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4월, 시모노세키에서 전력 보충중인 비행 제1전대의 4식전투기 하야테
4식전 하야테로 참가한 필리핀 항공전(1)
전 비행1전대 육군 조장(曹長)
키무라 에이치로(木村栄一郎)
하야테로 클라크에
Q : 키무라 씨가 비행 제1전대에 소속되신 것은 언제쯤이었습니까
A : 쇼와18년(1943년)입니다. 마침 제1전대가 과달카날 후퇴작전 지원중이었고, 우리들은 현지에 가도 별 도리가 없다는 이유로 자무쓰(만주 북부)의 유수부대에 갔습니다. 자무쓰는 소련과의 국경과 가깝죠. 이미 눈이 쌓여있었으니, 18년 말, 11월 쯤이었을까요
Q : 장비기체는 하야부사 1형이었습니까
A : 햐아부사 1형이었습니다. 그 뒤 얼마있지 않아 카시와(柏)에 집결해서 2형으로 갈아타고, 수도방공전대가 되었습니다. 아직 97식전(역자주 : 97식 전투기)가 몇기인가 있었습니다만 곧 4식전(하야테)로 기종변환 되었습니다
Q : 그 이후에 아케노(明野)에 가신건지
A : 아닙니다, 부대에서 이노우에 중위(55기)와 이토 군조(소비(少飛, 역자주 : 육군소년비행병) 6기) 2명이 타치카와의 기연(技研, 역자주 : 육군기술연구소)에 미수교육을 받으러 파견되었고, 그 2명이 교관이 되어 부대의 미수교육을 시작했습니다. 타치카와에는 우리 전대에서 2명, 다른 부대에서도 몇명이 선발되어 미수교육을 받았습니다만, 그 때 주임교관이 쿠로에(야스히코) 씨 였습니다. 미수교육의 기간은 학과, 실과 모두 약 1개월이었습니다
쿠로에 야스히코(黒江保彦, 좌), 통산 격추 기록 30기
Q : 하야부사에서 하야테로 갈아타셨을때 어떤 기분이셨습니까
A : 먼저 방향타가 무겁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조타반동이라고 해야할까요, 지금으로 말하자면 레스폰스(Response)겠군요.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에, 역시 그만큼 반동이 생겨서 방향타가 무겁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들은 (방향타가) 무겁다는 것 이외에 육체적인 핸디캡은 느끼지 않았지만, 노련한 파일럿들은 공중전을 하다보면 어깨가 뭉친다고 해서 우리들이 곧잘 마사지를 해드리곤 했습니다
Q : 하야테는 무장도 강해지지 않았습니까
A : 무장도 강해졌고, 격투전투의 요령도 약간 바뀌었습니다. 하야부사의 경우에는 옛날과 같은 개인기술, 명인과 같은 기술이 요구되는 공중전투였지만, 4식전과 같은 고속기의 경우에는, 사격의 정밀도가 조금만 빗나가도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때문에 하야부사와 같이 빙빙 돌면서 사격을 하는 것은 적어지고, 로테 전술의 형태를 띄게 되었습니다. 반드시 2기 단위로 행동하는것이죠... 그 시기를 경계로, 일본의 공중전투의 형태 또한 점점 집단에 의한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Q : 하야테로 기종변환을 끝내고 바로 필리핀으로 가셨습니까
A : 카시와에서 얼마간 간노스(雁の巣) 쪽에 가있었습니다. 야하테 제철소가 B-29의 공습을 받았을때, 우리도 출격했습니다만 조우하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레이테 해전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일단 간노스에서 카시와로 물러나서, 그곳에서 상해로 가서 1주간 정도 있은 뒤 상해에서 대만, 대만에서 클라크 필드로 갔습니다
무인도에 불시착
Q : 그 때 진출하실때 고장으로 낙오기가 상당히 나오지 않았습니까
A : 아닙니다, 1기밖에 없었습니다. 오키나와 직전의 이에지마(伊江島) 근방에서 1기가 엔진 고장으로 해상에 불시착했고, 파일럿은 순직했습니다. 대만에서 시간이 허비된 건, 내지(일본)는 이미 늦가을이었고, 엔진의 에코노마이저(절탄기, economizer) 등이 그 온도에 맞게 조절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만에 가보니 갑자기 여름 날씨가 되버리는 바람에 엔진 고장이 생긴것이죠. 정비원들은 수송기로 먼저 가버리는 바람에, 전기체를 조정하는데 2~3일 정도 걸렸습니다. 파일럿들이 전부 자기손으로 했지요
