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파일럿의 계급은 중위이며 70~80시간 가량의 비행훈련을 거친 이후 대만-중국 연안의 대잠초계 임무에 종사하다가 가미카제 특공대로 발령받은 이후 종전을 맞이한 사람임.
심문일자 : 1945년 11월 1일, 도쿄
심문 대상자 : 오쿠노 중위(Y. Okuno라고만 되어 있고 이름 전체를 알수는 없었음.)
심문 담당자 : 스티드먼 텔러 미 해군 대령
Q. 1944년 12월과 1945년 2월 사이에 포르모사(대만)에서의 경험은?
A. 유독 B-24의 공습이 많았습니다. 미군 측에서 사용된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군과 민간인의 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하고, 동시에 토코 기지의 다수의 항공기를 손상시킨 대인성 파편 클러스터 폭탄이었습니다.
저는 포르모사와 필리핀 사이를 항해하는 수송선단에 대한 호위제공을 목적으로 한 대잠초계비행에 투입되었습니다. 우리는 레이더와 MAD(자기이상탐지장비)를 둘 다 사용해왔습니다.
보통 레이더 탑재 항공기는 이 해역을 수색하기 위해 먼저 출동했고 잠수함의 징후가 발견되면 MAD탑재 항공기가 출격합니다. 저는 우리 부대가 MAD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이 해역에서 2, 3척의 잠수함을 손상시켰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직접 해냈던 건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야간에 제 항공기의 MAD가 잠수함을 탐지했는데, 저는 표적 위에 부유섬광탄을 투하한 다음, 두 번째 패스에서 부유섬광탄이 투하된 곳에 폭격을 수행했습니다. 기지로 돌아가면서 저는 침몰했던 폐선을 공격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탄 군도 근처에서 미국 잠수함에 의해 침몰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주1)
Q. 남중국해와 인도차이나 해안을 따라 당신이 소속되었던 비행대가 대잠작전을 수행하는 것은 어땠는지?
A. 포르모사의 단수이에서 인도차이나 해안의 사이공까지 연장된 기지들 사이에서 분할 배치되었습니다.
이 해안선은 5개 구역으로 나뉘어 각각 1개 부대에 의해 각 기지에서 담당했었습니다. 단수이에 있는 부대는 포르모사 북쪽 지역을 담당했습니다. 매일 수송선단이 이동할 예정이라면 책임 구역을 배정받은 부대는 그 해역을 초계했습니다.
수송선단 항해가 예정되어 있지 않으면 초계비행을 하지 않고 비행훈련이 진행됐습니다. 1944년 가을 이후 사실상 모든 해군 비행기들이 그렇게 운영되었기 때문에 초계는 주로 레이더를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MAD 장비는 통상적으로 초계에 사용되지 않았지만 레이더나 다른 수단을 통해 잠수함을 찾은 후 사용되었습니다. 근데 MAD의 공급은 제한되었고 항공기에 설치할때는 모든 기관총과 다른 무거운 중량물을 제거해야만 했습니다. MAD 장비가 무거워서 항공기가 이륙중량 초과를 하기 때문입니다.
제1 호위비행대에 배속된 제로센 몇 기가 있었는데, 5, 6기는 홍콩에, 6, 8기는 하이난, 사나에 배치되었습니다. 육군 전투기는 주로 육-해공군 간의 통신이 원활하지 못하였고, 또한 해상 임무를 수행할 때 육군 전투기의 업무 협조가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기지에서는 연료를 공급하고 일부 수리를 하는 군간 협력이 있었습니다. 1945년 4월까지, 이 부대의 모든 전투기들은 상실되거나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Q. 어떤 종류의 항공기를 조종할 자격이 있었나?
