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참 웃기는 얘기기는 하다마는,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 미국 잠수함부대의 주요 컨셉이 뭐였는지를 잠깐 볼 필요가 있음.

앞서 내가 썼던 글에서 보다시피, 미국 잠수함부대는 런던 해군조약 22항에 의거해 직접적인 통상파괴작전에 치중하는 것보다도 함대에 대한 공격을 우선시하는 독트린으로 나아갔다고 설명했음.

특히나 이 군함에 대한 공격 독트린은, 1940년경 암호 해독반에 의해 일본군의 JN-25 암호가 노출되면서 더 부채질이 되게 됨.

이 JN-25 암호가 무엇이냐면, 일본군 군함의 동향에 대한 정보들이 있던 암호였는데 만약 이를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필히 만약에 있을 일본과의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이었음.

물론 실질적으로 보자면 문제가 있었음. 

비록 미 해군의 함대형 잠수함들은 적 함대를 추격할 수 있을만한 속력을 가진 것이 사실이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함대의 순항속력에만 대응되는 문제였고,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빠른 속력으로 기동하는 것이 보통이었기에 군함을 추격하는 것은 상당히 제한이 따랐음. 이 점을 제대로 고려하질 못 한 상태에서 탁상공론에 의한 집착만이 있었던 상황이었던데다...

앞서 말했듯이 상선에 대한 공격전술 관련으로는 이렇다 할 정도의 대책을 전혀 내놓질 못한 상황이었음.

두번째로, 미국 잠수함부대가 가장 중하게 여기던 것은 안전이었음.

문제는 이 안전제일주의가 너무 도가 지나쳤다는 점이 있었음.

그 예를 잠시 들여다 보자면,


1. 함대형 잠수함들의 최대 작전기간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 탬버급 잠수함 타토그(SS-199)를 통해 1940년에 직접 실험을 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랐었음.

장기간 작전시 얼마나 오랫동안 잠수함이 작전이 가능하겠느냐에 대한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일련의 안전제일주의적인 성향 때문에 태평양잠수함사령부에서 직접 시험을 해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해볼 생각을 안 했음.

여튼 시험결과 못해도 60일은 너끈히 버틴다는 점은 확실히 했는데...

2. 공격전술 면에서도 지극히 행정적이고 착오가 심한 관념을 전혀 버리지 못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일단 2차대전 개전 직전, 미국 잠수함부대가 투자를 하던 음탐 접촉만으로 공격을 수행하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를 들 수가 있음. 

A. 잠망경의 노출에 의한 시각피탐지 위험이 매우 큼. 특히나 잠망경심도에서 고속으로 항주 시, 잠망경통에 의해 발생하는 잔파(웨이크)가 심하게 남아 피탐지 위험이 크다.

B. 잠망경 심도에서 공격을 개시할 경우, 수면 아래로 잠수함의 선체가 육안으로 포착될 위험이 매우 큼.

C. 항공기 무섭다.

라는 이유들을 대충 댈 수 있음. 

이 공격전술은 당장 태평양전쟁 발발 시 여러가지 문제를 낳게 되었음. 

A. 음탐 접촉으로는 적의 방위와 스크류 회전수를 통한 속력 계산(이것은 어디까지나 적함의 속력별 스크류 회전수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함.)은 확인 가능하나 거리와 적함의 침로는 확인이 불가능에 가까움. 이에 따라 어뢰 발사는 순전히 함장의 어림짐작에 의해 이뤄질 수 밖에 없음.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2차대전 당시에도 표적운동분석(TMA)이론이 몇가지 정립된 상태였고 그 대표적인 것으로 1934 Rule과 1936 Rule을 들 수가 있겠음.(여담으로 이 두 TMA공식은 현재 잠수함에서도 절찬리에 계산 중인 공식으로서 잠수함 무장관제사의 머리통을 아직까지도 실시간으로 터트려주고, 심기 불편하신 함장님의 눈치밥을 먹게 해주고 계심.ㅋ)

