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꼴랑 대잠 헌터킬러그룹 설명하는데에 뭐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건 또 뭐래. 그냥 되는대로 지껄여야징. 일단, 투입되었던 해군 작전들은 제외하고 잠수함에 엮인것 관련으로 설명함.
제31전대는 1944년 8월 20일 창설된 부대로서, 1943년 중후반을 기점으로 급증하는 잠수함 공격에 의한 상선단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세운 대책들 중 하나였음.
일본 해군은 1943년 11월경에 해상호위총사령부를 신편한 이후, 해상호위 부대 편성을 진행하게 됨. 예하에는 제1해상호위대와 제2해상호위대, 제901항공대와 요코스카 진수부, 구레 진수부, 사세보 진수부, 마이즈루 진수부, 오사카 경비부, 진해 경비부, 가오슝 경비부 호위전대를 두게 됨.
기본적으로 해상호위총사령부는 선단 운영에 개입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호위만을 제공하는 부대임. 선단 운영에 있어서 육군/해군/민간 선사를 통합해놓은 총책임 제대나 책임자는 마땅히 존재하지는 않았고, 각 집단에서 컨퍼런스를 통해 선단 운영방침을 결정함.
근데, 알 사람은 알다시피 해상호위총사령부 창설했다고 해서 상황 좋아지는거 따위 하나도 없었음.
당초에는 발언권을 연합함대에 종속되지 않는 위치에 올려놓기를 바랬었고 1944년 8월전까지는 그래왔다만, 실질적으로 창설 직후에 해상호위총사령부에 던져진 배들은 다이쇼 말에서 쇼와 초기때나 만들었을 낡은 구축함이나 해방함들, 각종 특설 함정들이 전부였음. 그리고 그 해상호위총사령부마저도 1944년 8월 15일을 기점으로 연합함대 예하로 종속이 되고 말았으니...
연합함대 예하로 종속된 건 다른 거 없었음. 1944년 남중국해-동중국해 일대 해상수송 안전평가에서 "매우 위험" 판정을 받게 되었고 해상호위총사령부 예하 전력만 갖고는 안전한 수송따위 절대로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연합함대 예하 구축함들이라도 필요했거든.
물론 특설호위선단사령부라고 해서 딱히 나을거 하나도 없고, 운항통제반은 요즘 전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제대로 감 못잡을 정도의 늙다리 예비역 고위장교들에 의해서 돌아가는 형편이니...
그 와중에 미국 잠수함부대는 자신들의 단점을 아주 이를 갈면서 뜯어고쳐 개선하는데에 성공했고, 1943년 9월부터 그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1944년즈음 되면 정말 미쳐날뛰기 시작함. 일본 자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구제 못할 상황이 터진다 이말임.
1944년 6월 19일, 필리핀 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은 아주 멋지구리하게 잠수함 2척에게 귀중한 항공모함 2척을 상납하시게 됨. 더불어 7월 5일 사이판 전투는 끝끝내 미군의 승리로 끝났고, 사이판 섬에 남아있던 제6함대 사령부, 제3수뢰전대 사령부, 제3수뢰전대는 7월 18일부로 사이판 섬에서 파킨해버려 중부 태평양 방면 함대에서 제외되면서 연합함대 부속이 됨. 이 중 사이판 섬에서 파킨해버린 부대중에서는 해상호위총사령부 예하의 제2해상호위대도 포함되어 있고, 제2해상호위대는 아예 완전해산되어 잔존함정들은 다른 제대로 편입이 됨.
미국 잠수함의 대대적인 약진에 대해 대본영은 해군 차관과 군령부 차장 명으로 대잠 활동에 대한 적극적 활동을 촉구하기 시작함. 우리 이제 진짜 좆됐다 이거지. 이제야 형광등 불 들어온거니?
연합함대사령부 및 제1기동함대사령부에서는 당시 파킨했던 제3수뢰전대 사령부를 재건하고 해방함들을 편입해 장기적으로는 대잠작전을 위한 항모와 대응형 항공모함에 대한 계획도 염두해두게 되고 이 와중에 대잠작전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헌터킬러 전대의 필요성이 늘어나게 됨. 이것은 직접적으로, 대서양 전투에서 U보트의 목줄을 죄어버린 연합군 헌터킬러그룹에 영감을 받은 것도 있음.
근데 31전대의 시작은 그리 좋지 못했음.
