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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목차
1. 중공군의 5월 공세와 7사단의 경과
1-1. 《국군 7사단의 상황》
1-2. 《중공군의 공세 시작》
1-2. 《7사단 방어선의 붕괴》
1-3. 《결론》
2. 3군단의 혼란
2-1. 《3군단의 상황》
2-2. 《3군단의 정보수집》
1. 중공군의 5월 공세와 7사단의 경과
1951.5.16을 기해 중공군의 춘계공세가 공격준비사격을 시작으로 전개되었어
이 단원은 7사단의 전개과정을 통해 이후에 서술할 3군단의 전개과정을 쉽게 풀어 나가기 위해 서술했어
1-1. 《국군 7사단의 상황》
2부 목차
1. 중공군의 5월 공세와 7사단의 경과
1-1. 《국군 7사단의 상황》
1-2. 《중공군의 공세 시작》
1-2. 《7사단 방어선의 붕괴》
1-3. 《결론》
2. 3군단의 혼란
2-1. 《3군단의 상황》
2-2. 《3군단의 정보수집》
1. 중공군의 5월 공세와 7사단의 경과
1951.5.16을 기해 중공군의 춘계공세가 공격준비사격을 시작으로 전개되었어
이 단원은 7사단의 전개과정을 통해 이후에 서술할 3군단의 전개과정을 쉽게 풀어 나가기 위해 서술했어
1-1. 《국군 7사단의 상황》
사진자료를 참고해보면 8연대는 좌전방에, 5연대는 우전방에 배치, 3연대를 사단 예비대로 정자리에 배치하였고 사단 전방 지휘소는 소양강에서 약 24km 후방 역내리에 배치했어
1-2. 《중공군의 공세 시작》
1951.5.16 16:30 중공군의 공격준비사격 시작
중공군은 소양강 남안 국군 7사단에게 2시간 동안 포병을 위시한 강력한 공격준비사격을 시작했어
이 공격준비사격으로 국군 7사단은 화력에 압도당했고, 특히 직할 포병부대인 16포병대대가 큰 피해를 입고 후방으로 후퇴, 통신선이 파괴되어 지휘통제능력을 상실한건 물론이고 주변부대와의 연락도 두절되어버렸지
5.16 18:20 - 중공군의 공세 시작
7사단 방어선으로 중공군 20군과 27군 예하의 총 6개 사단이 공세를 펼치기 시작하면서
초반 몇시간은 치열한 공방전으로 수차례 적의 대규모 병력을 저지했지만...
1-3. 《7사단 방어선의 붕괴》
1-2. 《중공군의 공세 시작》
1951.5.16 16:30 중공군의 공격준비사격 시작
중공군은 소양강 남안 국군 7사단에게 2시간 동안 포병을 위시한 강력한 공격준비사격을 시작했어
이 공격준비사격으로 국군 7사단은 화력에 압도당했고, 특히 직할 포병부대인 16포병대대가 큰 피해를 입고 후방으로 후퇴, 통신선이 파괴되어 지휘통제능력을 상실한건 물론이고 주변부대와의 연락도 두절되어버렸지
5.16 18:20 - 중공군의 공세 시작
7사단 방어선으로 중공군 20군과 27군 예하의 총 6개 사단이 공세를 펼치기 시작하면서
초반 몇시간은 치열한 공방전으로 수차례 적의 대규모 병력을 저지했지만...
