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gall.dcinside.com/war/653741


위 링크 포스팅의 연장입니다.


고시로 유키코가 제시한 38선 일본요인론에 대해 네이버 역개루 카페에 상주하시는 이완범 교수님에게 여쭤봤는데, 교수님의 저서 『한반도 분할의 역사』(2013)의 일부를 발췌하여 카페에 올려주셨습니다.


https://cafe.naver.com/historyarchive/14059


고시로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해군성 교육국장인 다카키 소키치 소장이 1944년에 작성해 제출한 "중간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완전한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을 막으려면 소련을 동북아에 끌어들여 미국을 견제해야 한다. 원래는 중국에 한정이었으나 만주와 한반도 북부까지 소련의 세력권으로 넘겨서 미소간 충돌과 대립을 유지하는 안으로 변경. 다카키 소장은 1939년에 처음으로 독일-일본-이탈리아 삼국동맹 전략을 주창한 인물로 영향력이 있던 인물.


2. 대본영은 다카키의 안을 받아들여 의도적으로 1945년 8월에 관동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도록 지시, 관동군의 6개 대소전 시나리오는 하나도 실현되지 않았으며, 소련군은 한반도에서 거의 저항을 받지 않은 채 진격. 만주 거류민들 또한 소련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소개를 의도적으로 방치. 그 때문에 소련군이 고속으로 진격할 수 있었던 것.


3. 이로서 미국은 소련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38선을 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완범 교수님이 본문에서 지적하듯이, 이건 실제 역사라기보다는 한반도 분단을 설명하기 위한 정확한 물증이 없는 가설, 그것도 확대해석과 비약이 있는 가설입니다. 이완범 교수님은 그래도 마냥 무시하긴 힘든 가설이라고 말씀하시긴 하셨는데, 그 이유는 아직 답변을 안해주신 관계로 패스. -_-;; 고시로 본인은 이를 입증할 1차사료가 없는 이유로 대본영이 관련 문건을 다 파기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더 의심스러워요;;


고시로의 논문을 아직 못보긴 했지만 일단 딴지는 걸 수 있습니다.


1. 다카키의 소련을 끌어들여 미국을 견제한다는 안은 1945년 5월 대본영의 일소교섭요령에서 반영되기는 하지만, 한반도와 만주국은 교섭대상에서 빠졌음.


2. 대본영이 그랬다는 직접증거는 없으며(고시로 말로는 파기되어서) 만주작전의 전개를 보면 관동군은 6개 시나리오를 실현 "못한" 거지 실현 "안한"게 아님. 소련군이 관동군 예상보다 더 빠르고, 더 기민하고, 기동전을 중시한 결과라고 보는게 더 유력. 그리고 그랬다면 관동군 단위부대들이 빠른 항복이 아니라 다 싸우다 죽겠다며 무단장, 후터우 요새 등에서 옥쇄한 것을 설명할 수 없음.  이는 『8월의 폭풍』을 보면 알 수 있소.


3. 소련군의 한반도 진격에서 조선주둔 일본군이 저항을 하지 아니한 게 아님. 청진 전투에서 상륙 제1파로 상륙한 소련군 해군보병 수색대는 일본군의 2개 연대 수준 병력에 포병과 장갑열차의 화력지원을 받는 반격을 받으며 수 시간동안 해안에서 고착당하고 손실을 강요당했음.


이 이론이 국내에 소개된 때는 고시로가 논문 Eurasian Eclipse: Japan's End Game in World War II (2005)로 38선 일본요인설을 처음으로 제기한 때 시사저널 기사로 논문이 소개되고 브루스 커밍스가 고시로 논문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시사저널 기사 링크: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747

이에 대해서는 남중생님 포스팅 참고: http://inuitshut.egloos.com/1940785


이 시사저널 기사는 남중생님의 분석처럼 모순이 많지만 어떠한 고찰이나 분석 없이 "38선은 사실 일본이 그었다!"라는 자극적이고 반일감정에 부합하는 식으로 떠돌아다니다가 김어준이 14년만에 떡밥을 문 것으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