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모에서 미사일까지4

국산 무기개발 비화 KT-1 (3)






한 독자가 전화로 문의해왔다. 무엇이 최초의 국산 항공기인가에 대한 답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KTX-1 시제기가 공개되었을 때 한 항공학자가 `진짜 비행기'라며 탄성을 터뜨린 의미를 생각해볼 만하다. `KT-1 웅비호'가 왜 최초의 국산 항공기인가에 대한 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 신라시대 때 김유신 장군이 연을 날려 민심의 동요를 막은 것이 하늘을 군사적정치적으로 이용한 `최초의 일'이라든가, 조선시대 때 `비차(飛車)'를 제작해 하늘을 난 것이 라이트형제보다 300여년 빨랐다는 사실(史實) 등은 일단 접어두자.




우리 군사사(軍事史)를 살펴보면 의외로 일찍부터 항공전력에 관심을 두고 항공기를 개발하려는 의지를 보여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군은 19517월 해군기술연구소를 통해 `NK-1 통해호(統海號)'를 제작했다. 파손된 T-6기를 수상기로 개조한 것으로, 해군은 기술연구소를 해체하기까지 수상 항공기 5대를 제작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공군에서는 우리나라 `처음으로' 2인승 다목적 경항공기 `부활호'를 제작해냈다. 195211월 공군 기술학교 교관들이 교육훈련용으로 설계에 착수한 이 항공기는 85마력짜리 미국산 엔진(O-190 -1)을 장착했으며 길이, , 높이가 각각 6.6, 12.7, 2.07였다.


1953년 시험 비행에 성공, 19544월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부활'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부활호는 당시 미 군사고문단이 시험평가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져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훗날 세스나 항공사에서 제작한 스카이마스터기가 부활호의 옆모습과 닮은 것으로 보아 개발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3대를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남아 있는 실물은 없다. 다만 1998년 공군81항공정비창에서 실물 크기의 모형을 제작, 공군사관학교에 전시하고 있다.


공군은 또한 19632인승 글라이더를 완성한 데 이어 19684M -73 활공기 개발에 착수, 196910월부터 시험비행을 가진 바 있다. 1970년대 들어 공군81창은 국방과학연구소의 사업관리 아래 미국 Pazmany사가 설계한 PL-2기 제작에 들어가 1971729일 시제기 1대를 선보였다. `새매호'로 이름 붙여진 이 항공기는 19735월까지 총 4대가 생산되어 19769월까지 시험평가를 거친 뒤 공군25전대에 실전배치, 1995년 말까지 운용되었다.


공군 전력을 강화하고 자주적인 항공전력 기반을 구축하고자 하는 본격적인 노력은 1970년대 F-5 전투기와 500MD헬리콥터를 국내에서 면허조립생산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록 기술이전 효과는 없었지만 정비력을 향상하고 척박한 국내 항공기 조립생산의 기반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다.


F-5제공호의 면허생산이 완료단계에 들어가면서 생산투자시설을 활용하기 위한 방안이 검토될 무렵인 1970년대 말부터 국과연은 공군의 O-2관측기보다 성능이 한 단계 위인 OV-10기급 정찰 통제기와 육군특전사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30인승급 경수송기의 개발 가능성을 검토했으나 소요창출이 무산됐다. 국내 항공기 산업생산 기술과 기반이 워낙 척박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것은 `솔개'라는 기만용 무인항공기다. 19779월 무인항공기사업을 시작, 78년 말부터 본격화한 국과연은 영국의 기술지도를 받아 80년 말 세부설계를 완성 하고, 81년에 최초 시험비행을 가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군 소요가 확정되지 않아 198440에 달하는 기본성능 시험비행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후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통해호부활호부터 이어진 이같은 노력은 무기 국산화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훗날 KT-1 웅비호가 탄생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다시 `진짜 비행기' 이야기로 돌아가자. 여기서 진짜란 항공기 설계를 비롯해 시험평가 등 모든 개발과정이 개발 주체 스스로의 힘으로 진행됐는가 하는 점이다.


즉 외국()에 기술적으로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항공기가 어떤 운용상의 문제에 봉착하거나 또는 기능향상을 꾀할 때 연구개발진이 이를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 극복할 수 있느냐에서 판가름난다. 부품면에서도 100% 국산일 필요는 없지만, 어느 부품이라도 연구개발진이 의도하는 대로 적시에, 제값으로 항공기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KT-1 웅비호는 당연히 설계부터 실전배치까지 국과연을 비롯한 우리 연구기술진에 의해 수행됨 으로써 `진짜'의 조건을 충족한다. 외국의 기술지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과연의 개발능력 속으로 모두 소화됐기 때문에 기술적 종속이 없다. 후속사업인 저속통제기(XKO-1)사업에서 보듯 기능 향상 또는 추가에서도 전혀 문제가 발생되지 않고 오히려 역량을 향상시켜 나가고 있다.


KT-1 웅비호는 기술력 점검을 위해 일단 `날려본' 수준의 항공기가 아니다. 뚜렷한 개발 목표와 의지로써 척박한 항공산업환경과 기술적 문제를 극복하고 개발, 실전배치까지 한 국내 최초의 항공기인 것이다. 조선일보는 19988`건국 후 민간 및 군수 과학기술 업적 50가지'KT-1 웅비호를 올려놓았다.







비차 이야기는 알아서 거르자;;



본문에서도 언급된 첫짤의 비행기 "부활호"는 15년 전 어느 공업고교 창고에서 나왔음


글쓴이는 스펀지 본방에서 봤었는데.. 당시 제대로 복원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였는데 중고시장을 싸그리 뒤졌음에도 엔진을 못 구해서 결국 국내 모 분이 기증해준 유사품을 탑재하여 복원 완료


현재 국립과천과학관에 비행 가능한 상태로 전시되어있으니 근처 살거나 한 번쯤 가볼 기회 생긴 군붕이들은 가서 구경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