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제아는 마지막 전투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병사는 병상에서 겨우 일어났고, 한쪽 눈을 잃어버린 사람, 팔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한쪽 눈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애꾸눈, 우리는 지금 후퇴를 해야 돼!'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전투를 계속해야 하니까 무기를 달라'고 말했다. 놀랄 만한 일이었고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5월 6일 우리는 랑그레를 만나러 갔다. 우리 모두는 지쳐 있었다. 정말로 녹초가 되어 있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탄약도 없었고 병사들은 자신의 총을 들고 다닐 힘도 없었다. 그래서 5월 7일 베트민이 공격해 왔을 때, 전투는 사실상 끝이 났다."


프랑스군은 죽음을 무릅쓴 육탄 돌파도 계획했었다. 2개 부대가 종대로 라오스 쪽을 향해 돌진한 다음 기회를 엿본다는 계획이였다. 항복하던 날인 7일 아침 일찍 랑그레 대령은 이 계획을 감행하기 위해 생존한 모든 장교들을 소집했다. 랑그레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생존한 장교들도 더 이상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카트리 장군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장군은 하노이에 전투가 즉시 종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제아의 증언은 계속된다.

"버틸 수 있는 대대의 몇몇 고참들이 모여 돌파를 결행하자는 주장을 했지만, 많은 장교들이 그럴 가치가 없다고 헀다. '돌파는 고사하고 100m도 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카트리가 하노이에 무전을 보냈다. '전투는 끝났다'고."


나바르 장군이 무선으로 말했다.

"전투를 중단하라, 그러나 백기는 올리지 말라!"


"'백기를 올리지 않는다'는 프랑스의 조건부 항복에 하노이 베트민 사령부가 동의했다. 그날이 5월 7일 오후 1시였다."

장교들과 즈느비에브 간호사는 지휘본부에 모여서 기다렸다. 오후 5시가 막 지났을 때였다. 전투가 시작된 지 55일째 되는 날이었다. 주위에서 베트민 병사들의 함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랑그레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벙커의 천장에서 무엇이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출구로 통하는 계단이 내 앞에 있었는데, 나는 그 사이로 조그만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수류탄 하나가 계단을 굴러내려와 벙커에서 폭발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총에 대검을 꽂고 베트남 모자를 쓴 의기양양한 베트민 병사들을 봤다. 그들이 소리쳤다. '밖으로 나와!'라고."


디엔비엔푸 평원에 자리잡은 텅 빈 프랑스군 사령부를 감싸고 있는 것은 침묵과 안개뿐이었고, 구부러진 대포의 포신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1954년 5월 7일 오후 5시 30분'이라고 쓰여진 조그만 동판 하나가 있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이보다 더 오랫동안 포위 공격을 한 적이 있었다. 영국은 리비아의 토브룩에서 241일간 버텼었고, 독일은 100만 명을 투입하여 스탈린그라드를 67일 동안 지켰었다. 그리고 미국은 필리핀의 바탄을 66일간 방어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군의 패배는 전투의 규모에 비해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55일간의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3,000명의 전사자를 냈고, 또 다른 3,000명은 영구 불구자가 되었다. 베트민측 전사자는 8,000명에 달했으나 프랑스를 함락시켰다. 그리고 인도차이나를 되찾았다.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마이클 매클리어 저" 중에서


지인 V모 씨가 제보해주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