B. 액티브 핑을 사용할 경우 거리측정이 가능하나 자함의 위치가 발각될 위험이 극히 높음. 그래서 패시브 소나만을 사용할 것이 권장되었음. 

C. 잠망경 심도보다 더 깊은 심도에서 어뢰를 발사할 경우, 수압 문제 때문에 어뢰를 발사하는 데에 필요한 고압 공기가 더 많이 필요하고 발사 후 수면상에 기포가 올라오는 현상이 더 극대화되는 경향이 있음. 

D. 어뢰 폭발음만으로는 표적이 제대로 명중해 손상을 입었거나 침몰 중이라는 것을 확정하기 어려움. 비록 이에 대응해 어뢰 항주시간 및 명중시간을 계산해내어 음탐 명중확인을 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이게 만약 조기폭발을 한 거라던가, 타이밍도 좋게 폭뢰터지는 소리를 착각하는 거라면?



함대형 잠수함들에게서 나온 문제들도 이럴진대, 구식 잠수함들(주로 S급)의 경우에는 스테디아식의 거리측정기는 고사하고 잠망경 렌즈에 거리측정용 눈금조차 없는 경우가 있어서 더 골치 아픈 문제가 있었음.


물론 구식 잠수함들의 경우 이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하기 위해서 최대한 적함이 이동 중인 침로에 대해 직각으로 어뢰를 발사하는 전술을 독자적으로 만들어내게 되었는데 평균적으로 목표물들은 항상 움직이고 있었고, 지그재그 기동만으로도 손쉽게 파훼되어버려 실질적으로 명중하는 것보다는 빗나가는게 더 많았음. 

이외에도 별별 갖가지 문제들이 발생했는데 전간기 당시에는 그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고 오히려 부분적으로는 퇴보하는 상황에까지 처하게 됨. 

단적으로, 아시아함대 잠수함사령관인 존 윌크스 대령의 경우는 필리핀의 캐비테 항에서 훈련을 실시할 때 종종 이해가 되지 않는 지시들을 하곤 했었고 이 지시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시대착오적인데다 당시 훈련에 참가했던 한 장교의 발언을 빌리자면 '좌향 좌! 앞으로 갓!' 수준의 아주 기본적인 제식훈련과도 같았다고 함.

또한 미 해군 잠수함부대는 기괴할 정도로 항공기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미 해군 잠수함부대에서는 자체적으로 항공기들에게 대응할 생각 따위 집어치우고 무조건 잠수부터 하라고 지시하는것이 보통이었음.



...뭐, 틀린 말은 아님. 

실제로도 전쟁 기간 동안 미국 잠수함들이 일본 항공기에 대응해 대공사격을 개시한 기록은 손에 꼽는데다가 성공 보장이 낮은 대응사격을 하다가 피해 입는 것보다는 빨리 잠수해서 숨는 것이 이득이었고 1943년경 U보트들이 대공화기 떡칠하고 대잠초계기를 상대로 맞장 뜨겠다고 덤볐다가 효율성과 잠수함 손실 문제, 대공사격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잠수함의 위치가 확정되는 등등의 문제로 인해 결국 포기하게 된 상황을 보면 말이지. 

비록 SD 대공경계 레이더를 장착하면서 어느정도 항공기에 대한 조기 포착을 해내 조기에 잠수해 피할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또 달랐음. SD레이더는 최대 탐지거리만 37km에 달하지만 탐지거리가 긴 대신 탐지 정확도가 상당히 떨어졌고 근본적으로 비지향성이라 방위각을 모르는데다가 레이더 디스플레이 역시도 문제가 있었음. 

SD레이더는 기존에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PPI 디스플레이가 아닌 오실로스코프 디스플레이를 사용하고 있었고, 오실로스코프 특유의 문제점 때문에 전장상황 파악의 어려움과 동시에 숙련된 전탐사가 아니라면 표적 탐지 및 확인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었던 문제가 있었음.(물론 이 시절 레이더의 대다수는 오실로스코프였긴 했고 좀 숙달되면 주파수에 따라 거리측정에 비교적 용이하다는 이유로 오실로스코프는 전쟁 끝날때까지 우려먹어졌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항공기에 대한 위협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심하게 과장된 부분이 있었음.

