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나무위키의 해로움에 대하여

좆무위키 덕에 한국에는 "엘랑 비탈"로 알려진 공세정신 교리는 프랑스어로는 Attaque à outrance라고 한다. 좆무위키에서는 프랑스가 중공군마냥 인간을 갈아넣은 사람 분쇄기 정도로 묘사하고 있지만 프랑스가 소련도 아니고, 그렇게 사람을 갈아넣었다면 2차대전에서 제대로 버티지도 못하고 국가 자체가 사라졌을 것이다.

아, 못버티긴 했구나.

아무튼 좆무위키에서 프랑스 엘랑비탈 교리를 까는 대부분의 글은 뇌피셜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반박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없는 일을 지어내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반박하기 위해 거짓말의 근거를 찾아내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박할 수 있는 내에서 반박해보면 다음과 같다.


1.알자스 로렌을 향해 닥돌한 프랑스군

장작위키에서는 프랑스군의 제17계획을 군인을 닥돌 시켜서 기관총 앞에 갈아버린 무능의 극치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이는 사실과 다르다.

1919년 5월 국민의회에서는 패배의 원인 분석과 지휘관 질책을 위해 주요 장군들을 소환해서 청문회를 열었다. 여기서 제17계획을 세운 중심인물이었던 노엘 에두아르드 드 카스텔노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군 작전참모들이 17계획에 작전계획(Operation Plan)을 포함시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는 동원계획(Concentration Plan)에 대해서만 의논했다."

여기에 대해 의원들이 동원계획과 작전계획의 차이점에 묻자 참모총장 조제프 조르프가 작전계획은 군사작전의 세부사항까지 정의한 것이며 동원계획은 병력을 제 위치에 배치함으로써 전투를 준비하는 성격의 계획이라며 둘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17계획이 병력 동원계획이며 아르덴 공세를 포함한 작전은 17계획에 포함되어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공세작전은 적군의 군사배치에 관란 첩보를 입수한 후 참모총장이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초기 프랑스군의 공세와 그에 따른 피해는 17작전 때문이 아니라 조제프 조르프 개인의 무능함 탓이며 엘랑비탈과는 상관없다. 오히려 수백만의 육군을 전쟁직전에 국경에 배치한 동원계획으로 봤을때 17작전에 한해서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17작전이 군사작전으로 알려진 것은 영국 역사가와 장군들이 17계획 = 공세주의 병신작전 이라는 관점을 퍼트린 탓이 크다.


2.프랑스군은 닥돌만 했다?

프랑스군에는 후티어 전술 같은게 없다고 뇌피셜을 퍼뜨리는데 당연히 사실과 다르다. 후티어 전술이 개발된 것이 1916년인데 이미 1915년 프랑스에서는 후티어 전술과 유사한 전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1915년 2차 아르투어 공세를 펼칠때 프랑스군의 작전계획을 수립한 작전계획 제 5779(Note 5779)는 다음과 같이 작전을 수립했다.

☆보병돌격의 목표는 1차 참호선의 탈취로 멈추지 않고 더 후방의 목표를 노릴 수 있는 요충지를 탈취해야한다.

☆보병 소대는 경보병과 같이 산개하여 움직이며, 적을 향해 근접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엄폐물을 향해 움직여서 총탄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한다.

☆공세에 있어서 1차로 파견되는 보병은 강습부대로써 적의 방위거점을 위해 최대한 깊숙히 돌파해야한다. 2차로 파견되는 보병은 참호청소병(nettoyeurs de tranchée)으로써 리볼버, 트랜치 나이프, 수류탄 등으로 무장하고 참호에 돌입해야하며 이를 위해 특수한 훈련을 시켜야한다. 참호청소병들을 엄호하기 위해 공병들은 평소의 장비와 별개로 추가적인 기관총, 가시철사, 폭파용 폭약, 모래주머니, 박격포 등으로 무장하고 엄호한다.

☆포병은 공세에 있어서 체계적인 공격으로 적을 압박하고 아군을 엄호한다.


이 전술이 최초로 사용된 것은 1914년 말로써 독일군보다 2년 앞서있다. 애초에 엘랑비탈 교리는 우라돌격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첩보전과 화력전에서 우위를 점하고 병력의 우세를 확보한 후 공세에 나서되 뒷정리는 결국 보병이 해야한다는 교리이다. 이는 현대전에서도 제공권과 제해권에서 아무리 우세한들 결국 깃발을 꼽는건 보병이라는 점을 볼 때 그렇게까지 엇나간 교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3.그럼 왜 이렇게 병신같은 이미지가 박혔는가?

일본탓이다.
당시 각국이 프랑스식 돌격전 교리를 어느 정도 도입하고 있었고 화력기동전을 신봉하던 독일조차 스톰트루퍼라는 근접전 병과를 양성하고 있을 만큼, 엘랑비탈은 시대에 뒤쳐진 교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영국군이 솜전투에서 자국 병사들을 사단단위로 갈아버리고 있을때 프랑스군은 1천명 내외의 손실로 목표를 제압하는데 성공한 바 있을 정도로, 지휘관에 따라서는 나쁘지 않은 교리었다.

그런데 프랑스군이 독일의 공세를 돈좌시키는 모습을 본 일본군 수뇌부는 "아! 독일처럼 비싼돈 들여서 기동전 펼쳐도 프랑스처럼 우라돌격하면 다 소용없구나!"라는 이상한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엘랑비탈 교리에서 백병전 교리만 따와서, 일본군사연구소 중 하나였던 토야마학교에서 "총검술, 양손군도술 교육의 범례(銃剣術、両手軍刀術教育法の範例)"라는 이름으로 백병전 교리를 완성시킨다. 이렇게 완성된 일본군의 백병전 교리는 장교가 병사를 이끌고 앞장서서 돌격할 것을 강조했으며 이를 위해 장교들에게는 군도가 기본적으로 지급되었다.

1916년에 이런 짓거리를 했으면 그렇게까지 이상할 건 없지만 1944년이 되어서도 "군도의 사용법 및 시참요령" "단기속성 일격필살 훈련요령" 같은 교본을 일선에 배포하며 반자이 돌격을 해댔으니 정신병자 집단이라고 볼 수 밖에.

일본군을 보면 미쳐서 전쟁에 패한건지 전쟁에서 지고 있어서 미친건지 알 수가 없다.


참고로 이때 백병전 위주를 완성시켰던 토야마학교에서는 전후 일본검도 토야마 유파로 살아남아서 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