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은 어쩌면 순진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가 전쟁을 일으킨 주요 목적 중 하나가 후제스탄 점령이라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후세인은 자신들이 후제스탄을 평정함에 있어서 매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근거가 바로 후제스탄에 사는 이란의 소수민족들이었다.
프롤로그에서 이라크가 후제스탄 분리주의자를 지원했다고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그리고 그 분리주의자들은 놀랍게도,
사실 이 동네 역사를 알면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아랍계 이란인들이었다.
사파비와 오스만의 끝없는 충돌은 아주 당연하게도 각 민족들이 이리저리 섞이는 결과를 초래했고
그 결과 중 하나가 이 후제스탄에 살고 있는 아랍계 이란인들이었다.
이들은 주류인 페르시아인과는 인종부터 달랐으며 시아파를 믿는 페르시안인들과는 정반대로 수니파를 믿고 있었다.
때문에 후제스탄의 아랍인들은 이란인들과는 영 사이가 별로였으며,
때문에 후세인은 자신들이 후제스탄에 들어가면 이 아랍계 이란인들이 자신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 생각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이란 혁명 직후의 혼란기 속에서 아랍계 이란인들 중 ‘일부 선량한 민간인들’이 이라크 편입을 주장하며 폭동을 일으킨 선례가 있었다.
물론 그 일부 선량한 이들 중 상당수는 이라크 정보원이었긴 했지만.
물론 후세인의 망상이 또 한 번 와장창 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9월 23일 이라크 육군이 호람샤르에 당도했을 때, 아랍계 이란인들은 대부분이 너나 할 것 없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이란 정부에 협조했기 때문이었다.
호람샤르 전투의 시작 날짜는 정확하게는 9월 22일부터였다.
이라크 육군이 도시에 들어서기 전에, 공습 개시와 함께 초록색으로 표시된 알 타누마에서 150문의 포대가 도시를 향해 무차별적인 포격을 개시하였기 때문이다.
22일 저녁까지 지속된 이 포격으로 도시는 불바다가 되었고 수만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무려 500대의 전차가 호람샤르의 북쪽으로 들어오면서 아와즈와 호람샤르를 연결하는 37번과 96번 국도를 끊어버렸다.
몇몇 수비군이 무반동총을 이용해 이라크 전차 여러 대를 파괴하였으나 조족지혈에 불과했고, 도시 주변을 지키던 전초 기지는 새벽이 되면서 전부 함락되었다.
이란군은 어떻게든 도시가 완전 포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발악적으로 이라크 군을 공격하였고 이라크군이 입은 피해 역시 상당하였다만,
9월 30일 마침내 호람샤르는 시 남단을 흐르는 카룬 강을 제외하고는 이라크 제3군단(제 3 기갑사단, 제 2 기계화사단)에 의해서 완전 포위되었다.
당시 지휘관 중 한 명이었던 이란 제 1 해병여단 제 1대대 대령 호샨 사마디는 호람샤르 전투에서 어려웠던 것으로
중화기, 탄약, 구급약품의 부족과 함께 마지막으로 지휘권의 모호함을 꼽았다.
그의 말은 지극히 당연했다. 하나로 뭉쳐도 모자랄 판에 호람샤르를 지키는 방어병력이 속한 기관이 제각각이었다.
먼저 이란군 수비대, 이란 제 1 해병여단, 이슬람 혁명수비대, 바시(청년단), 잔다르메(이란 헌병대), 샤르바니(이란 경찰)가 30일 이전까지의 병력구성이었고,
이후에는 사관학교 생도, 이란 육군 항공대, 각군에서 온 30명의 장교들, 지역주민 300명이 더 합류했다.
무장 역시 제각각이었는데 정규군은 대부분 G3였지만 혁명수비대원 중에는 M1 개런드를 소지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가관이었지만 잔다르메는 1920년대 이란에서 VZ24 볼트액션 소총을 면허생산한 Berno 소총을 제식으로 하고 있었다.
G3로 무장하고 군모까지 착용한 정부군이랑
M1들고 히잡 쓰고 있는 비정규군이 혼재된 상황이었다.
화기도 제각각, 탄약도 제각각에 무엇보다 지휘체계가 완벽하게 따로 놀던 상황이었으니 이라크 군은 상황을 매우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물론 시가전은 공자에게 있어서 최악이라는 건 간과하고.
일출 직후 60명의 특공대가 차출되어 호람샤르 정찰에 나섰다가 이란 수비대와 격돌하여 8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라크군은 이를 인지하였지만,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무시하고는 제 3 사단으로 하여금 도시를 장악하고자 하였다.
1차 공세 당시
도축장과 철도역을 점령하면서 순조롭게 가는 듯 했지만, 도심 깊숙이 들어섰을 때 혁명수비대의 대전차조의 기습에 곳곳에서 전차들이 파괴되었다.
그들은 RPG와 화염병을 이용하여 이라크 기갑부대를 효과적으로 파괴하였다.