A. 전투기를 제외한, 모든 해군 단발기입니다.
Q. 수송선단 호위에서 항공기 손실에 대한 경험은?
A. B-24 폭격기의 공격으로 지상에서나 공중에서나 꽤 많은 조종사를 잃었습니다. 이러한 B-24 공격 중 일부는 편대구성을 통해 공격해왔고, 다른 일부는 필리핀에서 단독으로 정찰을 하는 항공기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하루 중에 이 1놈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오면, 그 시간에는 우리에게 오지 않기 때문에 출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근데 이 단독 초계비행을 하는 B-24조차도 수송선단 대신 우리를 향해 공격해온다면, B-24는 상상 이상으로 기민하고 민첩했기 때문에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1945년 3월 아모이에서 격추되어 가라앉은 B-24 폭격기를 조사하기 위해 잠수해서 장비, 암호책, 비상 무전기, 보급품을 인양했었는데 항공승무원은 발견 못했었습니다. 우리는 이 B-24의 장비가 특히 훌륭하고 미군 조종사들이 전반적인 모든 작전과 임무를 매우 잘 준비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우리는 단독으로 비행하는 B-24가 때때로 그들의 아군에게 지원을 요청한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우리의 음성통신장비는 우리 기지에 지원을 요청할 만큼 성능이 우수하지 못했습니다. 장비가 준비되었다 해도 수송선단 기함과 음성통신장비로 직접 교신할 수 있는 통달거리는 겨우 5, 6마일 정도 거리밖에 안 되었고 말입니다. 그 거리를 넘어설 경우 우리는 텔레그램 키로 통신을 보내야 했습니다.
Q. 귀관이 담당했던 해역에서 우리 측에 의해 이루어진 귀 측 수송선단에 대한 공습에 대한 기록을 알고 있는가?
A. 1945년 4월 4일, 약 5천 톤 규모의 상선 키네 마루로 구성된 수송선단이 제1호, 5호, 36호, 130호, 134호 해방함의 호위와 2척의 구잠정이 홍콩을 향해 북쪽으로 항해했습니다. 이것은 제11 호위대라고 불렸습니다.
수송선단은 스와토우 인근에서 필리핀에서부터 날아온 B-24 편대에 의해 오랫동안 공격당했는데, 이들 폭격기 편대들은 중국에서 P-51 전투기에 의해 엄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싱가포르 시민과 홍콩 주둔 군인들을 싣고 있던 키네 마루는 침몰했습니다. 70명이 구조되었고 240명의 인명이 사망, 실종되었습니다. 거기에 1호, 5호, 130호, 134호 해방함과 1척의 구잠정이 침몰했습니다. 주2)
저희가 관할한 해역에서 가장 유명한 침몰사건은 대양 여객선 아사마 마루 격침 건이었습니다. 아사마 마루는 이틀간의 추적 끝에 1945년 1월이나 2월경 둥사 군도 근처에서 미국 잠수함에 의해 격침당했었습니다. 날씨가 안 좋아서 아사마 마루의 구조요청에도 우리 항공기는 단 한 대도 출격하지 못했습니다. 주3)
당시 둥사 군도에서는 30-40명의 통신 및 기상 관측대가 주둔했었는데, 1945년 2월 또는 3월, 한 잠수함이 이 시설에 대해 포격을 해버리면서 해당 관측대의 고위 장교를 죽였습니다. 얼마 후 이 기지는 버려졌고 인원들은 대피했습니다. 주4)
Q. 큐슈로 돌아왔을 때 어떤 부대에 갔는가?
A. 1945년 5월 제5항공부대 기지에 가서 오무라와 후쿠오카에 주둔하였습니다. 저는 제1 항공호위전대의 모든 조종사들이 이 시기에 큐슈로 돌아왔다고 믿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해군 최고사령부인 연합함대 총사령부의 명령에서 비롯됐습니다. 반면 큐슈에서 우리 항공기와 조종사들의 대잠초계 중 큐슈와 조선 사이, 특히 동해(원문은 일본해이지만 머한의 남아로서...)에서 미국 잠수함을 막기 위해 투입됐습니다.
...당시 6월경 우리는 미국 잠수함이 마침내 동해에 진입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또한 이 기간 동안, 우리 항공기는 특공을 위해 800kg의 폭탄을 설치하도록 개조되었습니다. 근데 이 개조는 어려웠고, 전체 전력의 1/3이 전쟁이 끝날 때가 되어서야 개조가 완료되었습니다.
출처 - INTERROGATION NAV NO. 56 USSBS NO. 228 - AIRCRAFT ESCORT OF CONVOYS AND ANTI-SUBMARINE OPERATIONS
주1 : 간단히 말하자면, 미국 잠수함인 줄 알았는데 이미 침몰한 선박에 의한 자기이상반응을 보고 잠수함이라 착각해 공격했고 그걸 나중에 알았다는 말임.