1-3. 《7사단 방어선의 붕괴》
[7사단 예하 부대를 중심으로 설명]
「5연대 상황」
방어편제: 예하 3개 연대중 2대대는 좌전방, 3대대는 우전방, 연대 예비로 1대대로 편성
5.16 20:00 - 중공군의 5연대 방어선 돌파
제 3 제파가 소양강 도하에 성공해 밀려 들어오자 그 기세에 완전히 압도되어 5연대는 방어선 돌파를 허용
5.16 22:15 - 2대대의 철수
중공군의 돌파 후 1시간 동안 백병전을 벌여 방어진지를 지켜냈으나 계속된 공세로 철수
5.16 23:20 - 3대대의 철수
진지를 방어 하던 도중 돌파된 2대대 방면에서 들어온 중공군의 포위로 철수
5.16 23:00 - 1대대의 철수
방어선 후방으로 침입한 중공군을 저지하다 3대대와 같이 제 2차 방어선으로 철수
「8연대 상황」
방어편제: 예하 3개 연대 중 좌전방에 2대대, 우전방에 3대대, 연대 예비로 1대대 편성
5.16 19:20 - 중공군의 8연대 방어선 돌파
1개 사단 규모의 중공군이 투입되어 소양강 도하에 성공하자 좌전방에 위치한 2대대와 3대대를 압박
5.16 22:00 - 8연대 방어선 붕괴, 3대대 전술지휘소 습격
5.16 23:00 - 사단 2차 방어선으로 철수
5.17 밤 - 2차 방어선 붕괴 및 미 8군이 설정한 no name선으로 철수
1차 방어선 붕괴 이후 각 대대, 연대 지휘소 중공군의 공격으로 지휘부 와해
일부 병력 좌측 3군단 방어구역으로 후퇴
1-3 결론
초반 공격준비사격으로 인한 통신두절로 우측 국군 3군단에게 방어선 붕괴여부를 통보 하지못했고, 3군단 주 보급로인 오미재가 5.17 00:30 규모 미상의 공산군이 점령당해
2. 국군 3군단 혼란
2-1. 《3군단의 상황》
「5연대 상황」
방어편제: 예하 3개 연대중 2대대는 좌전방, 3대대는 우전방, 연대 예비로 1대대로 편성
5.16 20:00 - 중공군의 5연대 방어선 돌파
제 3 제파가 소양강 도하에 성공해 밀려 들어오자 그 기세에 완전히 압도되어 5연대는 방어선 돌파를 허용
5.16 22:15 - 2대대의 철수
중공군의 돌파 후 1시간 동안 백병전을 벌여 방어진지를 지켜냈으나 계속된 공세로 철수
5.16 23:20 - 3대대의 철수
진지를 방어 하던 도중 돌파된 2대대 방면에서 들어온 중공군의 포위로 철수
5.16 23:00 - 1대대의 철수
방어선 후방으로 침입한 중공군을 저지하다 3대대와 같이 제 2차 방어선으로 철수
「8연대 상황」
방어편제: 예하 3개 연대 중 좌전방에 2대대, 우전방에 3대대, 연대 예비로 1대대 편성
5.16 19:20 - 중공군의 8연대 방어선 돌파
1개 사단 규모의 중공군이 투입되어 소양강 도하에 성공하자 좌전방에 위치한 2대대와 3대대를 압박
5.16 22:00 - 8연대 방어선 붕괴, 3대대 전술지휘소 습격
5.16 23:00 - 사단 2차 방어선으로 철수
5.17 밤 - 2차 방어선 붕괴 및 미 8군이 설정한 no name선으로 철수
1차 방어선 붕괴 이후 각 대대, 연대 지휘소 중공군의 공격으로 지휘부 와해
일부 병력 좌측 3군단 방어구역으로 후퇴
1-3 결론
초반 공격준비사격으로 인한 통신두절로 우측 국군 3군단에게 방어선 붕괴여부를 통보 하지못했고, 3군단 주 보급로인 오미재가 5.17 00:30 규모 미상의 공산군이 점령당해
2. 국군 3군단 혼란
2-1. 《3군단의 상황》
3군단의 방어 편성은 좌측 9사단, 우측 3사단으로 편성되어있었어
그러나 기본 3개 사단으로 편제되는 기본 군단 편제와 달리 3군단은 2개 사단으로 편성되어 군단 예비를 편성할 병력이 없었어.
2-2. 《3군단의 정보수집》
중공군의 대공세는 5.16 16:00에 미 10군단 방어지역에서 개시되어서 공세 당일인 16일에는 국군 3군단 방어 지역에서의 중공군의 공세는 없었어.
그러나 3군단은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의 정황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파악할 수 있었는데.
특히 9사단은 7사단 우측에 배치되었던 이유로 다음과 같은 경로를 통해 7사단의 상황과 중공군의 공세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었어
1. 중공군의 포격과 많은 병력들이 소양강을 도하하는 상황을 28연대가 직접 관측
2. 7사단 5연대가 철수할 때 일부병력이 3군단 예하 28연대 방어지역으로 철수
3. 철수한 5연대 병력들의 증언
4. 9사단장과 5사단장간의 교신에서 7사단 방어지역이 붕괴되었다는 상황을 확인
이렇게 수집한 정보들은 5.17 03:00에 3군단장 유재흥에게 전해졌고 이를 보고받은 3군단장은 좌측에 위치한 미 10군단에게 사실 여부를 요청했으나, 미 10군단장은 “우리 군단 정면에는 아무 이상도 없다” 라고 답변을 했어
그러나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9사단장은 3군단장에게 철수 여부를 건의하였고
3사단장도 같은 내용을 군단장에게 건의했어.