또한 도심에 매복해 있던 치프틴 전차의 반격으로 이라크 군은 큰 피해를 입고 패퇴하였다.
물론 철도역과 도축장은 이라크군의 수중에 남아 있었지만, 이들은 일단 외곽으로 퇴각하여 숨을 고르고 작전을 다시 짜게 되었다.
이라크 군이 1차 공격의 실패에서 배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시가전에 무작정 전차를 들이밀면 이도저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런 사태를 예방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라크군 대령 아흐메드 지단은 답을 알고 있었다.
이란에서나 체첸에서나 도시가 문제면 도시 그 자체를 때려부수면 된다. 유사 이래 시가전의 진리이다.
10월 14일. 병력확충과 동시에 이라크군은 저번처럼 무식하게 때려박는 식이 아니라 야음을 틈타서 하나하나씩 처리하는 방식으로 이란군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이란군 역시 저격수를 동원하여 이라크군의 진격을 늦추고자 했지만 본질적인 힘의 차이를 뒤집는 건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진짜로 거슬린다 싶으면 이라크 군 포병대는 BM-21, 카츄샤 로켓, 130mm 포격 및 공습을 개시하여 도시를 무자비하게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이라크 군은 조금씩 조금씩 도심으로 밀려들어왔고 이란군은 계속해서 중앙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10월 21일 도심 중앙에 도달한 이라크 군은 최종목표로 정부청사와 카룬 강에 위치한 아바단으로 향하는 교량을 장악하고자 하였다.
10월 24일 공격에 들어가자 이란군은 어떻게든 이라크군을 방해하려 하였지만 5시간이 채 되지도 않아서 아바단과 이어지는 교량이 이라크 군에게 떨어졌다.
이란군의 저항에 피해를 입긴 하지만 그럼에도 운신이 자유로운 이라크군 전차와 달리 이란군의 치프틴은 제대로 된 기동조차 할 수 없었고
때문에 고정포대 역할을 하다가 차례차례 격파되었다.
10월 24일 결국 최종목표인 정부청사가 이라크 군의 손에 함락되었고 유일하게 남은 것은 도심 중앙의 모스크 정도였다.
3차 공세 직후, 저기만 빼고 카룬 강 북부는 전부 이라크 손에 떨어졌다.
이란군 지휘관은 결국 도시를 포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럼에도 간헐적인 저항은 계속되었으며 호람샤르가 최종적으로 이라크 군의 손에 떨어지게 된 것은 11월 10일이었다.
이 전투로 이란군은 민관군을 합쳐 7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수십 대의 전차가 파괴되었으며 아바단으로 이어지는 진격로를 이라크 군에게 탈취당하였다.
이라크 역시 7천의 사상자와 함께 200대의 차량이 파괴되면서 이후의 전황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라크는 시간이라는 엄청나게 귀중한 자원을 헛되이 소비하였다.
이는 다음에 벌어지는 아바단 전투에서도 정확하게 반복되었고 최종적으로는 이라크 공세 실패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글을 마치면서 끝으로 이야기 하나를 올린다.
이 전투에서 후일 발생할 엄청난 비극의 복선이 존재하였으니 모하마드 호세인 파미드라는 소년의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사망 당시 13살 소년치고는 좀….
전기에 따르면 파미드는 10월 30일 이라크 전차가 이란군을 밀어붙이고 있을 때, 변변한 대전차무기가 없자 수류탄 벨트를 들고는 이라크 전차 아래로 뛰어들어 자폭하였다. 사망 당시 고작해야 13살 소년의 죽음으로 이란군은 위기에서 벗어났고 호메이니는 연설에서 그를 영웅으로 추대하였다.
'우리의 지도자는 작은 심장을 던져 적에게 대항한 13살 소년입니다. 그는 100개의 펜과 100개의 혀보다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그 소년은 명예훈장을 받았으며 베쉬테 자라의 순교자 묘지에 성대한 장례식과 함께 안장되었다. 그가 죽은 10월 30일은 이란 학생의 날이 되었으며 그를 기리며 테헤란 외곽에 세워진 기념비는 순례의 장소가 되었다. 그를 그린 책가방과 기념우표가 나왔으며, 1989년 이란-이라크 전쟁 종전 직후 1등급 파스 훈장을 제일 먼저 받는 영예를 누렸다. 이것이 그 참극의 복선일 줄을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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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개막장이구만
근데 진짜 수류탄이 아래서 터지면 전차도 파괴되나?? 가장 얇은부분이라해도 대인용인 장비인데
진위 여부는 아무도 모름. 어차피 프로파간다용이라서
그리고 당장 이란인들부터 '수류탄 뭉치라고 해도 탱크를 어떻게 부숨. 이거 구라 아님?'이라고 대놓고 의심한다
이미 이란이 제공권을 잡았음에도 지상전엔 별로 기여를 못했네. 역시 이란한텐 이스라엘 수준의 CAS역량은 기대못하겠지. - dc App
캬아..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개추!
저게 그 소년병 웨이브 시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