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월 초 소련 해군 총사령관 쿠즈네초프(Н. Г. Кузницов)는 자국 병사들이 훈련받을 장소로 미국 알래스카의 알류산 열도의 섬 중 소련에 근접하여 친숙한 더치 하버(Dutch Harbor)를 제안하였다.
미 해군 총사령관 겸 작전사령관인 킹(Ernest J. King) 제독은 북태평양 사령관 플레처(F. J. Fletcher)에게 수송 및 훈련에 적합한 장소를 물색하라 지시한 후 콜드 베이(Cold Bay)가 더치 하버(Dutch Harber)나 또 다른 후보지 코디악(Kodiak)보다 좋은 입지조건임을 확인하였다. 1945년 2월 8일 얄타회담에 참석한 미 해군 총사령관 킹(King) 제독은 소련측에 더치 하버보다 콜드 베이가 더 적합한 장소라 제시하며 자세한 입지조건과 지도상 위치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에 소련측은 동의하였다.
콜드 베이는 지난 1944년 12월까지 미 육군이 머물던 곳이어서 어느 정도 군용 기반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따라서 2,500여 명이란 많은 병사를 훈련시키고 250척의 선박과 항공기를 수용할 장소로도 적합하였다. 게다가 이곳엔 민간 주민이 거의 살지 않아 보안에도 유리하였다. 게다가 콜드 베이는 거센 파도를 막을 수 있는 해안 시설과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어 훈련에도 적합했다.
얄타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미 해군 총사령관 킹 제독은 1945년 2월 중순 정식으로 소련에 대한 군사협력사업에 착수하였다. 그는 이 협력사업 프로그램을 ‘훌라 프로젝트(Project Hula)’라 명명하고 소련의 대일전 참전에 대비한 소련 병사의 미군 함정 및 군용장비 적응훈련 및 수송지원 프로그램을 본격 착수하였다. 우선적으로 킹 제독은 그동안 폐쇄되었던 미 육군 주둔시설인 콜드 베이의 랜들 요새(Fort Randall)를 복원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할 책임장교와 참모진을 파견하였다. 이에 맞춰 소련 측 훈련병이 속속 도착하여 4월 1일부터 한 달여 간격으로 훈련을 받았다.
미국과 소련은 훈련받은 병사와 선박을 소련 측에 인계하는 방식에서도 합의점을 찾아 나갔다. 처음에는 소련 측이 제안한 유럽에서 북미로 되돌아가는 화물상선을 이용해 소비에트 군사요원을 미국 동부해안에서 대륙을 지나 서부해안의 콜드 베이(Cold Bay)로 이동하는 방법, 혹은 미국 측이 선박 3척을 보내 수송하는 방법 등을 논의하였다. 여러 대안이 논의되다가 마침내 미소 양측은 무기대여법에 따라 군수물자가 제공되는 경로, 즉 미국 서부 해안에서 소련 극동으로 수송하고 되돌아가는 소련측 화물상선의 이동경로를 이용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미 해군측은 훌라 프로젝트를 담당할 특별부대로 해군 제3294 부대(Naval Detachment No. 3294)를 창설하였다. 1945년 3월 7일 부대장으로 맥스웰(William S. Maxwell)이 임명되었다. 그는 부임지로 떠나기 전 워싱턴 소재 미해군 선박국(U.S. Navy of Ships)에 러시아어 통역원을 증원하고 이송될 모든 선박에 필요한 장비와 설비를 마칠 것이며 모든 장비가 효용성을 갖춘 후 콜드 베이를 떠날 수 있도록 보증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1945년 3월 19일 콜드 베이에 도착한 맥스웰 부대장은 병력을 점검하고 랜들 요새의 부족한 부대시설을 확충해 나갔다. 주거지, 학습실, 영화관, 라디오실, 소프트볼 운동장, 라디오와 레이더실습장 등이 조성되었고 공학(engineering), 사격, 소해, 피해응급법(damage control), 상륙정 조정 등 다양한 교육을 위한 교구재를 마련하였다. 맥스웰의 지휘 아래 미해군과 해안경비대 요원 694명, 해병 47명 그리고 미육군 605명이 지시에 따라 움직였고, 1,500명의 요원이 육군에서 해군으로 대체되었다.
1945년 3월 23일 소비에트 병사들이 소련 화물상선을 타고 처음으로 입항하였다. 제1진 소련군 훈련요원들은 책임사령관과 참모장교 23명 그리고 참모별 부관 각각 3명씩 총 163명의 장교와 병사 그리고 통역원들로 구성되었다. 제1진 훈련요원들은 1945년 3월 말에서 4월 초까지 5척의 화물상선에 각각 약 500명씩 나눠 타고 콜드 베이에 도착하였다. 5척의 화물상선은 4월 10일에서 14일 사이 5일 동안 매일 1척씩 도착해 총 2,358명을 이송하였다. 소련 측 훈련요원들은 별도의 질문없이 미국 측 교관의 지도 아래 훈련에 임했다.