그걸 마친뒤 필리핀에 갔습니다만, 가장 처음에 도착한 곳은 클라크가 아니라 서해안의 산 마르세리노였습니다. 그곳에서 바로 레이테 공격에 나섰습니다. 해육군 합쳐서 상당한 숫자였습니다
Q : 레이테 총공격은 10월 24일이었습니까
A : 그렇습니다. 1전대는 그 전날에 클라크에서 리파로 전진했습니다. 전대의 이날 임무는 상공엄호로, 리파를 새벽녘에 이륙했습니다. 아직 주위가 컴컴했지요. 이륙후에 오르목 부근까지 진출했습니다만, 방금전에 말한 하야테의 미수교육을 실시한 이노우에 군조, 이 사람이 전대장의 요분대장(僚分隊長)으로, 저는 전대장의 요기였습니다만, 아무튼 이노우에 씨의 기체가 엔진 고장을 일으켰습니다. 갑자기 흰연기를 뿜기 시작하면서 편대에서 이탈한겁니다. 고도가 약 8000미터였다고 생각됩니다만 혼자 이탈했고 아무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벌써 전장이 코앞이라 혼자로는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내가 따라갔습니다. 그리고는 세부 섬 방향으로 계속 비행해서,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불시착하더군요. 바로 현지인이 두세명 가까이 왔습니다. 잠시 동안 상황을 지켜봤는데, 아무래도 기체에서 탈출한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일단 순직한 것으로 판단하고, 상공을 벗어났습니다. 이제와서 혼자서 전장에 가는 것은 위험하다 생각해 리파로 향했습니다
이날 이륙전의 브리핑에서는 레이테 공격이 끝나면 전투로 서로 뿔뿔이 흩어져도 네그로스 섬에 집결하도록 지시받았습니다. 네그로스 섬을 다음 기지로 삼아서 다시 레이테 공격을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처음엔 네그로스 섬으로 가려고 했습니다만 그 때는 이미 레이테 부근에서 적 함재기가 세부 섬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후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이노우에 씨가 추락한 직후에 세부 섬에 대공습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함재기가 향하는 방향을 피해서 리파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제 기체가 엔진 고장을 일으킨겁니다
무엇이 원인인지는 몰랐습니다만, 좌석까지 오일이 세어나와서 점점 유압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리파가 코앞이었지만 마린두케 섬 근처의 무인도로 보이는 조그마한 섬이 있어서 그곳에 불시착했습니다
Q : 섬의 해안에 말씀이십니까
A : 아닙니다, (주민들이) 마린두케 섬 근처에서 보트를 타서 섬 안으로 밭일을 하러 가는 모양이었습니다. 정글을 배어내서 만든 밭 비슷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 불시착했습니다. 그 이후가 난리였지요. 불시착용 비상식량을 싣고 있어서, 그것과 함께 섬에 자생하는 열매 같은 것들을 먹으면서 1주일 정도를 지냈습니다. 레이테 공격을 마치고 클라크 필드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여기를 지나칩니다. 좁은 해안에 나와서 머플러를 흔들어 봤습니다만, 그쪽이 발견한다 한들 방법이 없었지요
그렇게 1주일 정도를 보냈을 즈음, 카누에 탄 주민이 왔습니다. 저는 게릴라라고 생각해서 숨어서 권총을 겨눴습니다. 그 사람도 왠 커다란 놈(비행기)가 밭 한 가운데 내려앉았으니 겁에 질린 모양이었습니다. '멈춰'라고 권총을 겨눴는데 깜짝 놀라더군요. 그런데 말이 전혀 통하질 않는 겁니다. 상해를 출발할때 실어둔 담배를 꺼내서, 그림을 그려가며 카누에 태워서 타야바스 만의 건너편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뭐라 말을 하는겁니다, 대충 해석해보니 대낮에는 미군 비행기가 날아오니 위험하다, 밤에 데려다 주겠다는겁니다. 꽤 시간이 걸렸지요
비행기가 없는 항공대
A : 해안선이 보일 즈음이 되자, (주민이) 일본의 병사를 태운것이 발각되면 난 죽는다, 여기서부터 해엄쳐서 가달라, 라고 하더군요. 별 수 없으니 훈도시만 걸치고, 비행복 같은건 전부 머리에 벨트로 묶어서 이고 4~5킬로 정도 해엄쳐 갔습니다. 2시간 정도 해엄쳤으니 말입니다...
