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모에서 미사일까지〈2>
국산 무기개발 비화KT-1 웅비(1)
1991년 12월 12일 `우리의 항공기' 마침내 창공에 오르다
흐리고 바람 많았던 어제 하루는 참으로 지루했다. 이른 아침 하늘을 보면서 `하루순연'은 예상했던 바였다.
그 말에 발끝 손끝에서부터 느껴지던 긴장감은 일순 풀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신 초조함이 곁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그렇기는 해도 어떤 징조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오후 3시가 돼서야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오랜시간 가슴에 담아두었던 심경을 여기저기서 토로하고는 했다. 식사시간이 그렇게 엄숙하고 숙연할 수 있을까.
마침내 `1991년 12월 12일'이 밝아왔다. 공군3훈련비행단의 가리울 곳 없는 허허벌판 비행장.
활주로를 훑고 온 찬바람이 한 차례 얼굴을 부딪고 지나갔다. 차가웠다. 기온이 밤새 더 떨어진 것이었다.
몸이 움츠러들 만큼 매우 쌀쌀했다. 다행히도 하늘은 맑고 바람은 적었다. 서로가 비행에는 참으로 좋은 날씨라며 미소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오가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초도비행, 최초의 비행, 우리 손으로 만든 항공기, 그 첫 비행. 그렇다. 이날 12월 12일은 국방과학 연구소가 연구개발해온 우리 항공기, 대한민국(K) 공군의 훈련(T) 시험제작기(X), KTX-01호기가 처음으로 대지를 박차고 하늘로 오를, 그런 날이었다.
이 사업을 처음 시작할 당시부터 오늘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정된 것. 그럼에도 `처음'이라는 것은 언제나처럼 이날도 팽팽한 긴장감과 두려움 속으로 이끌었다.
이수용 연구원은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은 채 비행을 기다리는 KTX-01호기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오늘의 01호기가 있기까지 사업책임을 맡았던 강위훈 박사, 항공기체계실장 안동명 박사, 그리고 이재명 박사, 한영명 박사 등과 함께 갖은 정성을 기울여온 많은 사람 중 한 명.
1983년 그때 누가 항공기를 만들겠다고 꿈꾸기라도 했을까.
당시 공군으로부터 개발 요구가 없었음에도 장차 우리 손으로 만든 항공기가 필요하다며 기초조사를 시작하고, 소요기술을 분석하고, 또 이 01호기를 설계한 이가 바로 그였던 것이다.
그는 01호기가 새 각시의 자태처럼 참 곱다고 생각했다. 또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 같다고도 느꼈다. 한편으로는 `푸드득' 프로펠러를 힘차게 돌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이 보였다.
"취재 중 그때 01호기가 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습니까?" 라는 무식(?)하고 용감한 질문에 호탕한 웃음 으로 대답을 대신했던 이수용 연구원.
비행단의 야전정비대대 앞, 200여 평 부지에 마련된 국과연 임시사무실에는 역사적인 01호기의 첫 비행을 지켜보기 위해 국과연 김학옥 소장(예비역 중장)을 비롯해 공군3훈련비행단장, 그리고 국과연과 국방부, 공군, 방산업체 관계자, 기술협력차 체류 중이던 외국 전문가 등 100명 이상이 자리했다.
사업경과 보고와 시스템별 담당연구원들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주된 브리핑은 01호기와 함께 이날의 주인공이 된 이진호 소령(43․현 중령)이 맡았다.
개발중인 항공기의 시험비행은 위험도가 높고, 전문지식을 갖춘 시험비행조종사를 필요로 하는 특수분야. 공군에서 선발된 그는 영국 유학을 통해 시험비행조종 자격을 획득했다.
01호기의 조립을 마친 후 실시한 지상주행테스트 결과가 아니더라도,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는 브리핑을 마치면서 인사말을 통해 오히려 국과연 연구진을 위로했다.
"(국과연 연구원)여러분들께서는 그동안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이제 그 배턴을 제게 넘기시고 뒤에서 그간의 노고를 스스로 음미하면서 (오늘의 비행을)즐기십시오. 제가 그 노고를 위로해 드리겠습니다. KTX-1 파이팅."
