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국공내전기 국민당군의 편제를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게 심각한 포병 부족입니다.
중일전쟁이 발발할 당시 장개석 직계의 42개 보병 사단 중에서 편제에 포병대대를 갖춘건 16개 사단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사단은 포병중대를 가졌거나 포병이 아예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포병대대 조차 75~76mm급 산포를 장비했습니다. 독일에서 105mm leFH 18이 수입되긴 했는데 이것들은 보통 상급사령부의 독립 포병예하에 소속됐습니다. 게다가 중일전쟁 초기 상해~남경 방어 전역에서 중앙정부 직계 사단들이 큰 피해를 입으면서 얼마 되지 않는 야포도 대량으로 상실합니다. 항일전쟁시기 중화민국 정부의 군사장비 조달을 다룬 章慕榮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군은 1937~38년 전역에서 총 660문의 각종 야포(산포 및 곡사포)를 잃었습니다. 게다가 일본군이 중국의 해안 지역을 신속히 장악해서 외국을 통해 보충된 야포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1938년 12월까지 보충된 외국산 야포는 독일제 leFH 18이 36문, 소련제 76mm 야포 160문(주로 M1902/30), 영국제 4.5인치 곡사포(소련군의 비축물자) 80문 정도였습니다. 그 밖에는 중국 국내에서 생산한 한양 조병창과 선양 조병창의 75~77mm 산포가 있었는데 이것들은 대부분 1차대전 이전의 구식 설계라 일본군의 포병에 대응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국민당군 직계가 아닌 군벌군대의 포병은 상태가 더 나빴는데 중일전쟁이 임박하기 전 까지는 중앙정부의 견제 때문에 외국산 야포를 도입하는데 애로가 많았습니다. 일본이 침략한 뒤에는 중앙정부의 통제가 좀 완화되긴 했다지만 이때가 되면 일본의 봉쇄 때문에 외국 무기 도입에 애로사항이 꽃피게 되죠. 결국 1938년에 중국 정부는 사단편제에서 포병대대를 폐지하고 남은 포병을 군직할로 개편합니다. 이게 그 악명높은(?) 민국27년형 편제죠.
일단 편제상으로 나마 사단포병대대가 부활한건 미국의 군사원조가 시행된 이후입니다. 미국이 참전한 뒤로는 미국을 통해 75mm M1A1 산포를 도입할 수 있었지만 중국 육군의 규모에 비하면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역시 章慕榮의 논문을 보면 1945년 4월까지 M1A1 산포 990문이 원조되었고 105mm 곡사포 M2A1은 274문이 원조된 걸로 나옵니다. 전자는 사단포병대대와 독립포병연대에 배치되었고 후자는 중포병연대에 주로 배치되었다고 합니다. 중일전쟁말기 국민당군의 반격계획을 다룬 蘇聖雄의 논문 抗戰末期國軍的反攻을 보면 미국의 원조를 받아 편성되었던 알파 계획 야전군의 편제가 있는데 이 계획에 따르면 12개군 36개 사단을 편성하고 1개 군에 75mm 산포 3개 대대, 105mm 곡사포 1개 대대를 두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즉 이론상 최고로 잘 편성된 중국군의 1개 군단이 미군의 1개 보병사단보다 뒤떨어지는 화력을 가진 것이죠. 이 알파계획 사단 편제를 조금 다듬은게 민국34년형 사단 편제인데 기본적으로 동일한 편제로서 사단 포병은 75mm 산포 1개대대입니다. 결국 화력지원의 상당부분을 독립포병부대에 의존해야 했는데 독립포병부대도 당시 열강의 기준과 비교하면 충분치 못했습니다. 중공에서 나온 책이긴 합니다만, 曹剑浪의 国民党军简史 하권(구판입니다. 신판은 상중하 3권 구성이죠.)에 국공내전기 국민당정부군의 독립포병 전투서열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국공내전이 재개될 당시 국민당정부군이 집단군급(행영 및 전구)에서 운용한 독립 포병부대는 포병연대 27개(보통 3개 대대에 총 36문 편제), 중포병연대 5개인데 이중 중포병연대 5개에 미국이 원조한 105mm 곡사포와 155mm 곡사포가 집중되었습니다. 나머지 독립포병연대 27개는 75~77mm급 야포가 주력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사단단위 포병의 규모가 작거나 아예 없다 보니 국공내전 당시 사단 단위 작전에서는 60~82mm 급 박격포의 역할이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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