선뜻 파일럿의 숙련 부족이라고 비난을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MAD는 수면하에 있는 것이 잠수함인지, 침몰선 잔해인지 아틀란티스 유적인지따위를 구별할 능력 따위는 없음. 어디까지나 자기장 이상반응을 감지할 뿐이고, MAD로 침몰선을 잠수함으로 착각해 공격한 사례는 굳이 일본군이 아니더라도 연합군에서도 자주 있었던 해프닝이었음.
주2 : 해당 교전에 대한 상세 내용. 해당 선단은 홍콩과 상하이를 경유해 일본의 모지로 항해하는 호모-03선단으로서 1945년 4월 4일 홍콩을 출항해 상하이를 목적지로 북상하던 도중인 4월 5일경 1차적으로 미 해군 소속의 P5M 마리너 수상비행정의 공격을 받았으며 수송선 제2 토카이 마루가 격침당했음. 얼마 있지 않아서 미 육군항공대 제5공군 소속 B-24와 B-26, P-38 라이트닝의 공습에 의해 키네 마루가 격침당했음.
당시 호모-03선단은 제2 토카이 마루와 키네 마루로 구성된 상선 2척과 구축함 아마츠카제, 제1호 해방함과 134호 해방함, 9호 구잠정, 20호 구잠정의 호위를 받았음.
두 상선이 모두 격침당한 이후, 선단은 해산되었고 각 호위함정들은 곧바로 홍콩으로 이동했으나 미 육군항공대 극동공군 예하 B-24에게 또 공습을 받아 1호 해방함과 52호 해방함, 급유함 카모이와 제9호, 20호 구잠정이 손상을 입게 됨.
다음 날인 1945년 4월 6일에도 미 육군항공대 제345폭격그룹 소속 B-25 미첼의 대규모 공습을 받아 제1호, 제134호 해방함이 격침당하고 구축함 아마츠카제가 좌초하는 큰 피해를 입게 됨. 해당 파일럿과의 주장과는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주3 : 해당 교전에 대한 상세 내용. 아사마 마루는 1944년 10월 29일에 마모-04선단에 소속되어 마닐라를 출항해 가오슝으로 이동했음. 소속 호위함은 해방함 사기, 기뢰소해정 W-17, W-18로 구성되었음. 다음날인 30일경 마모-04선단은 미 육군항공대 소속 B-24를 발견했으나 공격받지는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존 H. 마우러 소령이 지휘하는 발라오급 잠수함 아툴(SS-403)에게 포착당했음.
아툴은 며칠동안 마모-04선단을 미행했었고 마모-04선단 측에서도 아툴의 미행을 눈치채 몇 차례 격퇴시켰으나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1944년 11월 1일, 아툴이 유리한 공격위치를 점하는 데에 성공해 아사마 마루는 0435분경 2발의 어뢰에 명중당했으며 0438분경 2발의 어뢰에 더 피격되면서 침몰, 474명이 사망했음.
주4 : 둥사 군도는 전략적 위치상 남중국해 일대에서 작전하는 미국 잠수함들에 대한 감시가 가능한 곳이었지만 그 이유 때문에 미국 잠수함에 의한 포격을 수시로 당한 섬이었음. 최초 기록은 1945년 3월 31일, 월터 T. 그리프스 소령이 지휘하는 발라오급 불헤드(SS-332)의 포격을 시작으로, 1945년 4월 16일경 하이럼 캐시디 중령이 지휘하는 텐치급 타이그론(SS-419)과 로버트 A. 케이팅 소령이 지휘하는 가토급 록(SS-274) 2척의 덱건 사격을 받았으며 4월 26일경 불헤드(SS-332)가 또 방문해서 덱건사격을 퍼부었음. 아마 이 때 혹은 이 이전에 기지를 버리고 퇴각을 한 것으로 추정됨.
5월 23일에는 급기야 가토급 퍼퍼(SS-268), 발라오급 피라냐(SS-389), 씨 아울(SS-405) 3척으로 구성된 SBD-1(Submarine Bombardment Division 1, 제1 잠수함포격분대)에 의해 근 1시간동안 300발(!)이 넘는 집중포격을 받았으며 포격이 종료되지마자 가토급 블루길(SS-242)의 승조원들과 코만도 대원들이 둥사 군도에 상륙해 섬을 점령, 성조기를 게양해버리게 됨. 이 기록은 지상시설물이 잠수함에 의해 실행된 포격에 가장 많이 당해본 기록으로 남아 있음.