본래 31전대의 기함으로서 이전에 파킨했던 제3수뢰전대의 기함인 경순양함 나토리가 내정되어 있었음.
근데 이 와중에 일이 좀 웃기게 됐는데, 1944년 8월 7일경 제11수뢰전대 기함인 경순양함 나가라가 뜬금없이 미 해군의 가토급 잠수함 크로커(SS-246)의 공격으로 가라앉아버린 일이 터진 것임.
크로커의 잠망경에 찍힌 침몰하는 나가라. 함미부터 잠기며 가라앉는 것을 볼 수 있음. 1944년 8월 7일 촬영.
이에 대응해 본래 31전대로 배속 예정이었던 나토리는 군령부의 지시에 따라 11수뢰전대로 배정되었음. 문제라면 나가라가 침몰해버린 지 대체 얼마나 됐다고, 1944년 8월 18일에 나토리는 미 해군의 발라오급 잠수함 하드헤드(SS-365)의 공격으로 가라앉고 말았다는 거지만...
뭐 31전대 입장에서는 크게 아쉬울 것은 없었음. 11수뢰전대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라도 말이지. 왜냐면 나토리보다도 대잠임무를 더 성공적으로 수행할 만한 전대 기함 함정이 내정되어 있었고 그게 경순양함 이스즈였으니까.
이스즈는 소나 설치 외에도 전자장비, 대공화기 증설 등으로 다른 경순양함들 대비 방공 및 대잠에 있어서 좀 더 좋은 성능을 기대할 수 있었던 배였음.
여튼 이렇게 1944년 8월 20일, 제31전대는 창설됐음. 예하 부대편성은 다음과 같음.
기함 - 경순양함 이스즈
제30구축대 - 우즈키, 유즈키, 아키카제, 사츠키, 유나기
제43구축대 - 마츠, 우메, 타케, 모모
해방함 - 칸쥬, 만쥬, 카사토, 미야케, 제22호 해방함
이후 몇 차례 편제가 바뀌게 됨. 다음은 1944년 11월 20일 편제.
기함 - 경순양함 이스즈
제30구축대 - 우즈키, 유즈키
제43구축대 - 키리, 우메, 타케, 모모, 마키
제21해방대 - 카사도, 칸쥬, 만쥬, 미야케, 이쿠나
제22호, 29호, 31호, 43호 해방함
제933해군항공대
1944년 12월 15일 편제.
기함 - 경순양함 이스즈
제30구축대 - 우즈키, 유즈키
제43구축대 - 카야, 키리, 우메, 타케, 모모, 마키
제52구축대 - 히노키, 모미, 스기, 카시
제21해방대 - 카사도, 칸쥬, 만쥬, 미야케, 이쿠나
제22호, 29호, 31호, 43호 해방함
제933해군항공대
1945년 7월 15일 편제는 대잠작전이랑 크게 관련 없는 기간이라 생략하고, 본래 임무에서도 벗어나 해상정진부대 예하로 재편되면서 본토결전에 대비하게 됨.
근데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면, 헌터킬러그룹 창설은 좋은데 각 함정들끼리 서로 모여다니면서 호위 및 대잠작전을 제대로 구사하질 못했다는 점이었음. 창설 당일부터 제31전대 예하 함정들은 서로 다른곳에 다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보니 따로국밥으로 놀고 있었던 판이었으니까, 당초 연합군 헌터킬러그룹마냥 구축함이나 슬루프 4~5척이 같이 다니면서 잠수함관광 순회공연 돌고다니는 거랑은 완전 달라지게 되더라...하는 거였음.
또한 제31전대는 대잠작전을 담당한답시고 만든 전대인데 해상호위총사령부 예하 부대가 아닌, 연합함대 직속부대로 만들었다는 점도 논란이 됐음. 군령부에서는 "해상호위총사령부는 직접 호위를 담당하고 연합함대 예하 31전대는 해상 교통 요충지의 대잠 소탕을 담당할 것" 이라고 해버린 것인데, 당초에는 해상호위총사령부 예하로서 굴릴까도 생각했는데 군령부 제12과의 소가와 키요시 중좌의 회고에 따르면 해상호위총사령부에 운영을 맡기는 것은 선단 직접 호위에 사용되어 버려, 본래 제31전대의 활동목적을 방해 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고 했었음.
