항복한 사실을 아예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소련군이 덴노와 대본영이 이미 포츠담 선언을 수락했다고 친절히 설명해 주면, "그럴 리가 없다! 이건 우리의 사기를 떨어트리려는 빨갱이 로스케의 기만이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이에 소련군은 관동군 사령부의 항복 명령서를 보여주던가 아니면 다른 수단으로 일본의 항복을 입증하려고 시도한 것 같습니다.


아예 최후까지 저항한 부대는 후터우 요새에 주둔한 제14국경경비대였습니다. 제14국경경비대는 8월 20일경에 소련 제35군이 사절로 보낸 국경교전에서 항복한 일본군 장교를 그 자리에서 군도로 베어 죽여버릴 정도로 광신적인 저항을 했고 끝까지 항복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에 소련군은 제14국경경비대가 끝까지 항복하지 않으려 들자 8월 22일에 요새에 독가스를 퍼부어 전멸시켜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