정보추
Q1W 토카이 조종사임?
단발기 조종만 할줄 안다는걸 보면 토카이는 아니지 싶음. - dc App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MAD탑재한놈이 토카이말고 있었나
혀튼 개추
토카이 아니더라도 일본은 꽤 오래전부터 MAD를 운영해온 해군임. - dc App
이건 미국측 기록인데, 가토급 하더(SS-257)의 보고로 250피트 이상의 심도에서 잠항 중에 일본군 항공기에 의한 정확한 항공폭탄 투하가 12건이 있었다고 보고되어 있음. 저정도 심도면 수면하로 잠수함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일본해군이 소노부이를 만들었던 해군도 아닌터라서 MAD 탐지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었음. - dc App
사실 MAD만으로 거의 가깝게 12발 꽂아넣는 것도 대단하지만, 저때 하더는 잠수와 부상을 반복하면서 3일동안 총 66시간을 잠항하는 위업을 세웠음. 둘다 드럽게 질겼음. - dc App
ㅋㅋ 조타 지금 하더 기록보러 간다
단발기라면 97함공이나 텐잔 쪽이 유력해보임. 실제로 97함공이나 텐잔이 소형 폭탄을 주렁주렁달고 대잠임무도 맡았거든...
아는 일본어 핫산놈 일시키고 온다 오홓홓
B-24가 생각보다 기동성 좋다는 얘기는 들어봤는데 그렇게 좋은가
당시 둥사 군도에서는 30-40명의 통신 및 기상 관측대가 주둔했었는데, 1945년 2월 또는 3월, 한 잠수함이 이 시설에 대해 포격을 해버리면서 해당 관측대의 고위 장교를 죽였습니다. 얼마 후 이 기지는 버려졌고 인원들은 대피했습니다. - dc App
무슨 잠수함인지는 자료에 안나옴? - dc App
각주4번 참고 - dc App
ㅈㅅ 눈깔이 안좋아러 - dc App
MAD가 냉전기 물건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오래전 물건이었네....(뭐 전에도 쓴 글이지만.) 저거 정확히는 몇년도부터 나온 물건임? - dc App
자기이상감지 개념 자체는 1800년대 말에 나왔는데 미국은 1942년, 일본은 1943년에 개발했고 일본 측이 본격적으로 MAD를 쓴건 1944년 초. - dc App
1800년대...ㄷㄷ - dc App
충격과 공포의 이름을 가진 호모-03선단...... 덤으로 수송선 다 박살난 후에 호위부대까지 따로따로 개작살나는 골라먹기 당함. 진짜 이름에 재수 옴 붙은 듯.
호모라는 뜻은 홍콩과 모지의 앞글자만 딴 것임. 히선단이나 미선단 같이 별도 코드네임이 주어지는게 아니라 해당 선단의 출항-입항지의 앞글자를 딴게 일본 선단의 특징이기도 함. 근데 어감이 좀 머시기하긴 하지... - dc App
그러고보니 한국식 발음하면 선단 이름같은게 참 재미있게 변하네. 마모-04선단에 소속된 해방함 사기 같은거 말이야. 그리고 미국 잠수함이 덱건용 포탄을 많이 적재하고 다니는듯. 포격한 거 보면 1척당 5인치 포탄 100발 쐈다는 건데...... 중량과 부피가 만만치 않았을텐데 어디다 보관했는지 궁금하네. 그리고 무거운 5인치 포탄을 적재된 곳에서 꺼내서 덱건까지 100발이나 운반했던 수병들에게 애도를 표함.