3군단장은 야간의 많은 차량이 이동하면 병사들에게 후퇴하는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차량철수를 허락하지않았고, 미 10군단을 믿고 상황을 더 지켜보다가 날이 밝은 뒤에 장비들의 철수를 실시해도 늦지 않다고 판단했지
하지만 9사단장은 7사단의 붕괴로 사단의 좌측이 노출된 위급한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5.17 03:00 사단장 주재하의 작전회의를 열었고, 이 회의에서 중공군은 빠른 시일내에 군단의 주 보급로인 오미재가 있는 상남리까지 진출 할 수 있을것이라고 결론이 나왔지.
그러나 9사단은 당장 오미재를 선점할 가용병력이 부족했고 9사단장은 3사단장에게 예비대를 보내 중공군보다 먼저 오미재 고개를 선점할 것을 요청했으나 3사단도 마찬가지로 당장 사용이 가능한 예비전력이 없어 오미재는 무방비상태가 된 채 중요한 시간을 놓쳤지
결국 3군단 지휘부는 오미재고개의 전술적인 중요성을 잘 알았지만 이에 대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채 시간을 보냈고, 이 시간동안 공산군은 오미재 고개에 계속 병력을 증원해 다음날인 5.17 16:00경 1개 사단이 훨씬 넘는 규모가 오미재고개에 투입되어버리는 상황이였어
3부에서…
참고
中共軍 총공세와 유엔군의 재반격 - 국방구 군사편찬연구소
현리전투(중공군 5월 공세) -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6.25전쟁기 중공군 5월 공세에 대한 전투 사적 고찰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그러나 기본 3개 사단으로 편제되는 기본 군단 편제와 달리 3군단은 2개 사단으로 편성되어 군단 예비를 편성할 병력이 없었어.
2-2. 《3군단의 정보수집》
중공군의 대공세는 5.16 16:00에 미 10군단 방어지역에서 개시되어서 공세 당일인 16일에는 국군 3군단 방어 지역에서의 중공군의 공세는 없었어.
그러나 3군단은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의 정황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파악할 수 있었는데.
특히 9사단은 7사단 우측에 배치되었던 이유로 다음과 같은 경로를 통해 7사단의 상황과 중공군의 공세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었어
1. 중공군의 포격과 많은 병력들이 소양강을 도하하는 상황을 28연대가 직접 관측
2. 7사단 5연대가 철수할 때 일부병력이 3군단 예하 28연대 방어지역으로 철수
3. 철수한 5연대 병력들의 증언
4. 9사단장과 5사단장간의 교신에서 7사단 방어지역이 붕괴되었다는 상황을 확인
이렇게 수집한 정보들은 5.17 03:00에 3군단장 유재흥에게 전해졌고 이를 보고받은 3군단장은 좌측에 위치한 미 10군단에게 사실 여부를 요청했으나, 미 10군단장은 “우리 군단 정면에는 아무 이상도 없다” 라고 답변을 했어
그러나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9사단장은 3군단장에게 철수 여부를 건의하였고
3사단장도 같은 내용을 군단장에게 건의했어.
3군단장은 야간의 많은 차량이 이동하면 병사들에게 후퇴하는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차량철수를 허락하지않았고, 미 10군단을 믿고 상황을 더 지켜보다가 날이 밝은 뒤에 장비들의 철수를 실시해도 늦지 않다고 판단했지
하지만 9사단장은 7사단의 붕괴로 사단의 좌측이 노출된 위급한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5.17 03:00 사단장 주재하의 작전회의를 열었고, 이 회의에서 중공군은 빠른 시일내에 군단의 주 보급로인 오미재가 있는 상남리까지 진출 할 수 있을것이라고 결론이 나왔지.
그러나 9사단은 당장 오미재를 선점할 가용병력이 부족했고 9사단장은 3사단장에게 예비대를 보내 중공군보다 먼저 오미재 고개를 선점할 것을 요청했으나 3사단도 마찬가지로 당장 사용이 가능한 예비전력이 없어 오미재는 무방비상태가 된 채 중요한 시간을 놓쳤지
결국 3군단 지휘부는 오미재고개의 전술적인 중요성을 잘 알았지만 이에 대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채 시간을 보냈고, 이 시간동안 공산군은 오미재 고개에 계속 병력을 증원해 다음날인 5.17 16:00경 1개 사단이 훨씬 넘는 규모가 오미재고개에 투입되어버리는 상황이였어
3부에서…
참고
中共軍 총공세와 유엔군의 재반격 - 국방구 군사편찬연구소
현리전투(중공군 5월 공세) -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6.25전쟁기 중공군 5월 공세에 대한 전투 사적 고찰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 dc official App
진짜 공산군 후방 길막만 미리 정리했어도 지연전술이 가능했을거같단 아쉬움이 느껴지요..
뫄... 오미재에 병력이 있었다해도 7사단의 방어선 붕괴때문에 오미재가 차단되는건 시간문제였을거임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