이 결정에 해상호위총사령부는 아주 난리가 났음.
제31전대를 선단 호위로서 붙인다면, 남방해역 수송작전에서 약30%가량의 선단 수송작전 안전수송 증가를 기대할수 있다 판단했는데, 이 참피들이 제31전대를 자기네 통제 하에 굴리겠다네? 이대로 두면 보나마나 함대에 대한 지원과 함대 작전을 기반으로 한 대잠작전 투입이 주가 될게 뻔한데 그걸 가만히 보고 냅두겠냐고요.
이에 대응해 해상호위총사령부 작전참모장교인 오오이 아츠시 대좌는 1944년 8월 24일 군령부총장 관저에서 개최된 루손 해협 긴급대잠작전 방안 연구회에서 해상호위총사령부 예하 제대의 전력부족을 호소하고 해상호위총사령부에 대한 제31전대의 증원 및 활용을 요구했으나 나카자와 유우 군령부 1부장은 "제31전대의 운영방침 관련으로는 연구가 좀더 필요하다"라며 일축했음.
그리고 서로 흩어진 전력에 의한 예상은 현실이 되었음. 그나마 해방함 차원에서는 선단에 대한 직엄호위가 가능했어도, 31전대 자체의 독립적인 대잠작전을 구사 못하는거지. 이미 이 순간부터 연합군처럼 순회공연 돌아다니면서 잠수함 때려잡고 다니는 짓은 못했다 이거임.
그래도 용케 전과는 있었다. 1944년 8월 24일, 제22호 해방함이 필리핀 다솔 만 인근에서 가토급 잠수함 하더(SS-257)를 격침시키는 데에 성공한 것임.
솔직히 말해, 31전대 예하 함정들의 대잠작전 전과는 정말로 이게 끝이었음. 예하 소속 933항공대 전과는 모르겠고, 오히려 역으로 31전대 예하 함정들 몇은 미국 잠수함에게 엿을 먹게 됨.
30구축대의 유나기는 1944년 8월 25일, 타마-25선단을 호위하던 도중 발라오급 잠수함 피쿠다(SS-382)의 헤드온 어뢰공격을 당해 가라앉고 말았음.
1944년 10월 15일, 이쿠나는 발라오급 잠수함 크레발레(SS-291)의 공격으로 큰 손상을 입게 됨.
1944년 11월 1일, 같은 30구축대의 아키카제는 다른 30구축대 소속 구축함들과 함께 항공모함 준요, 경순양함 키소를 호위하던 도중 발라오급 잠수함 핀타도(SS-387)의 공격을 받게 됨. 당시 핀타도는 준요를 노렸으나, 준요의 피격을 우려한 아키카제는 준요 대신 어뢰에 피격되어 격침당하고 말았음.
기함인 이스즈는 1944년 11월 19일경 가토급 잠수함 헤이크(SS-256)의 공격으로 함미가 절단되는 큰 피해를 입고 수리신세를 면치 못하게 됨.
이후 공백인 31전대 기함을 이어받은 배는 아키즈키급 시모츠키였는데, 11월 22일에 기함 업무를 이어받은지 뭐 얼마나 됐다고, 11월 25일에 가토급 잠수함 카발라(SS-244)의 공격을 받아 31전대 사령관인 에도 헤이타로 소장과 31전대 참모진들이 전사하는 사태가 터지고 말았음. 이후 사령관은 즈루오카 노부미치 소장이 맡게 됨.
43구축대 소속 모모 역시도 1944년 12월 15일, 발라오급 잠수함 호크빌(SS-366)의 공격으로 격침당했음.
이스즈 역시도 결국 잠수함의 마수는 피하지 못 해서, 1945년 4월 7일 제46사단 병력을 수송하던 도중 가토급 잠수함 가빌란(SS-252), 발라오급 잠수함 샤르(SS-328)의 공격을 받아 가라앉고 말았음. 이 이후부터 기함은 경순양함 키타카미로 넘어가게 됨.
31호 해방함은 1945년 4월 14일, 제주도 비양도정박지에서 텐치급 잠수함 티란테(SS-420)의 공격으로 가라앉게 됨. 어처구니 없는 것은 티란테가 비양도정박지까지 부상한 상태로 잠입해, 정박해있던 탄약수송선 주산 마루와 해방함 노미를 격침시킨 것이었고 31호 해방함은 티란테를 쫒다가 반격을 당한 것이었음.
