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 1-2-03〕 『고려사』 권 1 태조 총서

“ ‘삼수 중(三水中) 사유(四維) 아래에 옥황상제가 아들을 진마(辰馬)에 내리셨다.’라고 함은 진한(辰韓)과 마한(馬韓)이다.

〔사료 1-2-04〕 『고려사』 권 92 홍유 열전

“삼한(三韓)이 분열하여 도둑 떼[群盜]가 다투어 일어나니 지금 왕 궁예가 용기를 떨치고 크게 호령하여 드디어 도적들[草寇]을 무찌르고 한반도[遼左]의 태반을 가지고 나라를 세워 도읍을 정한 지 벌써 20여 년이 넘었습니다.


아래 어떤 군붕이가 자꾸 50년대 체제경쟁으로'동무'→'친구' 로 바뀐것처럼 조선→한국으로 명칭 빠꿨다는데 한국이란 명칭이 하늘에서 떨어진게 아니다.신라말부터 한반도인들은 스스로를 삼한이라 의식했으며 이는 왕건의 삼한일통(三韓一統)으로 공식역사서인 고려사에 기록되었다. 즉 조선건국전 신라말 고려초 조상들은 스스로를 삼한인이라고 의식했다.


1910년 발행한 한국은행 1원권

삼한인 의식은 뿌리가 깊어 조선 500년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아 1897년 고종의 제국선포시 국호가 대한제국(大韓帝國)이 되었다. 대한제국시절 현재 대한민국을 한국으로 부르듯 대한제국을 한국으로 약칭해 1909년 한국은행을 설립했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합방된 뒤 1919년 성립된 상해임시정부의 공식 국호도 조선민국이 아니라 대한민국(大韓民國)이고 안중근 의사가 1910년 단지 손도장에 본인이 쓴 글에는 대조선인이 아니라 대한국인이라 써있다.



안중근 의사가 태극기에 혈서로 쓴 대한독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