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기에 한국군의 무장 및 차량화 수준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건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참전자의 회고록을 읽다 보면 차량 부족으로 고통 받는 지휘관들 이야기가 자주 나오죠. 전쟁기에 18연대와 22연대장을 역임한 장충권 중장의 미완성 회고록을 보면 트럭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옵니다. 미국이 원조한 차량이나 민간에서 징발한 일제 차량 외에도 북진 중에 대량으로 노획한 소련제 트럭과 지프가 유용했다고 하죠. 한국군은 노획한 소련제 트럭과 지프를 꽤 애용했는데, 1952년 4월 국군 제1보병사단의 차량 보유 현황을 보면 사단이 보유한 총 524대의 차량 중 소련제 차량이 트럭 77대, 지프 3대에 달합니다. 거의 5분의 1정도가 소련제 차량으로 나오죠. 그리고 민간에서 징발한 일제 트럭의 비율도 꽤 높습니다. 무려 222대나 되는 걸로 나타납니다. 이때문에 일본의 한국전쟁 특수 중 하나가 한국군이 보유한 일제 트럭을 정비하는 일이었다고 하죠. 오버홀이 필요할 경우 한국내에서는 해결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한국군의 정비 능력은 야전 소요를 따라가지 못해서 1952년 1월 쯤 되면 수리를 못한 일제 트럭 엔진 3000개가 부산의 정비창에 쌓여있는 상태였습니다. 전반적인 차량 부족, 운용능력 부족 문제는 북진시, 그리고 1950~51년 겨울의 후퇴시에 꽤 문제였습니다. 신속한 추격이 필요할 경우에는 사단이 보유한 트럭을 집중해서 1개 대대씩 수송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고 하는군요. 뭐 그래도 미군 처럼 사단 전체가 차량 기동이 가능하다면 훨씬 빠른 진격이 가능 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일제 차량이나 소련제 노획 차량을 장기간 운용했다는건 꽤 놀라운 일 입니다. 미국이 원조했던 차량들만 해도 한반도의 가혹한 도로환경 때문에 소모율이 높았다고 지적되거든요. 1950~51년에는 소련제 차량이 대량으로 노획되어서 부품 수급이 큰 어려움이 없었다지만 1951년 하반기 이후로는 공산군 중장비를 대량으로 노획할 일이 없었으니 어떻게 운용했을지 꽤 궁금합니다. 반면 일본 차량 같은 경우는 막대한 소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일본에서 부품을 수입할 수 있어 사정은 나은 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2년 하반기 부터 1953년 초순까지 일본제 차량의 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져 한국 육군의 작전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정도였다고 하지요. 전쟁이 끝날 때 까지도 일제 차량의 가동율 문제는 해결이 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