간신히 육지에 도착했습니다만, 어디에 도착했는지를 도통 모르겠더군요. 대낮엔 걸으면서, 밤이 되면 별 같은걸 천측하면서 리파 방향으로 걸어갔습니다.
며칠이 걸렸는지 모르겠군요. 리파 근처에 따알(Tall) 호수라는 커다란 호수가 있습니다. 그 호수처럼 보이는 것을 확인해서, 대충 리파 근처까지 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주위는 아직 일본군의 지휘하에 있다고 생각해서, 대낮에 마을에 나가 일본 병사가 있는 곳에 데려다 달라 라고 했더니, 그 쪽 주민들은 적대심이 없어서 만주에서 진출해온 철병단(鉄兵団, 역자주 : 일본육군 제10사단)이 야영하는 곳에 데려다 주더군요. 그곳에서 야생소를 대접받고 하룻밤을 보낸 뒤, 이틑날 헌병대에 갔습니다
헌병대에 내 사정을 설명했더니, 우리들이 당신을 클라크까지 보내는건 불가능하니, 같은 항공대인 마닐라의 해군 비행장까지 보내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닐라의 니콜라스 비행장에 가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에 자동차로 클라크 필드까지 갔습니다
클라크 필드에 가보니, 이미 유수부대까지 전부 네그로스 섬에 가버렸더군요. 주변을 돌아다니며 찾아봤습니다만 아무도 없는겁니다. 지친 저는 유수부대가 전대본부로 쓴 사령부의 돌계단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그런데, 카스야(粕谷)라고 하는 55기 대위가, 잔무처리차 혼자 남아서 트럭을 타고 다니는게 아닙니까. '어이, 키무라. 너 살아있었나. 너도 대본영발표의 미귀환기였다고' 라고 말을 걸더군요. 벌써 2주일이나 지난겁니다
Q : 그래서 계속 클라크에 계셨습니까
A: 예, 네그로스 섬에 가려고 해도 비행기가 없었습니다. 내지에서 보충이 와서 파일럿이 하나둘 모이고, 그 파일럿들도 클라크 필드에 집결해서 비행기가 오면 본대에 합류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되면 비행기 수송이 생각만큼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수송 쪽은, 공륜(空輪, 역자주 : 비행기를 직접 조종해 운반)전문의 수송대가 있어서 그 부대원들이 몰고옵니다만, 별로 오지 않았습니다. 가끔 1기 왔다하면, 남겨진 파일럿들은 빨리 네그로스 섬에 가고 싶어서 서로 빼앗고 난리였지요. 가위바위보나 제비뽑기로 정했습니다
그 사이 레이테 공격에서는 여러 파일럿들이 계속 전사해서, 전력이 거의 바닥났습니다. 때문에 급하게 전력회복을 위해서 시모노세키로 돌아갔지요. 그곳에서 제1차가 끝났습니다만, 대부분이 전사하고, 멀쩡한 상태로 시모노세키에 돌아온 건 7명 정도였다고 생각됩니다
Q : 2번째로 필리핀에 진출하신 것은 12월 초 였습니까
A : 네, 이번에는 포락이었습니다. 마츠무라(슌스케 소좌) 전대장이 네그로스 섬에서 전사해서 하시모토(시게하루 대위)씨가 전대장을 맡았습니다. 하시모토 씨도 결국 포락에 진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사했습니다
1, 2로 나눠서 올립니다. 2에서는 공중전 얘기도 나옵니다
참고로, 1944년 당시 필리핀은 곳곳에서 항일 게릴라들의 활동이 활발해서 침몰한 군함의 승조원이나 인터뷰에 나오는 키무라 씨 같은
격추된 비행기의 탑승자들이 표류 끝에 다다른 섬에서 적대감을 가진 주민들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곤 했습니다
현지군의 가혹한 점령정책이 가져다온 업보였죠
아조씨 혹시 셔먼임?
누군지 모르겠지만 아닙니다
그러면 굴락에도 좀...
다 죽어나가네...
그래도 저 필리핀 항공전이 4식전이 가장 활약한 전역이었다는게 참
으따 저아저씨는 용케도 주민들한테 안맞아죽었네
무인도서 처음 만난 주민도 발각되면 자기도 죽는다고 할 정도였으니 운이 좋았죠
ㅊ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