철모에서 미사일까지〈3〉
국산 무기개발 비화 KT-1 웅비(2)
이진호 소령은 KTX-01호기 전방조종석에 앉았다. 이미 눈감고도 조종석의 모든 장치를 작동할 만큼 익숙한 자리.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오늘 자신을 주목하는 이들은 단지 관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만은 아니 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현역으로 근무하면서 우리 손으로 만든 항공기를 조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조종사들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우리 항공기를 타고 첫비행을 하는 `행운'의 조종간이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이 조종석에 앉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1년여의 힘든 유학생활도 그러했지만 당시 KT-1 개발사업을 위해서, 미국의 시험비행조종사 세계에서는 `살아 있는 예거'라고 칭송받는 베테랑 조종사 숀 로버트가 이곳에 와 있었던 것이다.
숀은 01호기가 최종 조립되기까지 연구개발진에게 금쪽 같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그에게 많은 신뢰를 보였고, 그 때문인지 초도 비행일이 다가오면서 그에게 시험비행을 맡기자는 소리가 높아졌다.
어림없는 소리. 연구개발진은 당연히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한영명(50․현 고정익항공기 체계부장)박사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 목소리에 여러 연구원들이 자리를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모임'이 되었다. 이른바 `이초추' 즉 `이진호 소령 초도비행 추진위원회'였다. `비공인'일 수밖에 없는 이초추의 위원장은 한박사. 우리가 만든 항공기, 당연히 우리가 수행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요.
이윽고 10시 10분. 01호기는 활주로 저편에서 프로펠러로 멋진 프롭디스크를 그리며 튀어오를듯 서 있었다. 이소령은 관제탑으로부터 교신이 떨어지자마자 활주로를 달려 나갔다. 100m, 200m, 300m…. 01호기는 마침내 대지를 박차고 푸른창공으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함성, 환호…. 그러나 아주 잠시였다. 모두가 벅찬 가슴을 억누르며 공중의 비행상황에 또다시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이소령 역시 왼손으로 비행상태 체크리스트를 표시해 나갔다. 01호기는 아직 자동계측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일일이 손으로 직접 체크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40여 분. 활주로 상공으로 01호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항공기는 착륙단계가 가장 위험하기 때문. 그러나 그것 역시 기우에 불과했다. 01호기는 너무도 사뿐히 착륙했다. 비로소 이 역사적 순간에 모두가 환호성을 올렸다.
그때 그 기분은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어요. 너무나 감격스러워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으니까요. 지금도 이렇게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이수용 팀장)
이 기쁨 또한 오래 누릴 수 없었다. 이소령과 연구진은 브리핑실로 들어가 40여 분 동안의 모든 비행상황을 점검해야 했다. 끼니도 잊은 채 계속된 질의응답, 현장분석은 무려 4시간이 지속됐다. 모든 것이 잘 가동됐다는 잠정적인 결론이 내려진 오후 3시가 돼서야 식당에 모두 자리를 함께했다.
저마다 `해냈다'는 자부심이 한참 고조될 무렵, 한편에서 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작동되지 않기를 아주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뜻일까. 그는 비상시 조종사의 안전탈출을 위해 장착된 `사출좌석'을 담당한 임철호 연구원이었다.
물론 극소수의 누구들처럼 01호기가 100% 완벽한 시험비행을 수행한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2인승인 01호기에는 이진호 소령만이 전방석에 탑승했고, 이륙 후에도 착륙 장치를 그대로 유지한 채 비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초도비행이란 점을 감안, 항공기의 안정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무게중심을 전방으로 유지하고자 한 의도였으며, 착륙장치 또한 안전측면을 최대한 고려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의도가 와전되어 01호기는 후방 조종석 탑승이 불가한 항공기라든가, 착륙장치를 올릴 수 없는 항공기라는 등의 웃지못할 이야기가 들려 왔다. 이해부족에서 온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1991년 12월 12일, KTX-01호기는 그렇게 날아올랐다. 우리 민족 5000년 역사에서 누가 이렇게 하늘을 날 수 있었으며, 누가 이렇게 날아오르게 할 수 있었을까. 사실 항공기 개발에 필요한 기반 시설이 전무하다시피한 상태에서 출발,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어쩌면 숀 로버트의 표현처럼 `미라클(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강위훈 박사(현 중국 옌볜대학교수), 체계실장 안동만 박사(53․현 3체계본부장)를 비롯한 국과연 연구진은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고 트랙의 스타트라인에 들어서고 있었다.
KT-1 밖에 못 찾았는데 이따 찾아보고 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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