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 단체기합은 선임하사관들이 주관했다. 청소하기, 부동자세로 서 있기, 완전무장하고 뛰어가며 군가부르기, 외박금지 등이 있었지만 때로 개울의 얼음을 깨고 찬물에 들어가 목욕하기도 포함됐다. 그러나 분명히 밝힐 것은 가혹하게 굶기거나 치명적인 구타는 없었다는 점이다.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기합이 있을 대는 반드시 예고가 있었다. 구타 등은 개인 기합에서 많이 이루어졌는데 주로 선임병들이 실시한다. 그렇더라도 병사에게 미리 예고해놓고 기합을 준다.

  "귀관(병사들에게도 대부분 귀관으로 불렀다)은 청소 부실로 엎드려뻗쳐를 스무 번 실시한다. 알겠나! 실시!"

  "귀관은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빳다(배트) 열 대다. 엎드리고 손을 올려라. 개시!"

  "귀관은 총검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따귀 석 대다. 입을 앙다문다. 딱!"

  이처럼 미리 말해놓고 다시금 기합받는 이유를 장황히 설명한다. 이 사이 병사는 기합받을 준비태세를 갖추게 된다. 입을 앙다물고 있을 때 주먹이 날아오는데 몇 대 맞아도 턱이 나가거나 이가 빠져나갈 이유가 없다.

   이런 기합은 일본 군대에서도 없는 우리 고병(古兵)들의 창작품이라고 한다. 일본군의 기합은 느닷없이 발길질이 들어오고, 감정 섞인 주먹뺨이 날아오는 상당히 악의적이고 야만적인 것인데 국방경비대 시절의 기합은 한마디로 멋이 있었다. 준비된 기합과 약속대로 체벌하고 뒤끝없이 마무리 짓는 기합은 광복 조국의 군대만이 갖는 동족애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고병들의 창작품이라고 하는 이런 기합도 어느 의미에서 골육지정을 갖게 했다.

  예고도 없이 불쑥 주먹이 날아오거 구둣발이 날아와 치명상을 입히는 기합은 교육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가. 무엇보다 병사의 신체에 결정적 위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기합은 금해야 한다.'  ...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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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경비대에 병사로 입대하여 소장 계급장을 달고 전역한 고 최갑석 장군 회고록 중.

  국방경비대 시절의 기합 및 사적제재 풍습에 대한 이야기인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선에서 보기엔 뭔가 좀 아닌거같은 이야기들이 많지만 당사자들은 당사자들 나름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제재의 선을 지켰다고 자랑하듯 말하는것이 기묘한 느낌을 준다.

  뭔가... 국민들 절대다수의 삶의 질이 농경사회에서 정체되어 있고, 민주주의나 시민의식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런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맞는 나름의 합리적인 룰이 있었다고 해석해야하나? 뭐 그런 생각도 들고... 아무튼 최갑석 장군 회고록을 읽어볼때마다 눈에 띄는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