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년 임술민란은 처음에 조정이 상황 판단 못하고
주동자들 잡아다 처형하자
봉기가 삼남 지방으로 퍼져서
제압 능력을 상실하자..
농민들 요구 어느정도 들어주고
때마침 국왕인 철종도 승하하면서 조정입장에선
불행중 다행으로 민란도 흐지부지됨
30년뒤에 비슷하게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이
북상하여 한양이 위험해쳐하자 조정은 청나라군을 끌어들여
청일전쟁의 단초를 제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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