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명은 “거리에서 민간의 부녀들이 모두 수레를 탈 수 있게 허용하면 저절로 온나라에 수레가 성행할 것”이라고 당시 영조에게 제안했다.
조현명의 이 같은 주장은 당시 지배 관료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 신분제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현명 사후인 1757년 당시 좌승지였던 원인손은 “이미 귀천의 구별이 있는데 감히 가벼이 제도를 범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반대론을 설파했다. 영조도 “태평거가 있었다면 장보는 여인들이 늘 타게 됐을 것”이라며 이에 동조했다.(승정원일기. 영조 33년 12월 17일 원본1151책/탈초본64책)

환경도 환경이지만 걍 의식이 못따라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