1척당 150발 탑재. 가토/발라오급 기준으로 식당구획 아래층에 덱건 포탄과 보포스, 오리콘 및 기타 소화기 탄약을 적재하는 탄약고가 존재함. - dc App
탄약고 외에도 코닝타워 외부에 준비탄 적재가대가 있고, 보통 7발의 덱건 준비탄을 적재함. 탄약 이송의 경우 식당 구획 상부에 위치한 탄약이송 스커틀을 통해 탄약고에서부터 잠수함 갑판까지 탄약을 밀어올려주는 식으로 운영함. - dc App
5인치 25구경장 포탄 무게는 평균 23kg짜리라서 존나 무거운 포탄임에는 틀림없었음. 그래서 탄약이송 스커틀 통해서 밀어올려주는거 아니면 해치 통해서 포탄 올리는거 자체가 상하차알바에 준하는 중노동이 따로없음. - dc App
의외로 포탄공급속도가 무지 빨랐나보네. 덱건도 지속적 연사를 버틸 수준이고. 계산 때려보면 그냥 지속사격만 해도 1.67분당 1발씩 쏘는 셈이고 실제로는 조준점 수정이나 포신 냉각도 필요하니 실제 사격시에는 1분당 1발 이상의 속사를 해야 함. 위급시나 긴급대응때는 준비탄 7발을 순식간에 다 쏘는 것도 감안해야 하니 원래 대공포를 덱건으로 만든거라서 버티는 듯?
포신수명이 되게 좋은 편이었음. 5인치 25구경장 마크17 모드1의 수명은 예상 3천발. - dc App
미해군 간행 5인치 25구경장 덱건 교범에 수록된 내용이니 믿을 수 있을거임. - dc App
속사성능은 급속사격시 2.5~3초당 1발가량. - dc App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 포신 수명은 4600발이니 충분히 믿을만하지. 다만 함선에 탑재되서 밀폐식 포탑에 들어가있는 양용포와는 달리 덱건은 바닷물에 100퍼센트 노출된 채 바닷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최악의 조건인데 그거 감안하면 매우 잘 버틴다고 생각함. 그리고 덱건 포격하는 수병들도 대단하긴 하네. 덱건이니 자동재장전은 안될 것이고 바로 옆이겠지만 무거운 포탄을 연속재장전하면서 포신 과열된거 직접 만져야 하니까. 포신 선회나 각도 조절도 수동으로 해야 할거고. 덤으로 포격시 포구에서 나오는 폭풍 그대로 맞음. 진짜 마초들만 모였나.
2차대전 당시 미국 5인치 함포나 양용포, 대공포쪽 포신 수명이 타국 대비해서 매우 좋긴 하더라. 그 때 일본쪽 5인치 대공포 포신 수명이 한 1500발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함.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지간히들 또라이들이 아니지. 다른 나라 잠수함부대에서도 유례가 없는 기록인데 어느 미친놈이 잠수함 여러척을 끌고와서 지상시설에다 1시간동안 덱건 지속포격을 할 생각을 하겠음. - dc App
거기다 SBD-1이 있었으니 이후에 SBD-2까지 감행하려고 했었던 거임. 이거는 진짜로 잠수함 함수에다 다연장로켓 달고 쏘려고 했고 잠수함 개조까지 끝났는데 개조 완료하고 보니 전쟁 끝나서 못했음. - dc App
이것도 모자란다고 5인치 25구경장 덱건에 2축 안정장치 설치하고 중순양함에나 설치되었던 베이비포드 사격통제컴퓨터까지 달아놓는 짓까지 벌였음. 이것도 전쟁끝나면서 실전투입은 못했음. - dc App
어째 점점 바로 그 일본군이 원하던 걸 미군이 이룩한 느낌이 나네. 딱 근성과 열혈 그 자체가 아니던가. 잠수함으로 해안포격질하고 수병과 코만도로 작은 섬 함락하는 거 딱 일본군이 좋아하던 정예소수부대로 습격하는 거 그 자체네. 물론 여기에 미국답게 물량 지원하고 장비 개선하는 것도 포함됨.
이런 거 보면 만일 미군이 프랑스의 8인치 2연장 포탑 탑재한 쉬르쿠프급 잠수함을 입수했거나 영국의 미친 잠수함인 12인치 주포 탑재 잠수함을 얻을 수 있었다면 진짜 더 이상의 또라이를 볼 수 없을 정도의 업적(?)을 남길 듯. 5인치 덱건 가지고도 저러는데......
근데 이런거 아니더라도 이미 SJ레이더로 사격제원 따서 기동표적에게 덱건 사격하는건 또 실전에서 하더라고. 거기에 잠수함이 연막차장까지 하는 등 별의 별 또라이짓을 다 볼 수 있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