실제로 태평양은 대서양에 비해 투과도가 높은 편이라 수면 아래로 잠수함의 선체가 보이는 경우가 있었으나 이것은 대부분 심도가 낮거나, 해저 지질(산호초 및 상대적으로 매우 하얀 모래 등의 문제), 매우 평온한 해상 기상상태 한정이라는 것이 매우 컸고 실제로는 허구헌날 파도 잔잔하고 날씨 맑은 때만 있으리라는 법이 없고 역시 수심이 얕은 곳만 있으라는 법은 당연히 없었음. 

또한 상식적으로도, 그 넓은 태평양에서 항공기들이 잠수해 있는 잠수함을 수면 아래에 있는것을 발견할 확률 역시도 고려해 본다면 상당히 기우에 가까운 반응들이었음에 분명함. 

무엇보다도 이런 항공기에 대한 부담은 필히 주간 잠항과 야간 수상항해를 강요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되면 가끔가다가 정말 더러운 경우를 만나게 됨.

A. 주간 일과에 따라 잠항을 하다가 해상박명종 시간대가 되어서 부상을 하려던 찰나, 표적 접촉이 발생하게 되는 사례가 자주 일어났음.

배터리 방전률 및 대기환경은 나빠졌는데 배터리 재충전과 함내 대기 환기 및 개선을 할 여유도 없이 바로 전투배치가 이루어지게 되고 운 더럽게 근성 끝내주고 끈질긴 ASW 함정이라도 만나는 순간에는 졸지에 장시간 잠항을 하게 되고 이산화탄소 중독/산소부족과 배터리 방전이라는 삼중고를 경험하게 됨.

B. 잠항시에는 기본적으로 순항속력이 매우 느리기 때문에 전술속력이 매우 떨어짐. 이에 따라 표적 추적에 대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제 시간에 목표위치로 도달하지 못하거나 표적을 놓쳐 공격에 실패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됨.

중요한건 저거 전부 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점임.



잠항심도 관련으로도 지독할 정도로 안전제일주의를 고집한 통에, 미국 잠수함들은 시험잠항심도 이하로 잠항을 할 생각을 안 하게 되었음.

평균적으로 시험잠항심도는 200피트에서 250피트 가량이었는데, 그나마 태평양잠수함사령부의 경우에는 전쟁 개전 직전에 제한을 약간 풀어서 300피트에서 400피트까지의 잠항을 공식적으로 허가한 상태였으나 아시아잠수함사령부는 그딴것도 없었음.



잠망경의 육안피탐지 문제 역시도 마찬가지였는데... 

실전에서의 결론에 따르면, 아무리 잠수함 친숙화 및 견시 훈련을 한다 하더라도 잠망경 찾는건 정말 어렵다 라는 것임. 

그럴만도 한 것이, 정말 고속으로 항주중인 것이 아니면 잔파조차도 적은데다 특히나 공격잠망경은 잠망경 헤드 자체가 사람 얼굴보다도 작기 때문에 정말 지독할 정도로 눈에 안띄었음. 거기다 특이상황 아니라면 캐비테이션 발생하는데 미쳤다고 잠망경 심도에서 냅다 달리는 잠수함장들도 별로 없기도 하고.



일부 잠수함장들은 야간에 부상한 상태로 접근해 공격하는 것을 실행해 봤음. 

다만 워낙 위험도가 높은 공격전술이기에 장려되지 않았고, 야간 수상공격은 1942년 8월경, SJ 레이더가 잠수함들에게 탑재되기 이전에는 그저, 상대가 자신을 발견 못한 상태일 것이다 라는 가정 하에 걸어보는 도박인 셈이었음. 

여기서 또다른 문제가 생기는데, 미국 잠수함들의 위장도색이 또 문제가 됐음. 


2차대전 초반 미국 잠수함들은 함 전체를 검정색으로 칠한 Measure 9 위장도색을 칠해 놓았는데, 이 위장도색은 무월광 야간일 때에 특히나 큰 효과를 보았으나 주간에서는 일본군 입장에서 보자면 '뭐 시커먼게 여기로 접근중이다'라는 수준의 막장을 자랑했음.

그래서 야간 수상항해 및 주간 잠항이 더 권고되었었던 환경이었고.

