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링크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661992&s_type=search_all&s_keyword=%EC%9E%84%ED%95%B4%EA%B5%B0%EC%A0%84%EC%83%9D&page=1
우리……나와 내 동생, 광해군의 하루는 부왕…선조에게 문안을 드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왕후가 아닌 측실 공빈의 아이인 우리는 당연히 중전 마마께도 문안을 드려야 한다. 그 뒤에 내전에서 동생 광해군과 식사를 하면, 학습의 시간이 찾아온다. 내가 시간을 한꺼번에 확보하려면 좌학 시간을 어떻게든 없애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내 몸을 단련하는 의미에서도, 단련 시간은 줄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시대의 학습은 암기가 대부분이므로 나에게는 의미가 없다. 전생의 기억을 가진 내 머리에는 세계의 주된 정보가 정확하게 들어 있다. 당연히 좌학의 중심인 사서오경은 후대의 주석까지 통틀어서 기억한다. 종친의 교육은 종학에서 맡는다. 좌학은 홍문관의 학자들……여기서는 스승과 박사라고 하는 게 좋겠지만, 그들이 와서 강의를 한다. 경연하는 김에 오는 것이겠지. 그 양반들도 고생이다.
“자, 애기씨. 오늘은 전날의 하던 걸 계속 하겠사옵니다.”
한 초로의 학자가 시작을 선언했다. 이름은 모르나, 오늘 멤버 중에서는 으뜸인 것 같다.
“……박사 제현께,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애기씨, 그 말씀이라면 강의가 끝나고 하셔도 무방하지 않겠사옵니까?”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박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자의 이름은 이산해, 분명 인빈과 커넥션이 있었던 것 같다.
“아니, 먼저 하고 싶소. 그렇게 큰 일은 아니라. 스승님들과 하나, 내기를 하고 싶소.”
“강의 중에 내기라니요. 참으로 안 될 말씀이옵니다.”
이산해가 아이의 투정을 달래듯 답한다.
“그 내기라 함이 곧 학문에 통하는 일이오. 사서오경 중 어느 것이든, 박사가 지정한 곳을 내가 암송하도록 하지.”
박사들의 안색이 변했다. 내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안색에 변화가 없는 것은 상석에 앉은 저 영감님 정도다.
“내가 이기면 좌학 시간은 이후 없는 것으로 해 주시오. 내가 지면, 지금 시간의 갑절을 학문에 돌리도록 하겠소.”
박사들이 서로 상담을 시작했다. 이 내기에 끌어들이기만 하면 내가 이긴 것이다. 상담이 끝났는지, 상석에 앉은 영감이 입을 열었다.
“말씀을 받자오면, 중용의….”
거기서 영감의 발언을 끊은 자가 있다. 또 그 자다.
“춘추를 듣고 싶사옵니다.”
영감이 순간 나의 얼굴을 보았다. 내가 안색 하나 달라지지 않으니, 무언가 느낀 바 있는지 입을 다문다. ‘춘추’란 중국 노나라의 연대기로, 사서오경 중에서는 최난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을 지정하다니….과연. 게다가 ‘어느 부분’이라는 지정도 없다. 말하자면 ‘전부’라는 것이군. 재미있다. 나는 잠깐 눈을 감고,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정의로 이르되 주(周)의 법을 따르는 뭇 나라에 그 사기 있어, 이를 춘추라 명하니……”
박사들 중 몇 사람의 표정이 변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춘추좌씨전’이라는 것이다. ‘춘추’ 자체는 원래 하나의 책이 아니라 연대기를 모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공자에 의해 쓰인 연대기에 후대의 주석을 달아 정리한 것도 여러 가지 존재한다. ‘춘추좌씨전’은 대표적인 과거시험의 대상이다. 말 한 마디 한마디는 틀림없이 도움이 되는 것도, 참고가 될 만한 것도 씌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요는 ‘노’나라의 연대기다.
조용한 아침의 서원에서, 아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낭랑히 울려퍼지는 ‘춘추좌씨전’을 들으면서도, 잘도 아무도 졸지 않는군. 여기서 나의 심술이 고개를 들었다.
먼저 전반을 외는 도중에, 잠시 머뭇거려 보았던 것이다. 머뭇거리는 내 얼굴을 보면서도 영감은 웃는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자는 입가를 씰룩이고 있었다. 다른 박사들을 보니 전반이라 그런지, 과연 아무도 ‘춘추’를 펼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암기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을 확인하고, 나는 암송을 계속했다.
후반인 소공 3년으로 넘어가려는 대목에서, 나는 한 번 더 머뭇거려 보려고 했다. 그 타이밍에 영감이 입을 열었다.
“게 아무도 없느냐, 물을 가져오너라. 애기씨, 한 차례 목을 축이심은 어떠하겠사옵니까?”