중요한건, 실제 구상처럼 독립적인 대잠작전 순회공연의 꿈 따위는 없었다는 점이었음. 대부분이 함대 작전.
이거 분명히 헌터킬러그룹 맞죠?
이거 씹딱물 클리셰 아님? 존나 좋은 장비 가져왔다면서 자만하다가 자기들끼리는 손발이 안맞고 모든면에서 적보다 부족해서 역관광 당하는거 - dc App
브금 존나 취향저격이넼ㅋㅋㅋ.
소련까는글 쌀때 브금으로 써보시짘ㅋㅋㅋ - dc App
걍 어중이떠중이 그룹같아 보이는데... - dc App
브금때문일거야 아마도. 응. - dc App
눈물이난다 - dc App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답을 내려고 만들어놨더니 노답이 되버렸서
이거말고 더 골때리는 것도 있는뎅. - dc App
Q쉽 투입 대잠작전은 31전대 뺨치는 병맛을 기록하면서 폭망했음. - dc App
머본영이 또오 ㅋㅋ
해상호위총사령부 시절에도 딱 사령부 간판만 단 상태였는데 연합함대 지배를 안받는 독자적인 위치라는게 사실상 의미없는 소리였음. 그러니 관련자들이 전부 연합함대쪽에 불만이 많았지. 심지어 본문에 나온 해상호위총사령부 작전참모장교인 오오이 아츠시 대좌는 쓸모없는 대형함은 모조리 적당한 항구에 정박시키고 남은 구축함 50여척을 모조리 해상호위에 돌리자고 주장하며, 중순양함 1척 연료탱크 만땅할 연료량이면 은하 폭격기 430대가 출격가능하며, 그러면 중순양함 1척은 적 중순양함 1척을 잡지만 은하 430대면 적 중순양함 15척을 잡을 수 있다는 삐라를 군령부에 뿌릴 지경이었지. 얼마나 속터지면 그랬겠나.
실제 오오이 아츠시의 행보들을 보자면, 솔직한 표현으로 굉장히 안쓰러웠음. - dc App
진짜로 피눈물이 난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음. 일전에 한번, 오오이 아츠시의 증언록이나 미군 심문기록을 본 적이 있었는데 야... 이건뭐 정말이지. - dc App
오죽하면 "연합함대가 일전에서 대패해버리고 나면, 우리 해상호위총사령부에게 관심이 그나마 오지 않을까?"라고 할 정도면. - dc App
한번은 막료가 "미국 잠수함이 저정도 전과를 세운건 운이랑 전술덕분이다"라고 말한적이 있었는데, 아츠시 왈"댁들은 원인추정하는데 그정도밖에 못함? 댁들 주장하는대로 미국이 진짜 그랬으면 잠수함을 지들 역량으로도 감당 못할만큼 찍어냈단 소린데 이게 말이나 되냐? 딴 이유가 있는거지"라고... - dc App
물론 오오이 아츠시 대좌의 주장은 말 그대로 극단론이지만 적어도 해상호위총사령부 설립 시점에라도 그 쪽에 어느 정도 제대로 된 지원을 해줬다면 그렇게까지 일본 본토의 생산력이 하락하지는 않았겠지. 1945년 3월의 도쿄 대공습 이전까지는 폭격 오는 걸 구경거리라고 일본 사람들이 구경할 정도로 명중률이 개판이라서 공장시설이 잘 돌아가고 있었음. 문제는 재료와 자원이었지. 그러니 물자를 필리핀 해 해전 이전에 어느 정도라도 일본 본토에 비축해놓았다면 수량부족, 품질저하 같은 사태가 좀 덜했을 것임.
솔직히 말해서 31전대 창설 시기는 이미 때가 늦어도 단단히 늦은 상황임. 이젠 잠수함에 더해서 미 해군 함재기까지 수송선단 공격에 나서기 시작한 상태라 설령 31전대를 해상호위총사령부가 제대로 굴렸어도 그 쪽이 예상한 남방해역 수송작전에서 약30%가량의 선단 수송작전 안전수송 증가같은 건 달성불가능하고 31전대가 오히려 잠수함에게 신나게 잡혔겠지. 그래도 본문처럼 분산해서 개짓거리 하는 것보다는 나았을거고 수송선단 도달률도 올라갔을 것임.