제1진 소련 병사들은 1,350명의 미해군 요원과 함께 제16 소해정사단(the 16th Minesweeper Division)과 제2 구잠정사단(the 2nd Submarine Chaser Division)으로 편성되었다. 4월 11일 소련 해군소장 포포프(Б. Д. Попов)가 증기선 세바스토폴을 끌고 와 콜드 베이에서 훈련받는 소련군 부대를 지휘하였다. 이 부대는 소련 해군선단 소속의 제5 독립부대(the 5th Independent Detachment of Soviet
Navy Ships)로 편성되었다.
1945년 4월 16일 마침내 훈련이 시작되었다. 소비에트 군사요원과 장교 220명과 1,895명의 병사들은 선박별 임무와 선박 내 개별 임무를 부여받았다. 소비에트 훈련 요원들은 매우 진지하게 훈련에 임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언어 장벽이 있어 전문 기술 용어에 대한 이해와 전달이 싶지 않았다. 게다가 라디오, 레이더, 소나, 선박추진동력 등 신형 장비에 대한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한편 미국측이 준비한 장비에도 문제가 있었다. 훌라 프로젝트 담당부대장인 맥스웰이 미해군 선박국에 요청했던 장비와 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학습이 지연되었다. 게다가 보조소해정(Auxiliary Motor Minesweeper, YMS)과 구잠정의 목재부분이 거친 바다에 파손되어 200km 떨어진 더치 하버까지 이동한 후 수리해야 했으므로 훈련 공백이 발생하는 등 불편함이 있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미군은 훈련시킨 소비에트 병사와 소해정, 호위함, 구잠정 등 다종의 함정들을 소련에 인계하였다. 제1진으로 훈련받은 소비에트 군사요원과 해병이 함정과 함께 귀국하였다. 5월 28일 소해정 3척, YMS 5척, 5월 30일 소해정 3척, 구잠정 6척 그리고 6월 7일 소해정 3척과 구잠정 7척이 이송되었다.
1945년 5월 7일 제2진으로 100명의 소비에트 요원과 장교 800명의 병사들이 들어와 2개 조로 나뉘어 훈련을 받았다. 이들은 30척의 대형 상륙정(LCI(L))을 타고 콜드 베이 해상에서 훈련에 임하였다. 해상훈련은 제1조가 15일간, 그리고 제2조가 9일간 훈련을 받았다. 제2조는 6월 11일 소해정 2척, LCI(L) 4척, 구잠정 6척과 함께 귀환하였는데, 함정 승무원들은 7월 말까지 추가 훈련을 받은 후 별도 귀국하였다.
한편 30척의 초계호위함(patrol frigates) 역시 훈련받은 병사들과 함께 귀국하였다. 이 호위함은 중무장한 타코마급(Tacoma)으로 규모가 크며, 값비싼 선박인데 프로젝트 훌라에 투입된 것이다.
소련 해군 제10 호위함사단 소속 소비에트 장병 572명이 1945년 6월 12일 소비에트 증기선 펠릭스 제르쥔스키(ФеликсДжерзинский)를 타고 콜드 베이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6월 15일에는 소비에트 장병 570명이 증기선 차이코프스키(Чайковский)를 타고 도착해 곧바로 훈련에 임했다. 함정 훈련을 위해 미해군은 알류산 열도의 우니마크(Unimark) 섬을 지나 열도 북단을 항해했다. 소해정이나 구잠정 등 소형 선박의 경우 아다크(Adak)나 애투(Attu)에 임시 정박하여 휴식을 취한 후 항해 훈련을 이어갔다.
이러한 방식으로 훌라 프로젝트는 교육 훈련된 병사 12,000명(장교 750명, 사병 11,250명)을 7월 31일까지 그리고 함정 149척 등 무기장비는 8월 25일까지 소련에 인계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이중 함정은 초계호위함(PF) 28척, 소해정(AM) 24척, 대형 상륙정(LCI(L)) 30척, 보조 소해정(YMS) 31척, 구잠정(SC) 32척 그리고 부공작장(floating workshops, YR) 4척 등으로 전력 증강에 긴요한 제원들이었다. 훌라프로젝트의 성과는 소련군이 대일전에 참전하면서 수행한 역할에서 알 수 있다. 훌라 프로젝트의 소련측 책임 부대장이었던 포포프는 미국측 부대장 맥스웰에게 훈련받은 상륙정이 쿠릴열도 점령 작전에 투입되었고, 또 다른 함정 역시 한반도 북부지역과 사할린 남부에서 대일전을 수행할 때 투입되었다고 전했다.
심헌용, 「제2차 세계대전기 소련의 대일전 참가를 둘러싼 미·소 군사협력- 무기대여법과 ‘훌라 프로젝트(Project Hula)’의 역할을 중심으로 -」『군사』제105호 (2017년 12월) pp.243-249.
소련의 대일전 참전에 대해 미국에서는 대일전 참전을 막으려는 시도와 동시에 대일전 참전을 도와주는 시도가 공존해던 셈입니다. 트루먼이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배제하려고 시도하면서 훌라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은 어째서 그런 거냐고 이완범 교수님께 여쭤보니, 훌라 프로젝트는 이미 소련과 미국 간 약속이었기 때문에 어길 수 없었다는군요.
전쟁 끝나고 다 반환했나요?
그건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