틀림없이 입이 마르고 목도 아팠다. 무엇보다도, 영감이 나를 쉬게 한 것은 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박사들을 위해서였던 것 같다. 눈을 날카롭게 번득이며 나를 노려보는 그자는 차치하더라도, 다른 박사들은 이미 한게에 달한 것 같기도 했다. 과연 홍문관에서 수학한 만큼 졸음에 빠진 박사는 없었다. 그러나 몇 명의 박사가 ‘춘추좌씨전’을 무릎 위에 놓고 숨기듯 책장을 넘기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학생은 춘추좌씨전을 한 번쯤은 통독하겠지만, 배운다면 춘추좌씨전의 14권부터 시작되는 ‘양공’까지가 고작이다. 22권 소공 3년 이후를 기억하는 박사가 대체 몇 명이나 있을지.
내 장난을 간파한 것인지. 뭐, 이 영감이 범상치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암송은 종장, ‘상공’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춘추좌씨전’의 암송이 끝났다. 서원 전체에 정적이 흘렀다. 정말로,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일진광풍이 휘달리며 책이 넘어가는 바스락 소리가 났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박사들이 몸을 꿈틀대는, 옷 스치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타이밍에 시선을 영감에게 보냈다. 눈이 마주친 순간, 빙긋하는 소리가 들릴 듯한 미소를, 그는 지었다.
“……내기는 애기씨가 이기셨사옵니다.”
아무도, 이산해조차 반박을 하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끝이라는 듯 일어나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거기서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선 영감이 다가와 속삭였다.
“애기씨, 이후에도 학업에 정진하시지요.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독서당에 걸음하시옵소서.”
“…괜찮겠소? 나는 아직 막 다섯 살이 된 아이요.”
“허허허허, 춘추를 달달 외는 다섯 살배기는 없지요.”
나는 더 이상 반론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성격대로라면 머리를 숙여서 인사를 하고 싶지만, 종친이 신하에게 머리를 숙여서는 안 되는 일이다. 자, 이제 나는 마침내 자유시간을 확보했다. 지금부터다.
서원을 나선 나는 환관과 궁녀 여럿을 데리고 궁궐을 걸었다. 그 영감….이름이 ‘이이’라고, 환관이 귀띔해 주었다. 솔직히 놀랐다. 이이는 이 시대……아니,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인 동시에 유능한 정치가다. 많은 저서와 공저, 건백서를 후대에 남겼다. 그 사람이 나의 교육 담당으로 왔었다니……그러고 보니 언제든 독서당에 오라고 했었지.
기억하기로 이 시기, 이이는 ‘정철’과 함께 사가독서에 들었을 것이다. 사가독서는 말 그대로 당시의 관료에게 그 공적을 인정하여 연구시간을 주는 제도다. 유학 연구를 인생의 목적으로 두는 선비에게는 최고의 포상이다.
한 번쯤은 독서당으로 가 보자. 거기 있는 자료가 보고 싶어서는 아니다. 영감….이이가 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건물 모퉁이에서 십수 명의 환관과 여관, 호위를 거느린 행렬이 나타났다. 아버지….국왕 선조와 인빈이었다. 나는 비켜서서 머리를 숙였다. 평소라면 있는지 없는지도 신경쓰지 않은 채 지나치는 아버지……선조가 말을 걸었다.
“지금은 강서 시간이 아니냐?”
순간, 내 주위에 시립한 자들이 얼어붙은 것을 느꼈다. 내 전담 상궁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나는 그것을 제지했다.
“이후, 좌학 시간은 없애도록 하였사옵니다. 이이의 허가도 받았나이다.”
내 대답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아버지……선조가 무슨 말을 하려던 차에, 인빈이 아버지의 귓가에 무어라고 속삭였다. 내 얼굴을 보는 인빈의 입가가 야비하게 뒤틀려 있다.
“……율곡이 그리 말하였다면, 윤허한다.”
아버지……선조는 그리 말하고는 가던 길을 계속 갔다. 행렬을 지켜보는 나에게, 인빈이 돌아보며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보나마나 아버지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한 것이리라. 뭐, 덕분에 할 필요도 없는 변명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인빈도 도움이 될 때가 있는 모양이지.
나는……아니, 아직 아무도 이 ‘좌학이 없어진 이유’로, 후에 터무니없는 소동이 일어나게 될 것을 알지 못했다.
역주
본문의 춘추좌씨전이라고 하는 저것은 사실 춘추좌씨전 정의라고 하는 또 다른 책이다.
일본 구글에서 춘추좌씨전을 검색하면 저 글에 가장 위에 뜨는데, 그냥 거기서 복사한 모양.
한국어 번역은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어 구절과 한문 원문을 바탕으로 재번역함.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661992
http://m.dcinside.com/board/war/660636
이걸ㅋㅋㅈㅋㅋ
번역 수고한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