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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친구(였던것)이지만...


아무튼 그 친구를 처음 만난건 고등학교 1학년때였다. 그때까지는 붙임성은 그렇게 좋은건 아니였어도 애가 나름 잘생기기도 했고 피아노도 잘 치고 귀엽고 그래서 적당히 교우관계가 좋았다. 운동도 잘 해서 인기도 좋았다. 게다가 우리학교는 이름만 공학이지 남녀분반에 층 분리를 시켰기 때문에 그냥 이름만 공학인 남고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친해지는데 시간은 더 짧았다.


그런데 2학기가 되고서였나... 애가 일본 유학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나한테 일본가고싶다는 얘기를 자주 해서 그냥 그런줄 알았다. 일본가서 열심히하라고. 한국 안맞으면 갈수도 있는거지 이런 생각 했고 그렇게 그 친구에게 얘기해줬다.


근데 이 새끼가 그때 기준으로 꼭지가 돌았다. 평소에 진로 문제로 부모랑 사이가 많이 안좋아보였다. 일본 유학 결심 전까지 자기는 피아니스트를 할거라고 했으나, 일본 유학은 그냥 취업이 잘 된다는 과로 갔다. 아무튼 평소에도 부모와 사이가 안 좋아 보였다. 부모는 항상 맡아들이 일관성없는 장래희망(수개월에 한번씩 바뀌는)에 회의감이 든 듯 했다. 그리고 맏아들은 그런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고 부모에 반발감이 심해진 듯 했다.


그때부터 이 친구가 일본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애니를 보고 일본어 공부만 했다. 학교에선 잤다. 다른 친구들과 교류하는것도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매일 살을 부대끼며 사는 학교 특성상 이렇게 하기 시작하면 교우관계는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어느새 그 친구는 점점 아이들 사이에서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전혀 그런것에 개의치 않았다. 열심히 일본어 공부를 했고, 한국에 대한 반발심만 계속 키워나갔다. 결국은 그 친구에 대해 안좋은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하던 짓이 짓거리였기 때문에 소문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이건 고등학교 2학년때 일인데, 수행평가 종이를 받고 거기 답지에다가 문제를 전부 일본어로 번역해놨다더라. 그런 짓을 하는데 아니땐 굴뚝에 연기가 나랴.


일본인과 펜팔을 시작했고 펜팔여친도 만든듯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한국인들과의 관계는 최악으로 떨어졌다. 이제 대놓고 가끔 연락하는 친구들에게 이상한 일뽕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나마 남아있던 친구들도 거의 다 떨어져 나갔다.


결국 일본 대학교에 그 친구는 진학했고, 다시는 연락을 들을 수 없었다. EJU를 거치지 않고 학원과 연계해서 가는 학교에 간 듯 했는데, 우리나라처럼 특성화 학과가 있는지 학과를 보고 갔다고 했다. 학교가 어디인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큐슈에 있다고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다. 나는 그냥 한국 아이들처럼 공부했고, 한국 아이들처럼 적당히 이름 있는 서울 소재 모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면서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은 서서히 지워졌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굉장히 값진 경험을 옆에서 지켜봤다고 느낀다. 그 친구가 역갤을 하는지 근갤을 하는지는 딱히 관심은 없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건 그때 그가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들 중 하나가 그의 진의를 빨리 알고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잡아줬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다. 젊은 시절의 꿈을 알아주지 못한 부모에 대한 원망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친구들에 대한 원망이 결국 응어리져 한국에 대한 원망과 일본에 대한 동경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군사 이야기)K1 전차의 초도생산분은 미국에서 나온 복합장갑인 SEP를 달고 생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