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자욱히 퍼져오르는 흙먼지. 번져오르는 불꽃. 흙밖에 남지 않는 능선 위로 포격이 떨어져 내리는 광경은 멀리서 봤다면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병사들에겐 아니었다. 병사들에겐 이곳이 지금 지옥이 아닐까. 그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방탄 위로 흙파편들이 쏟아져 내릴때면 이미 참호 가장 깊숙한데 몸을 파묻고 있음에도 땅밑까지 파고들 요량인지 어깨를 바싹 움츠렸다. 귀는 이미 폭팔 소리 덕분에 정상이 아닌지 이명을 호소하는 병사들이 태반이다.
\".......!\"
삐이이이이ㅡ
그 덕분에 덕분에 현성은 김병장이 외치는 말을 곧장 알아들을 수 가 없었다. 현성이 김병장의 얼굴을 보며 되물었다.
\"잘 못 들었습니다?\"
\"#&%&#*@(!\"
삐이이이이ㅡ
\"다시 한번 말...\"
답답한 김병장이 귀 바로 옆까지 다가와 윽박질렀다.
\"포격 끝났어! 기관총 집어 올려!\"
그제야 현성은 주위를 가득 울리던 진동이 끝났다는 걸 깨닫곤 고개를 처들었다. 귀를 집중하자 언제 떨어져 내렸다는 듯 사위가 조용했다. 깊게 패인 구덩이들과 능선 아래로 살포시 가라앉고 있는 흙먼지만이 흔적의 전부였다. 징글징글했던 포격이 끝난 것이었다. 그러나 좋아할 것도 없다. 포격이 끝났다는건 이제야 적들이 들이밀고 올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신을 차린 현성은 김병장의 명령대로 아래로 내려놓았던 기관총을 참호 위로 끄집어 올렸다. 흙먼지가 쌓여있었지만 기능상엔 문제는 없어 보였다. 부사수가 탄약박스를 들어 옆에 거치시켰다.
바로 옆에 총을 견착하고 있는 분대원의 침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긴장된 얼굴로 능선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지휘관들의 목소리만이 이따끔씩 병사들의 머리위로 흘러들었다.
\"보고 쏴. 보고.\"
\"초탄은 사격 명령에 맞추서 사격해. 알겠어?\"
그 사이 산의 지세를 따라 서풍이 불었다. 바람을 따라 아직 걷히지 않은 흙먼지 들이 날아가 버렸다. 이제 시계를 가릴건 아무것도 없었다. 반대편 능선을 가득 매운 갈색 점들이 현성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미친 놈들....\"
김병장의 중얼거림대로였다. 돌이나 흙같은게 아니었다. 그 갈색점들이 다 사람이었다. 보고 쏴? 지휘관의 말을 떠올린 현성이 실소를 터뜨렸다. 저 정도 숫자라면 조준하고 자시고 할게 있나. 허공에 쏴도 분명히 한명은 죽을 것이었다.
그때 다시한번 포소리가 울려온다. 움찔하던 현성은 그게 자기들을 향한 소리가 아니란걸 깨닫곤 하늘을 처다보았다.어디선가 날라온 연막탄이 하늘을 연기로 뒤덮고 있었다.그게 신호였는지 사람의 장막에서 물결을 그리며 천천히 쓸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규모로만 따지면 거의 산사태였다. 그 장엄하기까지 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아직 멀직히 떨어져 있음에도 그들이 만들어내는 대지의 진동과 발자국 소리들이 피부 가까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착각이 현실이 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쿵.쿵.쿵.
발밑이 떨렸다.
\"사격!\"
동시에 참호들에서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현성도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탄띠에 매인 탄들이 기관총 안으로 딸려들어가며 총열에서 연신 불을 뿜었다. 기관총이 바라본 방향마다 군인들이 우수수 코를 박으며 나뒹굴었다. 처음엔 화력에 밀려 전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적들은 시체를 방패삼으며 기어코 앞으로 걸어나왔다. 군홧발 밑으로 한 때 전우였던 자들의 피가 흥건하건만 전혀 게의치 않아 보였다. 저게 같은 사람인지. 현성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갈 수록 시체가 쌓이는 지점들이 점점 가까워졌다. 적이 쏟아내는 총탄들이 점점 참호 가까이에 처박혔다.
\"아아아악!\"
근방에선 눈먼 탄에 정확히 맞았는지 누군가의 비명소리를 귀를 찔렀다. 그러나 같은 참호 안의 사람들이 아니라면 눈을 돌려 누군지를 확인할 시간도 사치였다.
딸칵.
그 많던 탄알이 금새 빨려들어갔는지 현성의 손가락이 텅 빈 방아쇠를 차올렸다.
\"재장전!\"
부사수가 새탄들을 끄집어 올렸다. 나름 빨리 한다고 부지런떠 보지만 사정이 좋지 않았다. 적들이 그새 화력의 공백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병사들의 눈에 그저 윤곽정도로만 보였던 얼굴들이 이제는 하나 하나 구분이 갈 정도였다.
\"됐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의 시선과 눈이 마주첬다 생각한 그 오싹한 순간. 드디어 부사수가 소리쳤다. 재빠르게 장전을 마친 현성이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단발.
눈을 마주쳤던 사람이 가슴에서 피분수를 토했다. 그리고 탄력을 받아 일거에 튀어나간 수발의 총알이 이미 죽은 시체 위를 꿰뚫고 지나갔다.
공백의 시간을 보상하기라도 하는 듯 현성이 매섭게 사방을 훑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가까워졌다. 시체를 참호로 몸을 숙인 적 하나가 수류탄을 까 힘껏 집어 던졌다.
퉁.
수류탄이 긴 포물선을 그리다 현성이 있는 참호의 사대 위로 퉁겼다. 그것은 위에 균형을 잡곤 잠시 갈피를 못잡곤 흔들거리더니 이내 경사를 따라 참호 바깥 방향으로 굴렀다.
퉁.
그리고는 참호 바로 앞 흙구덩이에 파묻혀 움직임을 멈추었다.
참호 안 누군가가 놀라 소리쳤다.
\"호 밖에 수류탄!\"
\"호 밖에 수류탄!\"
몸이 먼저 반응한 현성이 기관총에서 손을 때며 고개를 처박았다. 곧바로 폭팔이 현성의 머리가 솟아있던 지범의 참호 허공을 휩쓸었다. 후두둑, 비산한 흙 파편들이 방탄 위를 회색빛으로 물들였다.
\"다시 고개들어! 사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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