여튼 1943년경에 나온 결론으로 다목적성을 고려한 Measure 32계열 위장도색이 잠수중일 때나 부상중일 때나 주야간을 막론하고 가장 효율이 좋다고 여겨졌고 실제로도 그러했음.(그렇다고 Measure 9 위장도색이 완전 퇴출당한건 아니었고 야간 수상공격을 특히나 좋아하는 함장들 입장도 있다보니 적잖은 잠수함들이 전쟁 끝날때까지도 시커먼 Measure 9 위장도색을 채택하고는 했으니.)





이렇게, 지독하게 안전 따지는 경향은 극히 정형적이고 형식적인 훈련 및 작전만을 하게 되는데에 그치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잠수함장들의 적극성에 큰 영향력을 미쳤음. 

초창기 잠수함장들은 서류 업무에만 매달리는 것이 보통이었고 보수적인 전술교범에만 매달렸음. 

그리고 태평양전쟁 개전 이후, 전쟁의 양상이 갑자기 변하자 이에 적응하기 힘들어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음. 저절로 잠수함장들은 소극적으로 변하기 일쑤였고 끝내 태평양전쟁 개전 이후로 1년간 40여명의 잠수함장들이 적극성 부족을 이유로 함장직에서 해임당했음. 

이 숫자는 당시 잠수함장 전체의 약 30%에 웃도는 수치로서 가장 큰 경질 이유는 초계 중에 아무런 전과를 세워 오지 못했다 라는 것이었음. 

첫 출격 이후 겨우겨우 3척만 가라앉혀 돌아온 비참한 전과를 본 전대장들은 분통을 터트리며 함장들을 비난했는데, 문제는 함장들의 역량 자체도 문제지만 전대장들은 극히 모순적이고 내로남불에 지 잣대만을 내세운 비난을 퍼부어댔음. 


아르고노트(SS-166)의 함장인 스티븐 G. 바체트 소령은 음탐접촉만을 이용해 야간에 선단에 접근했다는 이유로 거하게 욕을 얻어먹었음. 

애당초 지들이 하라고 했고 전쟁 전에는 지들 딴에는 공인된 전술 아니었던가? 거기에 당시 태평양잠수함사령관인 위더스 제독과 그의 참모들은 '야간이었으면 수상공격을 감행해야 했던것 아니냐'라는 의견까지 내놓았음.  

트리톤(SS-201)의 함장인 윌리스 A. 렌트 소령은 '무엇인가 보거나 듣기만 하면 무조건 잠항부터 하고 보았다'라는 이유로 욕을 존나게 얻어먹었음. 

이것 역시도 전쟁 전의 교범에 상당히 충실했던 것 아니었는지? 

것전(SS-211)의 함장인 엘튼 W. 그렌펠 소령의 경우는 '머리 위의 공포를 피하기 위해서 잠항 위주로 기동을 했기에 목표 해역에 일찍 도착하지 못했다' 라는 이유로 욕을 오질나게 먹었음. 

또한 화물선 1척에 1발을 초과하는 어뢰를 소모했다는 이유로도 비난받았는데, 거기에 플런저(SS-179)의 함장인 데이비드 화이트 소령 역시도 화물선 1척에 어뢰 1발을 초과하는 어뢰를 소모했다고 욕을 얻어먹고 말았음. 

쓰레셔(SS-200)의 함장인 윌리엄 L. 엔더슨 소령의 경우 '공격준비에 소모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는 이유로 또 욕을 얻어먹었음. 

사실 윗선들의 이런 비난은 어뢰 할당량을 제외하고 보면 대부분 맞는 말이었지만, 자기 책임 회피의 목적이 매우 강했기에 심히 양심없는 비난이었음에는 두말 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이런 일들은 안그래도 소극적인 잠수함장들의 기질을 바꾸기는커녕 상황을 일시적으로 악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음은 분명함.

 
이제 잠수함장 자신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기존 전술들과 마인드가 다 글러먹었다는건 알았는데, 사실상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던 상황이니 처음부터 다 뜯어고쳐야하는 상황에 그 속 썩는걸 어찌 다 설명하겠음.






거기에 첫 작전 당시 이런저런 해프닝들이 갑자기 터져나오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는 상당히 운도 지지리도 없었고, 참 시기도 절묘하게 악조건까지 터지는 사례가 발생했음.



돌핀(SS-169)은 이미 현역 잠수함으로서 활동하기 힘든 노후 함정이었고 최초 패트롤 당시 총 35곳에 달하는 고장이 발생해 패트롤 임무에 심각한 지장이 왔는데 함장인 고든 B. 레이너 소령은 함의 고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다 과로로 쓰러져 병상에 누워버렸고 결국 부장이 대리임무를 수행해 진주만에 복귀하게 되었음. 



타토그(SS-199)의 함장인 조셉 윌럼 2세 소령은 일본군 기뢰부설함에 어뢰를 총 3발을 발사했으나 잠망경의 시야가 자꾸 흐려지는 문제가 터져 결국 어뢰가 빗나가고 말았음. 



폼파노(SS-181)의 함장인 루이스 S. 팍스 소령은 고난의 초계를 겪었는데, 패트롤 중 무려 2회동안 아군의 오인공격을 겪어야 했고 끝내 오인공격으로 연료 밸러스트 탱크가 파손되어 길다란 디젤유 띄를 남기면서도 꾸역꾸역 패트롤을 수행 완료하고 복귀했음. 



씨 레이븐(SS-196)의 함장인 시어도어 C. 에일워드 함장은 이전부터 고혈압 증세를 보였는데, 끝끝내 패트롤 중에 현기증과 가슴 통증을 호소했고 부장이 대리 임무를 수행했으나 아무런 전과도 얻지 못하고 허접하게 복귀해야만 했음. 



윌리엄 E. 페럴 소령의 잠수함인 씨 드래곤(SS-194)은 1941년 12월 10일경 일본군의 폭격으로 손상을 입었고 급히 응급수리를 거쳐 바로 패트롤에 투입되었는데, 패트롤 중에 미처 화재가 발생했던 외부 선체의 도장을 하질 못해 검정색 페인트가 잠수와 부상을 반복하며 벗겨져나갔고, 결국 붉은색의 부식방지 프라이머 도장이 다 드러나버려 잠수함이 새빨개지고 말았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트롤은 지속됐고 급기야 이 꼬라지를 일본 측에서 몇번 보게되면서 씨 드래곤은 일시적으로 '정체불명의 붉은 잠수함'이라는 묘하게 간지나는 별명을 얻고 도쿄 로즈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위업을 기록하기도 했음. 물론 그 근본적 원인은 상당히 안습했음.

이미 캐비테 항에서 도망쳐나오다시피 하면서 항해에 필요한 물품조차도 제대로 못 싣고 나온 통인데다 심지어 쌍안경들도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없었고 새로 도색해야될 Measure 9 페인트도 없었으며 침상조차도 제대로 못 챙겨 승조원들은 대부분 바닥에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자기 일쑤였음.



세일피쉬(SS-192)의 경우 FM의 사나이로 이름 났던 모튼 머마 2세 소령의 지휘를 받았으나, 이 FM의 사나이는 폭뢰공격 1방에 멘탈이 박살나 정신착란 증세를 보여 함장실에 구금되었고 부장이 대리임무를 수행하게 되었음. 



퍼밋(SS-178)은 당장 함장부터 피부병에 걸려 드러누운데다가 승조원 중 1명이 기계에 팔이 감겨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해 조기 복귀하게 되었음. 



S-36은 많은 일본군 선박을 발견했지만 시기도 적절하게 무선통신장비가 고장을 일으켜 아군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고 혼자서 공격을 수행하기에 무리가 따른다는 판단 하에 패트롤을 중단하고 복귀하고 말았음.



이외에도 S급은 기본적으로 에어컨디셔너가 없는 함정이라 끝내주는 습기와 함내온도로 인해, 무수한 전기계통 고장과 기계적 오작동을 경험하면서 전투에서 활약을 제대로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음.

















이 와중에 막장상황을 더 부채질한 것이 그 유명한 마크14 어뢰였고, 부가적으로 3인치 50구경장 덱건의 위력부족 역시도 그 진상을 드러내고야 말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